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펀치] '전통'은 대머리들의 희망


새해가 되면 사람들은 으레 뭔가 다짐을 하곤 한다. 원대한 계획을 세우거나 혹은 나처럼 금연을 선언하는 등의 사사로운 약속까지, 새해를 맞는 포부는 다양하고 항상 새롭다. 매년 새해마다 금연을 선언하는 나처럼, 굳은 다짐이 번번이 깨지는 한이 있어도 그래도 사람들은 새해를 맞는 감회가 남다른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내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다짐하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 이다. 요즘 들어 부쩍 흔해진 말이 ‘아침형 인간’ 과 ‘올빼미형 인간’으로의 상반된 구분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나태와 무기력의 삶에서 벗어나 새로운 인생으로의 설계를 다짐하면서 그 약속의 첫머리로 두는 것이 아침형 인간으로의 변신이다. 조금만 더 일찍 일어나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겠다는 것이다. 사실 부지런하다는 단어는 새벽 시간을 잘 활용한다는 말과 동일시되기 일쑤다.

대부분의 성공한 기업 경영자들은 하루 4시간 이상 잠을 자지않는 새벽형 인간이 많다. 이미 작고한 한 재벌은 꼭두새벽부터 아들들과 함께 아침식사를 하는 것으로 하루를 열었다. 다른 사람들이 새벽의 깊은 단잠에 빠져있을 때 그들은 아침 밥상에서 경영을 논의하며 전의를 불태우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나는 이 새벽형 인간형과는 정반대쪽에 서있는 올빼미형 인간이다. 나의 일과는 대부분 오후부터 시작된다. 오후의 회의는 몸을 풀기위한 전초전처럼 시작해서 보통의 샐러리맨들이 퇴근을 서두르는 저녁 무렵부터는 밤으로 이어지는 본격적인 회의에 들어간다.

새벽까지 이어지는 회의와 아이디어를 얻기 위한 나만의 작업이 끝나는 시간은 대개 새벽 2시경. 그때 귀가를 해서 잠을 자면 어쩔 수 없이 늦은 아침까지 깨어나지 못한다. 아침보다는 밤에 훨씬 더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고 원고 작업도 수월하다. 나에게 이른 아침 시간이 주어진다 해도 오랜 시간 이력이 붙은 이 습성은 결코 변할 수 없을 것이다.

사실 따지고 들면 우리나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두 새벽형 인간이었다. 나 역시 한때는 새벽밥을 먹고 아침 7시 등교를 위해 정신없이 뛰어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 새벽의 선뜻한 공기에 몸을 움츠리며 종종걸음을 쳤던 고교시절을 마감한 뒤로 대학에 입학하면서부터는 오전 강의시간도 부담스러울 만큼 서서히 새벽형 인간형을 지워나갔다.

언젠가 밤새워 일하고 새벽 6시쯤 귀가하기 위해 택시에 몸을 실었을 때였다. 충혈되고 지친 내 시선에 아직은 어두컴컴한 새벽길을 분주한 모습으로 오가는 사람들이 잡혔다. 출근을 하거나 운동을 하기위해 그 이른 새벽을 달리는 사람들의 모습은 건강해보였고 아름다워보이기까지 했다. 오랜 시간 밤에 길들여진 내 눈에 새벽을 헤치고 달려나가는 그들의 모습은 신기했고 경건함 마저 느끼게 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하루에 1시간만 일찍 일어나도 할 수 있는 일은 많아진다. 출근 전에 나를 위한, 나를 단련하는 소중한 일을 하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공부를 하거나 운동을 해서 나태해진 심신을 일으켜 세우고 미래를 위해 재투자 할 수 있는 황금같은 자투리 시간이 새벽에 숨어있다.

새벽에 일어나 전의를 다지는 사람과 밤새워 일하는 사람들의 삶의 방향을 놓고 누가 옳다 그르다 단정지을 수는 없을 것이다.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의 특성과 습성을 고려해 최선의 방법을 이루면 되는 것인데 내가 아는 연예인 A는 원래 자기는 아침형 인간이었다며 큰소리를 쳐대는 것이었다.

“정말이야? 요새 녹화도 늦게 끝날텐데 어떻게 아침형 인간일 수 있니?”

“난 원래 술 먹고 외박하고 아침에 집에 들어가요. 그래서 우리 마누라가 나보고 아침형 인간이래.”

입력시간 : 2004-01-02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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