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드라마의 현주소 고스란히 보여주는 방송 3사 수목드라마

안방극장, 일곱빛깔 사랑에 젖다
우리 드라마의 현주소 고스란히 보여주는 방송 3사 수목드라마

‘현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삶이 묻어나는 진지한 드라마’ vs ‘코믹으로 덧씌운 연상녀 연하남 커플의 바람을 소재로 한 드라마’ vs ‘감각적인 영상을 바탕으로 한 젊은 남녀간의 자극적 사랑을 다룬 트렌디 드라마’

2004년 새해부터 KBS, MBC, SBS 방송 3사가 펼치고 있는 브라운관의 밤 풍경이다. 이 세 드라마-KBS의 ‘꽃보다 아름다워’, MBC의 ‘천생 연분’, SBS의 ‘천국의 계단’-는 국민들에게 가장 사랑 받는 프로그램인 우리 드라마의 현주소를 알려주는 단초를 제공했다. 장르뿐만 아니라 드라마의 주제, 전개 방식, 그리고 연기자의 캐스팅과 연기 패턴이 상이한데다 현재 또는 앞으로 전개될 드라마의 주요한 흐름을 드러내는 특성들이 잘 나타났기 때문이다.

KBS 꽃보다 아름다워

우리 이웃들의 살아가는 이야기

세 드라마는 모두 사랑을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빛깔과 대상은 확연하게 다르다. 우선 ‘바보 같은 사랑’ ‘거짓말’ ‘화려한 시절’ 등으로 마니아층을 확보하고 있는 노희경 작가의 ‘꽃보다 아름다워’는 우리 시대의 한 서민 가족을 내세워 가족 구성원들의 사랑을 이야기한다. 남편에게 소박 맞았지만 호적의 이혼정리만을 하지 않는 것에 감사하는 무지랭이 어머니(고두심), 그리고 남편의 끊임없는 바람기에 이혼을 하고 아이 하나를 키우며 대형 마트에서 일하는 큰 딸(배종옥), 없는 가정 형편에 공부 열심히 해 번듯한 직장 생활을 하는 이기적이지만 어쩔 수 없이 가족을 생각하는 둘째 딸(한고은), 그리고 공고 졸업한 뒤 삐끼 생활을 하며 문제를 일으키는 아들(김흥수)의 각기 다른 사랑과 이들의 가족애와 갈등이 드라마 전개의 핵이다.

반면 ‘마지막 전쟁’ 으로 잘 알려진 작가 예랑의 ‘천생연분’은 서른 다섯 살의 처녀(황신혜)와 다섯 살 아래의 총각(안재욱)이 만나 결혼한 뒤 벌이는 사랑과 외도 등 이전과 상당히 달라진 요즘 젊은 부부의 애정과 성의 풍속도가 드라마의 주요 모티브다.

이미 젊은 층으로부터 높은 관심을 끌고 있는 ‘천국의 계단’ 은 박혜경 등 젊은 작가 3명이 공동 집필하는 드라마로 순수한 한 여자(최지우)를 놓고 기업체 사장으로 지순한 사랑을 지키려는 남자(권상우)와 이복 동생이지만 금지된 사랑의 감정을 갖고 있는 화가인 남자(신현준)가 벌이는 애정이 한 축이고, 권상우와 최지우의 사이를 끊임없이 갈라놓고 권상우를 차지하려는 최지우의 이복자매(김태희)의 권상우를 향한 사랑과 갈등이 드라마의 다른 한 축이다.

MBC 천생연분

상이한 주제만큼이나 전개하는 드라마 방식과 영상에서도 차이가 있다. ‘꽃보다 아름다워’는 현재의 우리 삶에 뿌리를 둔 드라마라는 기획의도처럼 카메라는 궁상맞은 우리의 일상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현실의 도피가 아니라 현실 속으로 천착해 들어간다. 화려한 볼거리 대신 생활 냄새가 물씬 풍기는 영상을 주조로 한다.

