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미의 우리풀 우리나무] 약모밀


어느새 겨울이 슬며시 다가오니 따뜻한 차 한잔이 간절해지곤 한다. 지난 가을 동료가 따다 준 오미자가 지금쯤 잘 우러났을 것이고, 산국의 꽃잎 향을 즐기는 국화차는 생각만으로 기분좋아 진다. 약모밀차는 몸에 좋다하여 약으로 마시기 시작하였지만 옅은 보리차처럼 구수한 냄새가 나서 이 계절이면 생각나는 식물잎차의 하나가 되었다.

약모밀은 삼백초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이다. 사실 자생지에 대한 논란이 많이 있으므로 이 식물을 우리식물의 범주에 넣느냐가 다소 고민이긴 하지만 야생화한 군락들도 볼 수 있고 무엇보다도 쓰임새가 많고 친근하니 원칙적인 분포논쟁을 뒤로 하면 넓은 의미로 우리 꽃이려니 해도 될 성싶다.

약모밀이 본래 키가 20~50㎝정도 자라는데 주로 지하경을 통해 퍼져 나가는 풀이어서 다소 누은 듯 보이기도 한다. 이른 여름에 하얀 꽃이 피어 예쁘다. 본래 식물학적으로 이 식물군은 꽃잎이 없는 무판화군에 속하니까 우리가 꽃잎이라고 생각하는 약모밀 꽃에 있는 4장의 흰색 잎은 정확히 말하면 ‘포’라는 기관이며, 약모밀 꽃은 꽃잎이 없이 3개의 수술과 1개의 자방으로 이루어진 작은 꽃들이 많이 모여 하나의 타원형 꽃차례(수상화서)를 만든다.

꽃잎이 없어 눈에 잘 뜨이지 않는 약점을, 포라는 다른 기관을 흰색으로 만들어 극복하며 살아가는 이 식물의 지혜가 놀랍다. 잎은 어긋나는데 자루가 길고 심장모양으로 생겼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약모밀이란 이름은 식물학적으로는 메밀과 관련 없지만 잎의 모양새가 메밀을 닮았고 또 약으로 쓰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 같다. 한자로는 약모밀을 어성초(魚腥草)라고 쓰는데, 이 식물이 우리나라에 건강식품으로 들어와 알려질 때 어성초라는 이름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일반인들에게는 약모밀이라는 진짜 이름보다 이 이름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 어성초란 이름은 식물체를 비비면 비릿한, 절대로 잊을 수 없는 강력한 냄새가 나는데 이것이 바로 생선 비린내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하지만 이 고약한 냄새는 차를 끓이면 나지 않는다. 울릉도에서는 약모밀을 두고 삼백초라고 부르고 판매하지만 삼백초라는 별도의 식물이 있으므로 이는 잘못이다. 흰색의 포 4장이 열 십자 모양으로 붙어 있어 십자풀이라고도 하고 일부 남부지방에서는 어성채, 북한에서는 즙채하고도 한다.

약모밀이 주목을 받게 된 것은 일본에서였다. 히로시마에 원폭이 떨어진 후 사람들은 이곳은 적어도 수십 년간은 아무 것도 살지 못하는 불모의 땅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바로 이듬해 그 죽음의 땅에서 파릇한 새싹을 내보내는 식물이 있었는데 바로 약모밀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 식물에 관심을 두기 시작하였고 항생효과가 일반 식물의 4만배에 가깝다는 보고도 있다고 한다. 그밖에 아주 여러 가지의 현대병에 대한 치료효과가 있다고 알려지고 있다.

볕이 잘 드는 집 한켠에 한 무더기 심어 놓으면 큰 보살핌 없이 잘도 자란다. 꽃도 보기 좋고, 더러 시중에는 잎에 희고 노랗고 붉은 얼룩이 들어간 원예품종도 나와 있어 잎 감상도 좋다. 무엇보다도 벌레에 물리거나 진물이 나거나 하는 일에 상비약처럼 바로 잎을 따서 비벼 붙이면 효과가 있다. 벌레가 집안에 고이는 것을 막는 효과도 있다고 하고, 물론 이런 쓸쓸한 늦가을날에는 말려두었던 잎을 꺼내어 차를 한잔 마셔도 좋고.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입력시간 : 2003-11-20 17:05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99@fog.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