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영화사, 스타에 목 매는 캐스팅 관행서 탈피해야

스타는 흥행 보증수표 아니다
방송·영화사, 스타에 목 매는 캐스팅 관행서 탈피해야

요즘 방송사나 영화사는 사활을 건 캐스팅 전쟁을 벌이고 있다. 올해는 예년에 비해 더욱 치열하다. 방송사에선 일반 미니시리즈나 주말 드라마와 달리 주연급이 다수 필요하고, 중량감 있는 주연을 간판으로 내세워야 하는 50~100부작의 대하 드라마들이 줄줄이 기획되거나 촬영에 들어갔다. 또한 영화사는 한국영화 시장점유율 50%선에 육박하는 선전에 고무되어 지난해보다 많은 영화를 제작할 계획을 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방송사간, 영화사간 그리고 영화사와 방송사간 캐스팅 전쟁이 치열하게 전개되면서 스크린 스타가 여의도로, 브라운관 스타가 충무로로 향하는 등 연기자의 이동 행렬이 줄기차게 이어지지만 방송사나 영화사의 연출자나 감독의 입에서는 한결같이 쓸만한 연기자를 구하기가 힘들다는 푸념이 나온다. KBS, MBC, SBS 등 방송 3사는 현재 한달 평균 단막극을 포함해 30여 편의 드라마를 제작하고 있고, 특히 올해는 이들 방송사들이 대하드라마를 각 두 편씩 만들 예정이다. 그 동안 2000년대 들어 매년 60편 내외의 영화를 제작하던 영화사들도 한국 영화의 수지 상황이 호전되고, 시장 점유율이 증가하자 올해는 더 많은 영화 제작을 계획하고 있다.

초반 기선잡기 스타 캐스팅에 사활

방송사가 올해 규모면에서나 작품의 완성도면에서 총력을 기울이는 것은 역시 대하드라마다. KBS가 ‘무인 시대’ 후속으로 김훈의 ‘칼의 노래’와 김탁환의 ‘불멸’을 혼합해 드라마화 하는 ‘이순신’과 최인호 소설 ‘해신’을 극화한 ‘해상왕 장보고’를 방송할 예정이다. 또한 MBC는 월탄 박종화의 ‘다정 불심’을 토대로 한 ‘신돈’과 1960~1970년대 경제성장의 주역이었던 대표적인 재벌,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과 이병철 전 삼성그룹회장을 중심으로 그려나갈 ‘영웅시대’(가제)를 기획하고 있다. SBS도 KBS에서 이미 두 차례 방송했던 박경리 원작의 ‘토지’를 7월중 방송한다. 또 도망 친 여비의 몸에서 태어나 광대품에서 자라나 참다운 민초의 세상을 꿈꿨던 인물을 그린 황석영 원작의 ‘장길산’도 영상화 할 예정이다.

이들 대하 드라마는 대부분 실존 인물을 다루거나 한 사람의 삶의 일대기를 담은 호흡이 긴 드라마다. 이로 인해 일반 드라마와 비교가 안 될 만큼의 주연급 연기자가 필요하다. 그리고 대하드라마는 장기간 방송을 하는데다 한번 시작하면 중도에 방송을 포기할 수 없는 드라마적 환경 때문에 초반에 드라마의 흡입력을 높여야 하는 부담이 있다. 만약 초반 시청률이 저조하면 이 같은 추세가 계속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 방송사는 초반 기선잡기를 위해 사활을 걸고 스타 캐스팅에 나서고 있다.

KBS는 ‘이순신’의 타이틀롤을 맡을 주연 캐스팅에 난항을 겪으면서 방송사 사장까지 나서야 한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이병헌을 캐스팅하기 위해 드라마국 차원에서 총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쉽지 않은 모양이다. 이미 ‘태조왕건’에서 왕건역을 무난하게 소화한 최수종도 물망에 올라 와 있다. SBS의 경우 ‘토지’의 주연 캐스팅을 놓고 김현주가 거론되면서 엄청난 출연료만 언급될 뿐 캐스팅 확정 소식은 전해지지 않는다.

주연 캐스팅의 어려움은 영화사도 마찬가지다. 한국 영화는 대부분 텔레비전 연기자들을 수혈받아 캐스팅하는 등 배우 충원 면에서는 절대적으로 텔레비전에 기대고 있다. 요즘 영화 캐스팅의 어려움은 드라마 한두 편에서 인기를 얻게 되면 곧 바로 영화 주연을 맡는 것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내사랑 싸가지’의 김재원을 비롯해, 강동원, 조한선 등이 영화의 주연으로 캐스팅됐는가 하면 여자 연기자들도 마찬가지다. 영화 ‘그녀를 모르면 간첩’의 김정화, ‘그놈은 멋있었다’의 정다빈, ‘말죽거리 잔혹사’의 한가인, ‘가족’의 수애, ‘바람의 전설’의 박솔미 등이 대표적인 경우다.

시청률ㆍ관객동원 위한 제작관행

이러한 캐스팅 전쟁을 벌이고 있는 방송사나 영화사 제작진은 연기자는 많은데 쓸만한 주연 연기자는 많지 않다고 한결같이 말한다. 하지만 이 말의 이면에는 두 가지의 얄팍한 상업적 논리가 숨어 있다. 스타를 기용해 시청률 또는 관객 동원을 하자는 안이한 제작 관행과 투자의 용이함이다.

