[이유미의 우리풀 우리나무] 백당나무


장마가 시작되고 하루걸러 하늘이 어두워지니, 숲도 어두워 보이고 지난 계절에 보았던 백당나무의 눈부시게 흰 꽃송이들이 그리워진다. 함께 일하는 분이 백당나무 꽃이 핀 모습을 보시더니 마치 하늘의 천사들이 내려와 부채춤을 추다가, 활짝 핀 부채를 동그랗게 펼쳐 서로서로 연결하여 둥근 원을 만들어 빙글빙글 도는 마지막 장면을 보는 듯 하다고 했는데 ….

그래도 이렇게 비 내리고 무더운 여름을 씩씩하게 성장하며 잘 넘겨야 백당나무는 다시 붉디 붉은 열매를 잘 영글어 새로운 계절의 주인공이 또 한번 될 수 있으리라. 어디 백당나무 뿐이겠나. 시간과 주어진 여건을 잘 견뎌내면 다시 좋은 날들이 돌아오는 세상의 이치는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것이리라.

백당나무는 인동과에 속하는 낙엽성 관목이다. 다 자라야 키가 3m를 넘지 못한다. 풀색이던 어린 가지는 자라면서 점차 황갈색으로 변하며 다 자라면 잿빛이 된다. 나무껍질에는 코르크질이 발달하여 세로로 갈라진다. 두개씩 마주 달리는 잎은 세 갈래로 갈라지는데 그 끝이 짧은 꼬리처럼 뾰족하여 마치 오리발 같이 느껴진다.

잎의 상반부 가장자리에는 거친 톱니가 생기며 뒷면 맥위에 털이 나있다. 이 잎을 달고 있는 잎자루는 3~4㎝정도 되는데 붉은 빛이 돌고 윗쪽에 홈이 보이는데 무성화를 가진 것을 보상하려는 듯 이곳에 꿀샘이 있다.

꽃은 앞에서 말한 부채춤을 추는 천사처럼 흰 꽃들이 여러 개 모여 둥글게 꽃차례를 만들어 단다. 그런데 이 꽃차례를 만드는 꽃들은 자세히 보면 2가지 종류인 것을 발견할 수 있는데 안쪽에 들어 있는 작은 꽃들은 유성화 바깥쪽에 있는 조금 큰 꽃들은 무성화라고 부른다.

유성화는 꽃잎이 발달하지 않아 2~3㎜ 정도의 작은 꽃들이 중심에 모여 있는데 자세히 보면 다섯장의 작은 꽃잎들이 퍼지지 않아 술잔처럼 보인다. 그 안으로 보란 듯이 길게 자란 수술 다섯개가 보라빛 꽃밥을 달고 있다.

그 둘레로 무성화가 둥글게 달리는데 화려한 꽃잎만을 가진 무성화가 시각적으로 곤충을 유인하는 역할을 하면 중심부의 유성화에서는 실제 중요한 수분이 이루어진다. 고도의 역할 분담을 하는 것이다. 이는 인간이 세상을 살아 가는데 나름대로의 지혜를 모으며 살아가듯 백당나무도 효율적으로 살아 남기 위해 세운 삶의 전략인 것이다.

더러 다른 특성들은 백당나무와 같지만 유성화는 없고 무성화만 가득 달려 마치 하얀 꽃들이 공처럼 눈부시게 달려 있는 나무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바로 불두화이다. 불두화는 사람들이 꽃을 보라고, 자연에서 자라는 백당나무에서 꽃잎이 작은 유성화를 없애고 무성화만 남겨 놓은 품종이 불두화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 불두화는 한 계절 고운 꽃을 우리에게 선사하지만 열매는 볼 수 없다.

백당나무는 밀원식물로 이용된다. 백당나무 꽃이 피는 시기는 봄꽃은 다져버리고 아직 여름꽃을 제때를 만나지 않아 유난히 개화한 꽃을 만나기 어려운 시기인데 모처럼 꽃이 피어서 인지 벌이 많이 찾는다. 물론 아직까지 정원에는 백당나무 대신 불두화를 많이 키우지만 백당나무를 가치있는 조경수로 보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특히 불두화와는 달리 아주 밝고 맑은 빨간색 완두콩알 모양의 열매는 여러 개가 깔때기 모양을 이루어 보기에 아름답다.

북한에서는 이 백당나무를 접시꽃나무라고 부른다. 그러고 보면 꽃차례의 모양이 영락없는 접시모양이어서 그럴듯한 이름인 듯 싶다. 실제 기능은 못하고 보기만 아름답다하여 장식꽃이라고 부르는데 이도 재미있었다.

산을 오르내리노라면 수없이 많은 백당나무를 보게 되지만 백당나무 하면 여러 해 전 계방산 식물조사를 나갔다가 1,000m가 넘는 운두령 고개에서 능선을 타고 넘다 만난 백당나무가 떠오른다. 아직 사람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 이른 아침의 높은 산, 이슬을 그대로 담고 있는 순백의 꽃잎이 하도 신선하여 한참을 서서 바라 보았다. 나무나 풀은 그렇게 문득 가슴으로 들어오는가 보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입력시간 : 2003-10-02 16:51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99@fo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