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백악관에서 그린까지



■ 백악관에서 그린까지

돈 반 나타 주니어 지음 정승구 옮김 아카넷 펴냄.

골프 유머 중에 이런 게 있다. “골프는 다 좋은 데 딱 하나 나쁜 게 있지.”, “그게 뭔데?”,“너무 재미있다는 것.”한국에서는 이런 말도 한다. “골프 약속을 해놓고 골프장에 나타나지 않아도 용서되는 단 한가지는?”, “본인 사망”

골프는 마력의 스포츠다. ‘귀족들의 놀음’이라는 비판이 아무리 따가워도, 한번 골프에 맛을 들인 이는 좀처럼 헤어나지 못한다. ‘백악관에서 그린까지’는 미국 대통령과 골프에 관한 이야기다.

지은이에 따르면 골프라는 스포츠의 유혹 앞에 미국 대통령도 어쩔 줄 몰라 했다.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에서부터 조지 W 부시에 이르기까지 지난 미국 100년의 역사에서 17명의 대통령이 존재했고, 이들 가운데 14명이 골퍼였다. 이는 골프가 지금까지 백악관 주인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스포츠였음을 보여준다. 뉴욕 타임스 기자인 지은이는 역대 대통령의 골프 스타일을 면밀히 조사하면서 골프라는 프리즘을 통해 미국 현대 정치사를 조망한다.

지은이가 보기에 골프는 대통령직을 수행하는 데 위험한 요소가 아니며, 어떻게 보면 필수 요소였다. 대통령에게 골프는 프라이버시라고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서 세시간 동안 탈출할 수 있는, 블라인드로 외부로부터 차단되는 유예의 순간이었다.

지은이는 이를 “그들에게는 진정한 축복의 시간”이라고 말한다. 대통령들이 골프에 끌릴 수 밖에 없는 가장 중요한 까닭을 지은이는 또 이렇게 분석다. “골프는 ‘노(No)!’라고 말한다.” 골프는 가장 강력한 권력을 가진 대통령도 그저 보통 사내와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을 스스로 깨닫게 해준다는 것이다.

골프는 인정사정없는 스포츠다. 골프공은 자신을 내려치는 사람이 대통령이든 동네 아저씨든 개의치 않는다. 골프는 또 플레이어의 감춰진 인격을 노출시키는 힘을 갖고 있다. 지독한 골프광이었던 코미디언 밥 호프는 이렇게 말했다.

“대통령이 샌드 트랩에서 보이는 행동은 긴급한 국정 사안에 그가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를 여실히 드러내주는 바로미터와 같다.” 골프는 심판이 없는 유일한 스포츠로 명예와 신뢰를 존중한다. 그래서 골프는 골퍼들에게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이는 냉정한 거울이다.

자 과연 미국의 대통령들은 이러한 골프 본연의 정신에 얼마나 충실했을까? 베스트 플레이어로 꼽히지만 내기에서는 지독한 승부욕을 보인 존 F. 케네디, 숱한 멀리건 샷의 남발로 ‘빌리건’이라는 말까지 만들어 낸 빌 클린턴, 취중 골프를 즐긴 워렌 G. 하딩, 가장 많은 갤러리들을 공으로 맞힌 제럴드 포드 등, 골프를 즐긴 10여명의 대통령들의 갤러리가 되어 이들과 함께 필드를 한번 거닐어 보자.

최성욱 기자


입력시간 : 2003-10-06 18:43


최성욱 기자 feelchoi@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