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기 상종가현실과의 괴리감 불구 시청자에게 큰 반향

'장금에 열광하고 '시우' '영애'에 감동받고…
<대장금>, <완전한 사랑> 인기 상종가
현실과의 괴리감 불구 시청자에게 큰 반향


정치권과 기업 간의 검은 돈 거래에 대한 논쟁은 국민은 안중에 두지 않고 정당 간, 정당과 청와대 간의 끝없는 정쟁으로 확전을 거듭하고, 전 재산이 29만원이라는 밝힌 전두환 전 대통령의 둘째 아들은 거액을 해외로 빼돌렸다는 혐의로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다.

일부 기업주는 잘 봐달라고 수십억원을 정당에 상납하고, 재벌들의 수백억원에 이르는 편법 상속이 판을 치며, 하도 뇌물을 많이 받아 어디서 받았는지 조차 기억 못하는 공무원이 구속되는 등 비리와 부정, 부패가 현실 속에서 심한 악취를 풍기고 있다.

컴퓨터 채팅에서 만나 하룻밤의 쾌락을 쫓아다니는 사람들이 적지 않고, 거액을 받고 동거하거나 명품 하나에 알몸을 기꺼이 바치는 여성들이 있으며, 명문대와 최소 70억원의 재산, 그리고 출중한 외모와 반듯한 직장이 있어야 일등급 신랑ㆍ신부 판정을 받는 결혼시장이 존재한다.

방송에 나와 서로 없으면 죽고 못산다고 외치던 연예인들이 얼마 가지 않아 상대방(한때 남편과 부인이었던)의 약점과 사생활마저 들춰내는 추악한 폭로전을 펼치고, 좋을 때는 연인이라 주장하지만 힘들거나 손해가 생길라치면 ‘쿨’이라는 단어를 들이대며 헤어짐을 강요하고, 덕수궁에서 결혼 야외사진 찍던 사람들이 서울 서초동 가정법원으로 향하는 속도는 가속도가 붙어 더욱 빨라지고 있다.


성공과 사랑의 모습

그런데 이상하다. 시청자들이 열광하는 브라운관 풍경과 인물은 이런 현실의 분위기와 너무 다르다. 요즘 전 국민의 반 이상이 본다는 MBC 사극 ‘대장금’(시청률 51%)과 주인공 장금(이영애),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시청률(27%) 2위를 차지한 SBS ‘완전한 사랑’과 주인공 시우(차인표), 영애(김희애)이다. 이 두 드라마는 우선 사람들이 가장 관심이 많은 성공과 사랑이라는 화두를 전면에 내세웠다.

하지만 관심 있는 주제를 그리고 있는 두 드라마 속 주인공은 분명 현실 속에서 만나는 인물들과 거리가 먼 인물상이다. 이 지점이 바로 두 드라마의 인기 원인의 원천이다. 현실이 어둡거나 바람직하지 않는 방향으로 흐를수록 인간의 욕구는 잘못된 현실이나 인물들에 대한 반작용으로 바람직한 현실이나 이상적 인물에게 집중되게 된다. 그렇게 됐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을 투영하면서.

‘대장금’에서 장금은 요즘 트렌디 드라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재벌이나 조건 좋은 남자를 만나 신데렐라가 되는 인물이나 엘리베이터를 탄 여성이 아니다. 금영과 최 상궁으로 대변되는 권모술수 세력의 박해 속에 정도(正道)와 실력 그리고 인간성으로 어려움과 좌절을 극복을 하는 인간주의 얼굴을 한 성공 이데올로기의 구현체이다.

장금은 분명 로또 당첨과 등가물인 재벌과의 만남을 통해 성공을 꾀하려는 트렌디 드라마 속 주인공들과 현실 속의 조건 지상주의 불나방들의 한탕주의와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인물이다. 부정과 부패, 비리와 음모로 성공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요즘에 사람들은 자신의 정당한 노력과 실력으로 자신의 분야에서 성공을 하려는 사람들을 보고 싶어한다. 이러한 시청자의 정서에 장금이 불을 당긴 것이다.

성공을 다룬 ‘대장금’과 달리 스타 작가 김수현의 ‘완전한 사랑’은 아내의 죽음을 통해 본 부부간의 진정한 사랑이라는 진부함 마저 느껴지는 주제를 전면에 내세웠다.

재벌가의 아들 시우를 과외지도하면서 만난 영애는 양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사랑의 힘을 믿고 결혼하지만 시댁의 반대와 괴롭힘 속에서도 남편과 자식을 사랑을 지키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시우는 재산이라는 기득권마저 포기하고 아내와 자식의 사랑 그리고 가정의 행복에 최고의 가치를 부여하는 인물이다.

영애는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흔히 그려지는 재벌가의 며느리가 아니라 재벌가로 얻어지는 급부(?를 포기하고 소박한 가족의 사랑을 택해 당당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여성이고, 시우는 요즘 새삼스럽게 연예인과의 이혼과 정치인과의 검은 돈 거래로 사람들의 시선의 중앙에 들어 선 재벌가의 아들들의 모습과 사뭇 다르다.

특히 특발성 폐섬유종으로 죽어 가는 아내 영애를 지켜보며 그녀를 지키려는 극중 재벌 2세 시우의 모습은 눈물겹도록 헌신적이며 순수하다.

