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식의 문화읽기] 청계천의 복원과 소멸


7월 1일이면 청계천 복원공사가 시작된다. 별다른 연고나 특별한 추억이 있는 곳은 아니지만, 청계천 복원에 관한 기사나 보도를 볼 때마다 여러 가지 상념들이 머릿 속에서 뒤엉킨다.

청계천복원추진본부 홈페이지에 의하면, 복원사업을 통해서 서울은 환경친화적 도시공간으로 변모하게 되고, 서울의 600년 역사와 문화가 되살아나게 되며, 동북아 중심도시로서 국제적인 면모를 갖추게 것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서울의 얼굴이 근본적으로 바뀌는 일인 것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1958년부터 1978년까지 점차적으로 복개되면서 서울의 모습을 만들어왔던 청계천의 ‘또 다른’ 역사와 문화가 사라진다는 사실이 조금은 아쉽기도 하다. 도심 한가운데에 미로처럼 펼쳐져 있는 골목길들, 현대식 빌딩 뒤로 마술처럼 나타나는 황학동 시장의 풍경들, 청계고가 아래로 늘어서 있던 서점들 등은 서울이라는 도시의 역사성이자 내면풍경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청계천의 복개가 전통사회의 삶의 풍경을 해체하는 일이었듯이, 청계천의 복원 역시 한국사회의 역사적 경험을 망각의 지점으로 밀어 넣는 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기대와 우려 속에서 청계천에 관한 몇 권의 책을 찾아보았다. 청계천과 관련된 역사적 서술로는 서울학연구소에서 펴낸 ‘청계천’의 실증성이 돋보인다. 청계천의 원래 이름은 개천(開川)이다. 조선 건국(1394) 이래로 개천은 한양 도성을 동서로 가로지르며 북촌과 남촌으로 갈라놓았던 지리적 경계선이었고, 동시에 정치ㆍ사회ㆍ문화적인 구분을 표상하는 상징적인 경계선이었다.

개천은 한양의 하수하천으로써 기능했는데, 가장 큰 골칫거리는 잦은 범람이었다. 15세기 초반부터 국왕의 주도로 치수사업이 시작되었고, 특히 영조는 1760년에 20만 인원을 동원해서 57일에 걸쳐 개천 바닥을 파내는 준천(濬川) 사업을 시행하기도 했다.

이경재의 ‘청계천은 살아있다’는 일화ㆍ전설ㆍ야사 등을 통해서 청계천 주변의 풍습과 생활상을 맛깔스럽게 구성한 책이다. 정월 대보름 광교와 수표교에서 열렸던 답교놀이, 개천 부근에서 살았던 망나니와 걸인들의 모습, 천변의 목로주점과 청진동 해장국, 명월관의 애국기생과 다방골의 기생조합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야기들이 사진과 함께 제시되어 있다.

특히 일제 강점기의 청계천 풍경과 관련해서는, 1930년대의 대표적인 모더니즘 소설가인 박태원의 ‘천변풍경’(1936)의 장면들이 떠올라 책을 읽는 재미가 더욱 쏠쏠했다. ‘천변풍경’은 작가가 스스로 ‘카메라의 눈’을 자처하며, 특정한 주인공 없이 70여 명의 인물을 등장시켜 청계천을 둘러싼 다양한 삶의 모습들을 그려낸 작품이다.

박태원이 청계천에 주목한 데에는 자신이 태어난 곳이 청계천변이라는 사실도 작용을 했겠지만, 1935년 청계천을 전면 복개하여 도로로 만들고 그 위에 고가철도를 놓는다는 총독부의 구상이 발표되었던 사실과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에 발간된 책 중에는 도올 김용옥의 ‘청계천 이야기’와 이응선의 ‘청계천을 떠나며’를 같이 읽었다. 도올은 청계천 복원사업을 ‘역사적 패러다임의 전환을 가져오는 일대 혁명적 사건’으로 규정하면서, 서울의 공간구성원리로 허(虛)의 사상과 유교적 풍류의 정신을 제시한다.

서울의 도시공간은 채움이 아니라 비워냄의 원리에 입각해서 ‘비어있는 중심’으로 재편성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청계천 복원을 또 하나의 개발 논리로 생각한다면 그것은 메갈로폴리스(거대도시)를 네크로폴리스(죽음의 도시)로 만드는 길만 재촉하는 짓이다”라는 그의 주장에는 수긍할 만한 대목이 있다.

반면에 이응선의 저작은 청계천과 관련된 고별사이다. 20년간 청계천에서 일을 하며 잔뼈가 굵은 저자는 복원을 앞두고 청계천을 떠났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청계천의 지저분한 외관 너머에 숨어있는 도저한 합리성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청계천은 전화 한 통화로 억대의 거래가 가능한 상도(商道)의 공간이며, 개 같이 벌어서 정승처럼 쓰고자 하는 한국적인 정서가 배어있는 곳임을 증언하고 있다. 청계천 상권을 유지해 온 그 어떤 힘이 느껴지는 책인 동시에, 낡고 지저분한 공간을 끊임없이 외곽지역으로 방출하는 도시의 공간화 방식을 실감할 수 있는 책이었다.

아무리 칙칙하고 지저분해도 청계천은 한국현대사의 공간적ㆍ역사적 상징이다. 복개된 청계천 위에서 삶의 터전을 일구어 온 사람들이 상처받는 일이 없기를 바랄 따름이다.

김동식 문화평론가


입력시간 : 2003-10-02 17:02


김동식 문화평론가 tympan@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