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미의 우리풀 우리나무] 돌배나무, 산돌배나무


요즈음은 산행에서 잘 익은 돌배나무나 산돌배나무 한 그루 만나기가 쉽지 않다. 한 잎 베어 물면 입안 가득 고이는 그 향기롭고 달콤한 맛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봄에는 온통 마음을 뒤흔드는, 화사하면서도 흰 꽃들을 가득 매달고, 가을이면 파란 하늘 가득 귀엽고 맛날 열매를 오래오래 붙잡고 있으며, 술병에 담기면 그 향기가 겨울을 넘기도 한다.

배나무라하면 여러 종류가 있다. 산과 들에서 자라는 우리나라의 야생배가 있고 과일나무로 재배하는 것이 있는데, 그 가운데도 아주 오래 전부터 재배해 온 재래종이 있는가 하면, 요즈음 과수원에서 만나는 최근 들여 왔거나 개발된 품종들도 많이 있다. 돌배나무나 산돌배나무는 그 가운데 가장 자주 만날 수 있는 야생하는 우리 배나무이다.

가을 산행에서 황토빛으로 잘 익어 보이는 돌배나무나 산돌배나무를 만나면 우선 반갑고 정겹다. 번번이 속으면서도 의례 손을 내밀어 하나 따서는 베어 물게 된다. 퍼석이면서도 신물과 단물이 배어 나오는 이 야생의 나무들은 시장에 나오는 물많고 시원한 배맛을 느낄 수는 없어도 그래도 풋풋한 자연의 향기가 묻어 있어 좋다.

돌배나무는 장미과 배나무속에 속하는 낙엽성 큰 키나무이다. 산에서도 자라고 마을 근처에서도 볼 수 있다. 하얀 돌배나무의 꽃은 지름이 손가락 마디 하나 길이 만큼 큼직하여 시원스레 보기 좋다. 가을에 익는 열매들은 지름이 5㎝정도로 작아 얼마나 귀엽고 정다운지 모른다.

산에서 만날 수 있는 야생 배나무가 우리 나라에는 여럿 있는데, 열매의 지름이 3~4㎝ 정도 되는 산돌배나무, 황해도 이남 지역에서는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콩배나무가 있다. 이 나무는 이름 그대로 꽃도 작고, 열매는 콩보다는 조금 커서 앵두만한 배가 달린다. 이러한 야생의 배나무들은 열매를 따먹을 욕심에서 보다는 하얀 배꽃과 귀여운 열매를 즐기는 관상수로써 더 적합할 듯 싶다.

산돌배나무나 돌배나무의 열매들은 먹을 것은 많지않아 개량된 배나무 품종들에 뒤지지만, 배나무 아래 송아지를 매어 놓았더니 송아지는 간데없고 고삐만 남았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효소의 작용이 강력하다. 때문에 고기를 연하게 하고 소화를 도우며 담, 기침, 변비, 이뇨 등에도 효과가 있다.

식용과 약용 이외에도 배꽃이 필 때는 꿀이 많이 나서 양봉업자들에게 환영을 받으며(최근에는 농약 때문에 이 또한 문제가 있다), 목재는 매끄러우면서도 단단하여 예전에는 염주알이나 다식판 등을 만들었고, 이외에도 주판알과 각종 기구재로 쓰였다고 한다. 더욱이 술을 담글 때는 야생의 돌배나무나 산돌배나무가 훨씬 향기롭고 좋다.

산돌배나무나 돌배나무는 종자로 번식하면 된다. 최근에는 야생의 특성을 잘 살려 새로운 품종을 육성하는 연구도 한쪽에서는 진행되고 있다. 재배를 하고자 하면 이식 하는 것을 싫어하고 주변에 향나무를 심으면 배나무에 병을 옮기는 중간숙주의 역할을 하므로 금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배나무를 특별히 사랑했던 듯 하다. 백성들이 산에서 만나는 배나무들이야 모두 돌배나무나 산돌배나무가 대부분일 터이다.

배나무 대해서는 우연히 동시에 생긴 일을 두고 말하는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 배를 먹으면 이가 하얗게 되므로 한 가지 일을 하고 두 가지 이익이 있을 때 쓰는 ‘배먹고 이닦기’, 노력하지 않고 바라지 않는데 좋은 일이 생기지 않는다는 뜻의 ‘다문 입에 배 안 떨어 진다’라는 속담 등등. 튼튼한 열매를 매달고 한 해를 마감하는 돌배나무를 보자니 그간의 노고가 예사롭지 않게 느껴지며 마지막 속담이 마음에 남는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입력시간 : 2003-11-12 16:39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99@fog.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