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조선시대 과학수사 지침서



■ 신주무원록
왕여 지음/최치운 외 주석/김호 옮김

“시체는 모든 것을 말한다.” 법의학계에서는 너무도 유명한 말이다. 검시를 통해 어떤 죽음이 타살인지, 자살인지를 가려내는가 하면 더 나아가 타살이라면 언제 어떻게 죽었는지까지, 죽음에 얽힌 모든 비밀을 풀 수 있는 실마리를 시신에서 찾아낼 수 있다는 뜻이다. 물론 이는 고도로 발달한 현대 의학에 힘 입은바 크다.

그렇다면 그 옛날, 조선시대에는 어땠을까. 그 때라고 해서 살인 사건이 없었던 것은 아닐텐데. 과연 제대로 된 검시가 이뤄졌을까. 조선시대 최고의 법의학 지침서인 ‘신주무원록(新註無寃錄)’은 바로 이런 궁금증을 풀어준다.

흉기 등으로 구타ㆍ살해한 경우 상흔이 푸르거나 붉게 나타날 게 틀림없지만, 갯버들나무의 껍질을 상처 부위에 덮어두면 상흔 안이 짓무르고 상하여 구타 흔적을 위조할 수 있으니 반드시 손으로 만져보아야 한다. 죽기 직전에 목을 매달면 시체의 상흔이 스스로 목을 매 죽은 것과 다를 바 없으므로 목을 맨 장소의 높이, 목을 맨 들보나 기둥 위에 남은 흔적을 반드시 살펴야 한다.

목을 매단 끈이나 줄이 단단하게 탄성을 유지하면 스스로 목을 맨 것이지만 끈이 느슨하고 늘어지면 이는 시체를 옮겨 매단 흔적이다. 독약을 먹은 경우에는 은비녀를 인후 안에 깊이 넣었다가 잠시 후 꺼내면 비녀의 색이 검어진다. 이 책에 실려있는 각종 검시 방법들이다. 지금의 잣대로 봐도 과학적인 대목이 적지 않지 않은가.

‘신주무원록’은 말 그대로 ‘무원록’에 새롭게 주석을 단 책이다. 억울함을 없게한다는 의미의 ‘무원록’은 원나라의 왕여가 1308년에 기왕의 법의학서와 당대의 판례들을 참고해 만든 책.

과학적인 수사에 의해서가 아니라 무지막지한 고문을 해서 자백을 받아내는 등 억울하게 누명을 쓰는 백성들이 적지 않음을 안 세종대왕이 이 ‘무원록’의 주석 작업을 명했고, 이 왕명을 받아 최치운 등이 다른 참고서까지 고찰, 주석을 달고 음훈을 병기해 ‘신주무원록’을 펴냈다. 이 책은 이후 18세기 ‘증수무원록’이 간행될 때까지 조선시대 검시의 표준 서적으로 기능했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검시의 지침을 다룬 법의학서인 만큼 이를 통해 조선 시대 법의학의 수준을 가늠해 볼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이 책은 법의학서에 그치지 않고, 사람사는 세상에서 일어날 수 밖에 없는 범죄와 얽힌 생활사의 다양한 측면을 담고 있는 생활사 연구의 자료이기도 하다.

최성욱 기자


입력시간 : 2003-10-06 09:48


최성욱 기자 feelchoi@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