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지독한 아름다움…



■ 지독한 아름다움-김영숙 아줌마의 도발적인 그림읽기

김영숙 지음/아트북스 펴냄.

“새로 생긴 남자 친구가 얼마나 멋있고, 얼마나 내게 자상하게 대해주는지를 자랑하고 싶어 커피 값까지 내주면서 친구들을 불러 모으듯이, 나는 나를 매혹시키는, 그리고 나를 꼼짝 못하게 하여 나의 생활을 지배하고 간섭하는 멋진 애인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다.”

책 제목에서 짐작했겠지만, 애인에 대한 사랑을 이렇게 공개적으로 털어놓은 이는 아이 둘 낳아 기르고 남편 뒷바라지 하느라 바쁜 아줌마다. 그리고 그 애인의 정체는 다름아닌 그림이다.

이 아줌마는 자신의 눈으로 그림을 본다. 본래 성격이 그러한지 몰라도 그 눈빛은 도발적이다. 이 아줌마는 이렇게 이야기 한다. “나는 마치 바람 피우듯, 나의 한 부분이 되지 않아도 전화를 하면 바쁘지 않는 한 날 만나기 위해 달려 나와주는 이 귀여운 카사노바를 내 식으로 이해하고 내 식으로 사랑할 수 있는 것이 즐겁다.”

이 아줌마는 미술사학자가 아니다. 때문에 이야기의 얼개가 ‘뻔한’ 명화 읽기로 흘러가지 않는다. 대신 생활이 묻어있고,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긴다. 이야기 재주도 남다르다. 서양미술사와 신화를 넘나들며, 생활 속의 개똥철학까지 곁들이며 입담을 자랑한다. 가히 ‘미술계의 구성애 아줌마’라고 불러도 모자람이 없을 정도다.

책에는 많은 명화들이 실려있다. 그림 속의 여자들은 아름다운 옷을 입은 우아한 자태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누드로 모습을 드러내는가 하면, 때로는 악녀로 등장했다. 이 아줌마는 당연 이들 여자 편이다. 페미니즘적인 시각을 꼿꼿하게 지켜나간다. 대부분 남성이 그린 이들 그림에서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불평등한 시각과 잘못된 해석을 날카롭게 끄집어낸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목욕하는 수산나를 구경하던 노인들이 그녀를 모함하는 바람에 사형을 당할 뻔 했다는 구에르치노의 ‘수산나와 노인들’에 얽힌 이야기를 하면서 “사실 성서에는 수산나가 옷을 벗고 있었다는 소리는 없다. 그런데도 홀라당 그녀을 벗겨놓고 감상자로 하여금 노인네들의 음심에 다소 정당성마저 불러일으키게 하려는 남성 화가들의 속이 너무 뻔히 보이는 것 같다”고 지적한다.

이 아줌마, 그렇다고 철두철미한 페미니스트는 못 되는가 보다. 머리말에 이렇게 써놓았다. “나는 세상에 좋은 남성들도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 간간이 내가 비아냥거리는 대상으로 삼은 남자는 어떤 ‘나쁜’남자들을 지칭하는 것이지, 남성 모두를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최성욱 기자


입력시간 : 2003-10-16 15:55


최성욱 기자 feelchoi@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