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기독교 문명은 왜 오컬트를 저주했는가


■ 마법사의 책

그리오 드 지브리 지음/임산ㆍ김희정 옮김/루비박스 펴냄

서구 문명의 주류는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이다. 그렇다면 비주류는? 중세와 르네상스는 물론이고, 19세기 초반에 이르기까지 이단시된 비학(秘學ㆍ오컬티즘)이다. 비학은 마술이나 마법에 그치지 않고 연금술, 점성학, 카발라(유대교의 신비주의 철학)까지 아우르는 영역이다. 당시 지식인의 대부분은 교양으로써 점성학과 연금술을 알았다. 템플기사단, 장미십자회, 프리메이슨 등의 비밀결사체는 그러한 비학들을 전승시켰다.

이 책은 마치 우리의 무속신앙처럼 서구인들의 무의식과 생활 속에 깊숙이 배어있는 오랜 문화, 오컬트(신비스러운 것, 초자연 현상)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파리 아르스날 도서관을 비롯해 유럽의 수많은 국립ㆍ사립 도서관, 미술사가들의 개인 콜렉션 가운데 선별된 375점이 넘는 이미지 자료를 통해 마법의 세계를 알기 쉽게 전한다.

지은이는 기독교 문명의 담론에 의해 적대시되어 온 비학의 영역을 적극적으로 들추어 낸다. 지은이가 찾아 낸 오컬트의 유산은 유명한 화가, 문학가, 신학자 등의 학술적, 예술적 소산들에 녹여져 있는 것들이다. 지은이는 유대교의 신학적 기원과 카발라, 비학과 현대과학과의 연관관계를 추적하며, 더 나아가 각종 고전 역사서와 성서의 구체적인 기록들을 통해서 기독교가 저주의 주술로 취급한 오컬트의 교의와 비법을 실증한다.

여기서 이 책과 관련된 퀴즈 하나. 웬만큼 커피를 좋아하는 이라면 목이 좋다 싶은 곳이면 어김없이 자리잡고 있는 스타벅스를 모를 리 없을 터이다. 바로 그 스타벅스의 건물이나 종이컵에 새겨진 로고,-왕관을 쓴 여자가 물고기 다리를 양쪽으로 벌리고 있는 그림-에 대해서 아는 것이 있는가?

스타벅스 본사의 답변에 따르면 그 여자는 바로 ‘사이렌’이다. 17세기 목판화를 참고로 로고를 만들었다고 한다. 사람들을 홀려서 스타벅스에 자주 발걸음을 하게 만들겠다는 뜻이라나. 그렇지만 이 책을 읽고 나면 이와는 다른 답을 유추해 낼 수 있을 것이다.

최성욱 기자


입력시간 : 2004-01-02 20:05


최성욱 기자 feelchoi@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