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센 세대교체 바람속에서 명예회복 벼르는 인기 '연금술사들'

스타 작가, 이름 값 할까?
거센 세대교체 바람속에서 명예회복 벼르는 인기 '연금술사들'

영화가 감독의 예술이고, 연극이 배우의 예술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드라마는? 작가의 예술이다. 극본의 내용과 전개 방향에 따라 시청자의 반응이 좌우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영화 시나리오 작가의 작품료에 비해 드라마 작가의 작품료는 비교가 안될 만큼 높다.

요즘 웬만큼 이름이 알려진 작가는 50분물 기준으로 한 회당 원고료(특별 원고료 포함)가 1,000만원에 육박한다. 그것도 모자라 방송사들은 스타 작가들의 영입에 수억원의 계약금까지 지급하고 있는 상황이다. 브라운관이나 스크린에서 찬연하게 빛나는 스타들도 드라마에 출연할 경우 회당 1,000만원을 기록하는 경우가 손에 꼽힐 정도이니 작가의 대우와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 한눈에 알 수 있다.

방송 환경은 급변하고 있다. 하지만 드라마에 대한 대중의 환호와 관심의 강도는 방송 초창기나 다양한 뉴미디어 매체가 등장한 지금에도 여전히 높다. 그래서 방송사에선 드라마 제작에 총력을 기울이고 시청률의 향배를 좌우하는 스타 작가 잡기에 혈안이 돼 있다.

하지만 대중문화의 코드가 바뀌고 드라마를 소비하는 시청층이 변하고 있다. 또한 인터넷 소설의 영상화 작업이 활발해 지는 등 방송 환경도 급변하고 있다.

이에 따라 드라마 작가들의 기존 세력 판도에 변화의 격랑이 일고 있다. 스타 작가들의 세대교체 바람이 거세게 일고 있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작품 색깔이 다른 소장파와 노장파의 대표적인 작가로 알려진 두 사람의 드라마가 시청자와 만날 예정이어서 현재 일고 있는 작가의 세대교체가 단발에 그칠지 아니면 지속될지 가늠할 수 있어 방송계와 시청자 모두 비상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름값에 손상 입은 스타들

4일 첫방송 된 SBS ‘완전한 사랑’은 흥행의 보증 수표이자 한국 드라마 작가의 역사인 김수현의 작품. ‘내사랑 누굴까’ 이후 1년 만이다. 이 드라마는 불치병에 걸린 아내를 지극한 정성으로 보살피는 사랑의 이야기로 차인표, 김희애, 이승연 등이 출연하고 있다.

지난 1월 새로운 사극의 지평을 열었다는 ‘대망’ 이후 현대극으로 복귀한 송지나는 10월 29일 첫방송될 예정인 KBS ‘로즈마리’를 집필한다. ‘로즈마리’는 암에 걸려 죽어 가는 아내가 남편과 불륜 관계인 젊은 여자에게 남편과 자식을 맡기는 등 헌신적인 아내의 사랑을 말해주는 드라마다. 유호정 김승우 배두나가 캐스팅됐다.

두 사람은 이들 작품 이전의 드라마에 부진을 면치 못해 명예회복을 할지도 관심이다. 김수현의 ‘내사랑 누굴까’는 초반 부진을 면치 못하다 경쟁작이었던 MBC ‘여우와 솜사탕’이 끝나자 시청률이 올라가는 수모를 겪어 김수현의 명성에 흠집이 생겼다. 송지나 역시 내용의 복잡함으로 ‘대망’이 ‘여명의 눈동자’ ‘모래시계’의 영광의 근처에도 가지 못해 스타성에 금이 갔다.

이름 값에 손상이 간 스타 작가는 이들만이 아니다. ‘전원일기’ ‘그대 그리고 나’ ‘파도’ 등 작품성과 흥행성에서 모두 성공한 김정수 작가도 올 들어 방송한 SBS ‘흐르는 물처럼’에서 실패를 맛보았고 ‘은실이’ ‘푸른 안개’로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던 이금림 작가도 요즘 방송되는 일일극 SBS ‘연인’의 시청률 저조로 조기 조영이라는 말까지 거론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앞서 ‘파랑새는 있다’ ‘서울의 달’의 김운경은 최근 방송이 끝난 MBC ‘죽도록 사랑해’ 에서 10%대라는 저조한 시청률로 초라한 종영을 맞았다. 새로운 스타 작가군이 몰려 있는 30~40대 작〉湧?침체도 여전하다. ‘장미와 콩나물’ ‘아줌마’로 상한가를 쳤지만 ‘술의 나라’의 초반 시청률 저조로 연출자와 견해차를 보여 중도 하차한 정성주가 대표적인 경우다.