이에 비해 ‘천생연분’은 시청자들이 생각하며 보는 부담을 덜어주려는 듯 경쾌하고 코믹스러운 영상과 밝은 화면이 전반적인 흐름을 이끈다. 그 동안 선정성과 자극적인 화면에 대한 비판을 아랑곳하지 않은 ‘천국의 계단’은 여전히 전형적인 트렌디 드라마처럼 감각적인 영상, 외제차를 비롯한 젊은 시청자들이 혹할 수 있는 소품, 세련된 회사 건물을 배경으로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연기자들도 이들 드라마가 지향하는 주제와 영상 스타일에 맞게 캐스팅했고, 출연진의 연기 패턴도 사뭇 다르다. 삶의 일상성을 자연스럽게 느끼게 하기 위해 ‘꽃보다 아름다워’는 젊은이들에게 인기가 많은 스타보다는 연기력을 중시하는 출연진 캐스팅을 했다. 캐릭터를 체화하는데 일가를 이룬 고두심과 주현, 영화 전문가들조차도 과소평가된 배우라는 칭찬을 받은 배종옥 등을 전진 배치하고 김영옥, 박상면, 맹상훈 등 연기력이 출중한 조연들을 등장시켰다.

이에 비해 ‘천생연분’은 황신혜, 안재욱이라는 두 스타를 캐스팅 했지만 이들이 가지는 특유의 이미지 대신 기존 이미지와 상반된 망가지는 분위기를 연출하고 가수 탁재훈과 개그맨 지상렬, 시트콤에서 코믹연기를 단련한 권민종이 웃음 연기를 선보이고 있다. ‘천국의 계단’은 연기력을 가진 연기자보다는 화려한 스타들의 향연이 펼쳐진다. 출연자 중 연기력으로 칭찬을 받은 주연은 한 사람도 없지만 인기가 높은 권상우 신현준 최지우 김태희 등 그야말로 호화 스타 캐스팅이다.

‘천국의 계단’이 화려함과 볼거리로 현실 도피적인 판타지를 제공하는 작위적이고 당위성 없는 부유하는 드라마라면 ‘꽃보다 아름다워’는 일상성에 철저히 천착해 현실을 직시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천생연분’은 이 두 드라마의 중간적인 성격으로 판타지와 일상성을 오간다.

SBS 천국의 계단

트렌디드라마의 병폐 여전

현재 드라마의 경향을 대변하는 세 드라마는 차이는 있지만 각각 적지 않은 문제를 안고 있다. 중반부가 방송된 ‘천국의 계단’은 트렌디 드라마의 병폐로 지적된 문제의 전시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동안 수차례 트렌디 드라마에서 우려먹은 선한 여자와 악녀의 인위적인 갈등, 이복남매와 이복자매간의 자극적인 애증관계, 주연의 기억상실증과 극단적인 병으로 인한 비극적 사랑, 황당무계한 내용 전개, 연기력보다는 화려한 스타로 눈길끌기 등이 총체적으로 표출되고 있다. ‘천생연분’은 작가 예랑이 ‘마지막 전쟁’에서 보여준 건강하고 자연스러운 웃음보다는 작위적인 웃음을 드러내기 위해 두 주연인 황신혜와 안재욱의 코믹 연기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코믹스러운 것만 남고 드라마가 표방하는 주제나 기획의도가 상실될 가능성이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두 작품에 비해 작가의 주제의식이 뚜렷하게 나타나는 ‘꽃보다 아름다워’는 다양한 등장인물을 모두 강조하려다 보니 드라마 분위기가 산만하고 시청자의 주의력을 분산시키고 있다.

새해 벽두부터 시청자와 대중매체의 지대한 관심 속에 시작된 세 방송사의 수목드라마에 대한 시청자의 평가(TNS 미디어 시청률 자료)는 ‘천국의 계단’ 41.1%, ‘천생연분’ 12.5%, ‘꽃보다 아름다워’ 10.8% 순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시청률이 드라마 평가의 전부는 아니다. 드라마는 방송사들이 이윤을 추구하는 문화 상품인 동시에 사람들의 정서에 유익해야 하는 문화 작품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새해 벽두 선보인 방송사의 세 드라마는 분명 현재의 드라마의 주요한 흐름도 보여주면서도 드라마가 지양(止揚)해야 할 문제점 그리고 지향(指向)해야 할 방향도 동시에 제시하고 있다. 제작진은 앞으로 시청자에게 진정 감동과 재미를 동시에 안겨주는데 노력해야 할 것이다.

배국남 기자


입력시간 : 2004-01-16 15:58


배국남 기자 knbae24@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