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멋 그대로… 귀향

[재즈프레소] 블루 노트 재즈맨 김창준
뉴욕의 멋 그대로… 귀향

블루 노트란 말은 재즈에서 그 의미가 각별하다. 우선 그것은 서양과는 다른 재즈 특유의 음계, 즉 재즈 선법(旋法)의 핵심적 요소를 의미한다. 다음으로, 1939년 설립된 굴지의 재즈 전문 음반 레이블이다. 최근 국내에도 지점이 설립된 유서 깊은 재즈 클럽 이름이기도 하다.

한국 출신의 재즈 뮤지션 최초로 뉴욕의 유서 깊은 블루 노트 클럽에 섰던 재즈 기타리스트 김창준(30)이 그 여세를 몰아 자신의 트리오 CJ Kim Trio로 데뷔 음반 ‘Endless Story’를 발표했다. 6월 15일 블루 노트에 입성한 지 꼭 반년만이다. ‘100개의 황금 손가락’을 통해 국내에서도 제법 알려진 피아니스트 주니어맨스, 여성 드러머 실비아 쿠엔카 등 쟁쟁한 게스트 뮤지션들의 연주가 작품을 더욱 빛내준다(S&I).

녹음된 컴퓨터 파일을 사용해 완성된 한 곡을 제외하고, 뉴욕의 재즈 전문 스튜디오 두 곳에서 녹음된 8작품 등 모두 9곡의 수록은 재즈 기타만이 낼 수 있는 유려한 매력을 유감 없이 보여 준다. 김창준은 “뉴욕의 재즈 클럽에서 활동하던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 주려 했다”며 “동시에 한국인의 취향을 많이 의식한 작품”이라고 말했다. 유일한 솔로곡인 ‘My Funny Valentine’은 말마따나 팬서비스의 성격이 짙다.

결성된지 3년째, 뉴욕에서 명성을 쌓아 가고 있는 트리오 멤버들과의 호흡이 역시 가장 큰 공신이다. 건반 주자 에후드 아셔리(24), 드러머 제이콥 멜키어(34) 등 나머지 멤버와는 10년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 그래서일까, 멤버 서로 사이의 호흡(interplay)에서 틈을 찾기가 힘들다. 20~30대 주자들 답지 않은 원숙함이 곳곳에서 확인된다.

“제가 연주한다는 소식을 듣고 한국 교포들이 많이들 와 주셔서 200여석이 모자랄 지경이었죠. 뉴욕의 SBS-TV 등 방송국에서도 와서 따 갔어요.” 사진과 이력서는 물론 녹음해 뒀던 데모 음반 등에 대한 클럽측의 검토가 이뤄지고서야 가능했던 뉴욕 블루노트 콘서트의 풍경이다.

“현재 뉴욕의 재즈는 스탠더드나 비밥의 텍스트를 중심으로 한 복고풍이 주류죠. 고전주의를 부르는 윈튼 마샬리스의 영향이겠죠.” 그 같은 풍토에서 재즈를 하고 있는 자신으로선 데뷔 앨범의 모습이 가장 솔직한 방식이라는 것. 정통 재즈 클럽이라 자처하는 데라면 퓨전 음악은 아예 접할 기회가 없는 곳이 바로 뉴욕이라 한다.

“퓨전을 하더라도 곧장 들어가지 않고 정통을 거친 후에 하기가 보통이어서 한 음 한 음의 의미가 깊게 다가오죠. 그러다 결국은 정통으로 돌아가는 게 보통이죠.” 정통 재즈의 순기능이라면 바로 그런 것이라고 확언한다. 그러한 사정은 멀리갈 것도 없이, 바로 그에게서 확인되는 바다.

그는 13살때 사업가인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한 뒤, 조지 벤슨이나 웨스 몽고메리 등 재즈 기타리스트에 심취, 고2때 재즈 기타리스트가 되겠다고 마음 먹었다. 재즈 연주로는 뉴욕의 명문대인 뉴 스쿨에 입학해서 록을 좋아 하는 친구들을 만나 레드 제플린류의 심도 있는 록을 대학 초년 시절에 다 떼냈다.

2002년에는 뉴욕에서 미국 친구들의 인디록 밴드에서 고전적인 록을 연주해 인기도 제법 얻었으나, 자신에게는 별 의미가 없다고 한다. “록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방편이죠. 뉴욕의 재즈맨들은 낮에는 레슨, 밤에는 클럽 연주 등으로 힘들게 살죠. 그러나 스타가 되겠다는 욕심은 없어요. 자신이 만족하는 연주만 계속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한 사람들이죠 ”

겉멋만 잔뜩 든 말은 아니다. 뉴 스쿨 재즈과에 장학생으로 입학한 그는 곧 재즈전문지 다운비트가 수여하는 ‘다운비트 학생 음악상’과 신인 스타의 발굴장인 ‘러더포드 뮤직 익스프레스 재즈 기타 연주 대회’ 등에서 최우수상을 받는 것으로 훗날을 위한 든든한 받침대를 이미 확보해 둔 터다. “외부에서 저를 세션맨으로 불러주지 않는 한, 먼저 록을 하지는 않을 거예요. 그러나 페이 등 조건이 갖춰진다면 록도 굳이 마다할 건 없죠.”

이후의 작품에서는 베이시스트만의 듀엣으로 하든지, 현악 섹션을 도입하든지 하는 등으로 다양한 편성을 실험해 보고 싶다고. “당분간은 제 기타보다는 밴드의 편성에서 새로움을 추구하고 싶어요.” 첫 앨범 홍보를 위해 한달 전 입국했다. 미국은 강경 일변도, 한국은 불경기의 늪이다. 앨범의 반응이 좋으면 3~4월중으로 전국 순회 콘서트도 갖고 싶다는 말에서 조심스러움이 느껴졌다.

장병욱차장


입력시간 : 2004-01-02 17:01


장병욱차장 aj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