스타 기용은 불안정한 문화산업에서 어느 정도의 수요를 그나마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이다. 영화나 드라마 등 문화 상품은 소비를 반복해서 하지 않는 일회성 소비재, 생필품이 아닌 사치재, 경험을 하지 않고서는 모르는 경험재, 타인의 소비량에 영향을 받는 소비재라는 속성 때문에 수요 예측이 불가능하고 실제 수요가 불안정하다. 요즘처럼 경기가 불황일 경우는 문화상품의 수요는 더욱 더 불안정 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문화상품의 수요의 불안정성을 감소시키며 수요를 창출하는 방안 중의 하나가 한 사람 또는 그 이상의 스타에 대한 소비자의 감정적, 정서적 연결고리를 만들어줌으로써 소비자들을 간접적으로 특정 상품의 소비로 이끄는 스타 활용이다. 스타에 대한 팬들의 소비성향은 거의 ‘묻지마’ 식으로 이뤄지는 맹목적 행태를 보이기 때문에 다른 연기자에 비해 스타가 많은 수요를 창출할 수 있는 것은 분명하다. 또한 스타가 갖는 상품성 때문에 홍보나 마케팅이 용이하고 무엇보다 투자자들에게 많은 투자를 받을 수 있는 이점이 있다.

추계예술대학의 김휴종 교수는 ‘한국 영화 스타 파워’ 보고서를 통해 감독, 영화관수 등 15개의 흥행변수를 고려한 결과 스타 배우들의 수요 창출력이 감독 등 다른 변수보다 높게 나타났으며 한국 스타 배우들이 관객 11%의 수요 창출력이 있다는 사실을 발표한 바 있다. 이는 미국 스타의 평균 관객 동원력이 15%에 달하는 것에는 못 미치는 수준이지만 스타 파워를 입증해주는 것이다.

하지만 ‘스타는 문제 많은 필수품’이라는 말처럼 스타가 흥행을 확신시키지는 못한다. 한국 영화 흥행의 보증수표라는 한석규가 오랜 공백과 장고 끝에 영화 ‘이중간첩’에 출연했지만 영화는 흥행에 참패했고, 한석규는 전문가 집단으로부터 가장 과대평가 된 배우라는 지적을 받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이제 스타에 목을 매는 캐스팅 관행을 탈피할 시기가 왔다. 스타 캐스팅만이 능사는 아닌 것이다. 스타의 캐스팅이 이점도 있지만 부정적인 측면도 많다. 그 첫 번째는 스타의 무리한 캐스팅은 반드시 스타 출연료의 상승으로 이어진다.

요즘 스타급 배우들은 부르는 게 출연료다. 영화 한 편당 4억~5억원에 이르고, 그것도 모자라 일정수의 관객에 따라 수입을 받는 러닝 개런티까지 요구하고 있으며 드라마 출연료는 회당 1,000~1,500만원을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한정된 제작비에 엄청난 부담과 압박 요인으로 작용해 결국 세트, 조연을 비롯한 출연 연기자의 부실화를 초래하게 된다. 또한 스타의 이미지를 살리는 방향으로 가다 보면 자칫 작품이 원래 추구하는 방향을 상실하는 경우도 생긴다.

이러한 내적인 부정적인 측면 뿐만 아니라 스타 캐스팅에 목매는 풍토는 결국 연기자의 저변 확대를 가로막는 장애요인으로 작용된다. 장기간 노력을 기울여 온 수많은 준비된 연기자들이 출연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사라지는 것은 대단한 인적 손실이다.

오디션 제도 정립시켜야

이러한 스타 캐스팅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제작자의 안이한 인식부터 개선돼야 한다. 그리고 오디션을 확고히 정립시켜야 한다. 지금처럼 형식적으로 진행되는 오디션은 실효를 거두기 어렵다. 스타, 기성 연기자, 신인, 지망생을 대상으로 실질적인 오디션을 실시해 실제 작품에 필요한 사람을 캐스팅 하는 방식이 제도로 굳건히 자리를 잡아야 스타 캐스팅에서 초래되는 문제를 최소화하고 작품을 살릴 수 있다. 또한 오디션은 특정 기획사의 횡포나 스타의 무리한 요구로부터 작품을 지킬 수 있으며, 연기자의 인적 충원을 활발하게 할 수 있어 보다 다양한 재질의 연기자들이 대중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오디션은 연출자나 감독이 배우와 작품의 캐릭터의 조화 여부를 살펴 볼 수 있어 작품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고, 배우 또한 감독의 성향과 스타일을 파악 해 보다 작품에 최선의 연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는 등 여러모로 이점이 많다.

왜 대스타 말론 브랜도는 28세의 신출내기 감독 프랜시스 코폴라가 영화 ‘대부’에서 아버지역을 찾을 때 그 배역의 오디션을 받기 위해 뉴욕에서 LA까지 날아 왔을까? 아마도 배역에 대한 배우의 욕심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것은 감독과 배우 모두 자기 확신을 얻고자 한 것은 아닐까. 제작진이여! 이제 스타가 만병통치약은 아니라는 인식을 해 스타에 목매지 말기를 바란다. 그것이 방송과 영화를 살찌우게 만드는 길이다.

배국남 대중문화평론가


입력시간 : 2004-01-29 16:18


배국남 대중문화평론가 knbae24@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