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중국 영화황제 김염의 불꽃같은 삶



■ 상하이 올드 데이스

박규원 지음/민음사 펴냄

논픽션은 무엇인가. 사실에 바탕을 둔 이야기다. 논픽션의 장점을 부각시키면서 조금 고상하게 표현하면, ‘정서적 교감을 바탕으로 인간과 시대를 표현하는 문학의 미덕과 이성을 통해 현실과 사회를 재발견하는 인문사회과학의 이상을 함께 담아낼 수 있는 장르’가 바로 논픽션이다. 허구의 단점을 극복하면서 학술의 무거움을 덜어낸 것이다.

‘상하이 올드 데이스’는 민음사가 공모한 제1회 올해의 논픽션상에서 대상을 받은 작품이다. 독립운동가의 아들로 태어나 중국의 영화 황제가 된 김염의 불꽃 같은 삶을 그렸다. 타국에서 생존을 위해, 또는 조국 독립을 위해 시련을 두려워하지 않고 강인하게 살아갔던 한국인들의 이야기, 문화대혁명이라는 역사의 수레바퀴에 짓밟혀 처절하게 침몰한 천재 예술가 한 개인과 그 가족들의 이야기가 실감난다.

김염은 1910년 한국 최초의 면허 의사 김필순의 셋째 아들로 서울에서 태어났다. 신민회의 독립운동 자금을 조달했던 김필순은‘105인 사건’에 연루, 중국으로 망명했고, 김염은 중국 국적을 취득했다. 김필순이 일본인에게 독살당하자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어린 김염은 상하이의 고모집에 의탁한다. 고모부는 독립운동가 김규식.

고학으로 중ㆍ고교를 다니던 김염은 1927년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상하이 영화계에 들어간다. 1929년부터 당대의 뛰어난 감독 쑨유의 영화에 주연으로 출연했고, 여배우 롼링위와 함께 주연한 <야초한화>(1932년)의 성공으로 중국 최고의 남자배우가 됐다.

이후 출연작마다 대성공, 중국 전역에서 실시한 조사에서 ‘영화 황제’로 뽑혔다. 지금까지 중국 영화 100년 역사에서 오직 김염만이 영화 황제로 소개된다.

김염은 조교(朝僑) 협회를 조직하고, 조선인 학교를 후원하는 등 동포들을 도왔다. 만주사변이 발발하자 자신의 사인을 담은 브로마이드를 판매해 항일 자금을 지원했고, 상하이 사변 후에는 구국 운동에 참가했다. 김염이 출연한 영화는 대부분 항일 영화로 특히 <장지릉운>(1936년)은 일본이 홍콩을 점령했을 때 가장 먼저 필름을 찾아 없애버린 영화다.

마오쩌둥은 김염을 국가 일급배우로 임명했지만 김염은 끝까지 공산당에 가입하지 않았다. 1966년 문화대혁명 때 수용소에 감금되는 등의 시련을 겪었고, 이 때 보살핌을 받지 못한 김염의 아들은 이후 정신 장애자가 됐다.

지은이는 꼬박 8년을 자신의 작은외할아버지이기도 한 김염의 삶을 복원하는 데 매달렸다. 중국 곳곳과 미국을 찾아다니며 김염의 행적을 조사하고, 지인들과 인터뷰를 했으며, 수많은 자료를 수집했다. 그 과정에서 몸이 좋지 않았던 지은이는 정신이 혼미해질 때를 대비에 돗자리와 양산을 항상 들고 다니면서 중국의 각지를 돌아다니기도 했다. 그 모든 고통을 무릅쓰고, 갖은 정성을 다 쏟아낸 결과가 바로 이 책이다.

최성욱 기자


입력시간 : 2003-10-05 20:10


최성욱 기자 feelchoi@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