방송사 "최완규를 잡아라"

중견 스타 작가들의 침체 속에 그나마 명성을 유지하는 작가는 ‘야인시대’의 이환경이다. 그는 ‘용의 눈물’ ‘태조 왕건’ 등 사극과 시대극에 남성성을 내세우는 작풍으로 눈길을 끌어 높은 인기를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또한 중견 스타 작가의 침체 속에 여전히 방송사의 최대 스카웃 표적이 되고 있는 30대 작가가 있다. 바로 최완규다. ‘종합병원’ ‘간이역’ ‘허준’ ‘상도’에서부터 올들어 최대의 히트작이라는 ‘올인’에 이르기까지 집필하는 드라마마다 성공을 거두고 있는 최완규는 30대 스타 작가군의 선두이다. 최완규가 30대 흥행의 미다스 작가라면 노희경은 드라마의 완성도와 시청자들이 되새길 수 있는 의미가 충만한 작품을 줄기차게 써오는 30대 작가주의적 작가의 선두주자다.

중견 스타작가의 침체에 비해 신예 작가들의 활약은 눈이 부시다. 1999년 베스트극장 공모로 작가로 데뷔해 단막극 몇 편 쓴 뒤 연속극에 도전한 정형수는 사극에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감성을 반영하는 대사를 가미해 ‘다모’ 폐인 열풍의 진원지 역할을 했다.

또한 원작을 바탕으로 인터넷 세대의 감각과 문화를 잘 살린 ‘옥탑방 고양이’의 극본을 쓴 민효정과 구선경도 미니 시리즈는 처음 도전한 초보 작가들이다. 이외에 방송 초반부터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대장금’ 의 김영현도 미니 시리즈의 작업을 하다 본격 대하사극에 처음 도전해 신예작가 돌풍에 합류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물론 미니 시리즈나 연속극에 도전해 쓴 잔을 마시는 신예 작가들도 적지 않다. ‘번지점프를 하다’ 고운님 작가는 방송 3사의 스카웃 대상이 돼 높은 관심 속에 SBS ‘첫사랑’으로 드라마 작가로 데뷔했으나 저조한 시청률로 작가에게 가장 치욕스런 조기조영의 아픔을 겪었다.

요즘 일고 있는 드라마 작가들의 판도 변화의 격랑은 아무리 스타 작가라도 시청자의 급변하는 감성과 취향을 간파해 새로운 주제와 스타일을 개발하지 않으면 도태될 수밖에 없는 대중문화의 차가운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스타 작가라는 김수현과 송지나의 드라마에 시청자의 반응이 어떻게 나타날지 궁금하다.

한국 드라마 작가 변천
   


1961년 KBS 개국에 뒤이어 문을 연 TBC(1964년 개국), MBC(1969년)로 본격적인 텔레비전 시대가 열린 이후 텔레비전 방송의 꽃은 단연 드라마였다. 1960년대와 1970년대 중반까지 외국 번역물과 희곡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와 사극이 인기를 끌었는데 이때 작가들은 주로 희곡 작가 차범석, 이용찬, 유호, 시나리오 작가 이희우, 임희재 등 연극과 영화 극본을 썼던 사람들이 주류를 이뤘다.

또한 특이한 점은 '여로'의 연출자 이남섭처럼 PD가 직접 드라마 극본을 집필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일일극 시대가 열린 1970년대 중반부터는 여성의 드라마 작가 진출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그 선봉에 라디오 극본공모로 작가로 데뷔한 김수현이 있었다. 김수현은 '새엄마' '수선화' '여고 동창생' 등 수많은 일일극을 집필하면서 모두 성공을 거둬 이때부터 흥행의 보증수표 역할을 했다.

이때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작가는 나연숙으로 '달동네 사람들' '보통 사람들' 등 장안의 화제가 된 작품을 집필했다. 1970~1980년대 현대극에서 김수현이 독보적이었다면 사극에선 신봉승의 독주 체제가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신봉승은 '옥녀' '정부인' '교동마님' '간양록' 등 수많은 사극을 써 사극의 인기 장르로 자리잡게 한 일등공신이다.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접어 들면서는 '전원일기' '그대 그리고 나' 등 삶의 진정성이 묻어나는 작품을 쓴 김정수, '물보라' '옛날의 금잔디'의 이금림, '서울의 달'의 김운경, '아들과 딸' 의 박진숙 등이 스타 작가로 부상했다.

1992년 한국 최초의 트렌디 드라마 '질투'를 시작으로 감각적이고 경쾌한 트렌디 드라마의 선풍이 2000년대까지 이어지면서 대거 작가들의 세대교체가 이뤄졌다. 베스트극장 등 단막극 공모로 데뷔한 신인 작가들이 득세를 했는데 박예랑, 강은경, 오수연, 이희명, 김진숙, 이선희 등이 대표적이다. 반면 진중한 작품으로 승부를 건 젊은 작가들로는 송지나, 노희경, ㅌ뵌? 정성주, 최완규 등이 있다.

배국남 대중문화평론가


입력시간 : 2003-10-10 15:53


배국남 대중문화평론가 knbae24@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