사업에 실패했다고 해서, 돈을 많이 벌어오지 못한다고 해서, 아프다고 해서 헌신짝 버리듯 아내와 남편을 버리고, 사랑한다는 말을 수없이 하면서도 이해와 조건에 따라 수시로 연인의 대상을 바꾸는 현실의 풍속이 고착화할수록 사람들은 사랑으로 서로를 감싸는 시우와 영애에 눈물을 보내며 이들을 현실 속에서 갈구하게 된다.

시청자의 저변에 강하게 자리잡고 있는 이러한 욕구를 자극하고 현실속 풍경에 메스를 가하는 것이 ‘대장금’과 ‘완전한 사랑’이 큰 인기를 모으는 가장 주요한 원인인 것이다.


생동감 넘치는 캐릭터들

물론 드라마를 비롯한 대중문화 작품은 주제나 매력적인 캐릭터의 배치만으로 성공할 수 없다. 더욱이 수많은 드라마나 영화가 쏟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엄청난 인기를 끈다는 것은 주제와 캐릭터 외에 다른 요인들이 작용한다.

‘대장금’은 연기자를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이야기의 긴장감의 완급을 적절하게 조절하고, 사극의 전통을 이어가면서도 결코 현대의 삶과 유리되지 않는 공감력을 높이는 이병훈PD의 연출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또한 ‘완전한 사랑’은 여성들의 감성과 정서에 최대의 파장을 일으키는 대사의 구사, 극성(極性)의 높낮이의 능수능란한 조정, 캐릭터의 생생함을 극대화하는 극적 전개를 하는 김수현 극본의 탄탄한 힘이 ‘완전한 사랑’의 인기의 원동력이다.

스타 캐스팅과 주연과 조연의 조화 역시 두 드라마의 공통점인데 이 점도 시청자의 큰 반향을 이끌어내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요즘 드라마나 영화 등이 시청률과 관객 흥행을 위해 대중에게 인기가 높은 스타를 기용하는 것은 철옹성 같은 법칙이다.

그러나 상당수 영화나 드라마들이 캐릭터와 스타 이미지의 관계나 연기력을 보지 않고 단순히 인기와 외모만을 고려해 캐스팅 하는 ‘묻지마 캐스팅’이 성행해 스타를 기용하고도 성공하는 작품보다 실패하는 드라마나 영화가 훨씬 많다.

‘대장금’ 에서의 장금역을 맡은 이영애는 장금이라는 캐릭터와 그녀가 갖고 있는 기존 이미지와는 상당한 간극이 있다. 아직까지 그 간극은 자연스럽게 메워지지 않고 있지만 쾌활하고 당돌함 마저 있는 장금을 표출하는 이영애의 모습에서 드러나는 의외의 느낌이 캐릭터와 이미지에서 오는 간극을 극복하는 기능을 하고 있다.

또한 이영애와 호흡을 맞추는 한 상궁(양미경) 최 상궁(견미리) 약방의 감초격으로 등장하는 덕구(임현식)와 덕구 처(금보라)등 조연들의 생동감 넘치는 캐릭터 연기가 시청자들의 호평을 받고 있다.

‘완전한 사랑’에서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당당함과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거는 헌신적인 영애를 뛰어난 연기력으로 소화해 김희애표 캐릭터를 만든 김희애와 ‘바른 생활 사나이’라는 평소의 이미지를 자연스럽게 극중 인물 시우로 연결시킨 데다 이전 작품에서 보기 힘든 자연스러움이 묻어나는 연기력을 보이고 있는 차인표, 이 두 사람의 열연이 시청자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물론 정혜선, 강부자, 홍석천, 이영범, 김나운 등 조연들의 노력도 칭찬 받을 만 하다.

성공을 위해 권모술수가 판치고 일회용 인스턴트 사랑이 난무하는 현실과 너무도 판이한 두 드라마를 보면서 사람들은 위안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상적인 인물상을 구현하는 주인공들을 바라보면서 대리만족을 얻는다. 현실 속에서 그런 모습을 닮으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 노력이 구체화될수록 픽션인 드라마의 존재의미는 커진다.


잘못된 현실의 반작용

물론 정치 판에서도 이런 움직임이 분명 있을 것이다. 내년 총선에 나설 후보들 중 실력을 갖추며 정도(正道)를 걷는 정치판 ‘장금’을 자임하고 가족의 진정한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시우’와 ‘영애’를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우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제발 진정으로 장금과 시우, 영애를 현실 속에서, 정치 판에서 실천하기 바란다.

하지만 이런 바람을 하면서 씁쓸한 웃음이 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지난 총선 당시 최고의 인기 드라마 ‘허준’이 방송되고 있었다. 정치인 ‘허준’이 되겠노라고 다짐하던 후보 중 상당수가 현재 국회의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이들 중 적지 않은 사람이 현재 진행중인 검찰의 비리 수사를 받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도 다행이다. 요즘 일주일 중 4일은 행복하다는 사람이 적지 않다. 이들은 ‘대장금’과 ‘완전한 사랑’을 보면서 잠시 잘못된 현실의 모습을 뒤돌아 볼 수 있다고 한다. 나도 이들과 같은 심정으로 ‘대장금’과 ‘완전한 사랑’에 눈길을 주고 있다.

배국남 대중문화평론가


입력시간 : 2003-12-04 14:49


배국남 대중문화평론가 knbae24@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