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미의 우리풀 우리나무] 부들


부들 한아름 꺾어다 꽃병에 꽂아 두고 나서 이제 가을이 왔나 보다 하고 느끼던 시절이 있었다. 모양도 독특하고 느낌도 특별하고, 자라는 곳도 평범하다고 할 수 없는 물가여서 인상깊게 남곤 한다. 하지만 그나마 부들이 살만한 곳들이 점차 줄어들고 있으니 들판을 헤메다 부들을 만나면 무조건 반갑다.

부들은 부들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 풀이다. 못이나 습지에 자리를 잡고 뿌리줄기를 옆으로 뻗으며 퍼져나가면서 곧은 줄기를 위로 올려보내고 어린아이 키만큼 높이 자란다.

우리가 꽃일까? 열매일까? 궁금해 하는 그 누런색의 방망이 같은 것은 꽃이기도 하고 그 상태 그대로 열매로 익어 가므로 열매일수도 있다. 꽃은 보통 7월에 피므로 이때 보이는 것은 꽃, 가을에 보이는 것은 열매로 생각하면 쉽지만 자세히 관찰해보면 꽃일 경우에는 수술같은 것이 살아 있으므로 구분해 낼 수 있다.

흔히 꽃이라 하면 화려한 꽃잎을 먼저 생각한다. 하지만 식물에 따라서는 바람의 힘을 빌어 수분을 하므로 꽃충을 유인하는데 필요한 꽃잎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들도 있는데 부들도 그러하다. 부들은 꽃잎없는 수꽃들이 모여 웅화서 즉 수꽃차례를 만들어 위에 달리고 암꽃들이 모여 조금 작은 자화서 즉 암꽃차례를 만들어서는 아랫쪽에 달린다. 열매가 충분히 익으면 종자를 날리기 위해 솜털같은 것이 부풀어져 나온다.

부들이란 특별한 이름은 우리말 이름인 듯하다. 적용되는 한자가 없는 것으로 미루어 그밖에 많은 이름으로 불리워 졌는데, 포초(蒲草), 향포, 포채라고도 하며 꽃가루를 쓰는 약재이름은 포황, 꽃화서 전체는 방망이 같아하여 포봉, 새싹은 약(蒻)등으로 구분해 부르기도 했다. 그 이름만큼 다양하게 이용되어 왔다는 증거일 것이다.

다른 나라에도 부들이야기가 있는데 대중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유대의 왕’이라 비웃었으며 손에 들고 있게 한 식물이 바로 부들이었다는 기록도 있고, 일본의 신화에는 부들 꽃봉오리가 천상의 생명을 바람을 타고 날려 지상에 생명의 씨앗을 옮겨다 주었으며 그 씨앗이 닿은 곳에서 여러 신들이 태어나고 천지창조가 시작되었다는 신화도 전해져 내려온다.

앞의 이야기에서 보듯이 부들은 아주 긴요한 약재로 한방에서나 민간에서나 널리 이용되었다. 특히 말린 꽃가루는 월경불순과 산후어혈 등에, 꽃가루를 검게 볶은 것은 각종 출혈을 비롯하여 대하증, 음낭습진 등에 쓰였다고 한다. 이외에도 어린 순은 무쳐 먹거나 뿌리와 같이 쪄서 먹었다는 기록도 남아 있고 죽순처럼 요리했다고도 한다.

또 화서를 말려서 불을 붙여 양초나 횃불 대용으로 쓰거나, 둘둘 뭉쳐서 침구 속에 넣어 솜처럼 이용하기도 했다. 꽃꽂이 소재이기도 하고, 예전엔 우선 1m씩 자라는 가늘고 긴 잎을 솜씨 좋게 엮어서 방석, 부채, 바구니 등과 같은 다양한 여러 기구들을 만들어 썼다. 시원한 부들잎 자리를 깔고 청하는 한여름의 낮잠은 얼마나 달콤했을까?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입력시간 : 2003-10-31 10:51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99@fog.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