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집 로 3년 4개월만에 컴백, 가요계 돌풍 예고

서태지, 신비주의를 벗다
7집 로 3년 4개월만에 컴백, 가요계 돌풍 예고

‘문화 대통령’ 서태지(32ㆍ본명 정현철)의 귀환으로 전국이 들썩인다. 3년 4개월 만에 7집을 들고 돌아 온 그가 일으키는 돌풍이 심상찮다.

침체된 사회 전반에 활력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는 점에서 서태지의 컴백은 비상한 관심의 초점이다. 가요 관계자들은 일단 환영 일색이다. 불황의 여파로 고개 숙인 가요계에 다시 기폭제가 될 것이라는 관측, 대중을 음반 시장으로 다시 불러 모을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다.

1월 27일 7집 앨범 ‘Live Wire’(예당엔터테인먼트)를 발표한 데 이어, 이틀 뒤 서울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의 콘서트로 서태지는 본격 활동을 시작했다. 29일 오후 8시 35분. 1만 1,000여 태지 마니아들의 기대와 술렁임 속에 스크린에 투영된 실루엣 사이로 서태지가 나타났다. “ 서태지”를 연호하는 팬들에게 화답하면서 검은색 재킷과 힙합 스타일의 면바지 차림으로 ‘서태지와 아이들’ 4집 수록곡인 ‘1996, 그들이 지구를 지배했을 때’로 공연의 막은 올랐다. 강렬한 하드코어의 옷을 입고 거듭난 갱스터 랩이 객석을 장중한 열풍 속으로 몰고 갔다.

이어 MBC에서 방송 불가 판정을 받은 ‘Victim’에서는 남녀 댄서를 등장시켜 남자가 여성을 짓밟는 듯한 모습으로 여성의 권익을 애절하게 호소했고, 6집 ‘울트라맨이야’를 부를 때는 신들린 듯 무대를 휘저음과 동시에 5개의 대형 풍선에서 수많은 작은 풍선들이 쏟아져 나오게 하는 무대 연출로 ‘보는 재미’를 한껏 높였다.

어쿠스틱 버전의 신곡 ‘10월 4일’에서는 무대 앞으로 나가 관객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려는 모습이었고, 특히 ‘필승’을 부를 때는 “나보다 잘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올라 오라”며 관객의 적극 동참을 유도, 손을 든 많은 관객 중 한 명을 무대로 초청해 함께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이윽고 하드코어 스타일로 편곡한 ‘너에게’로 마지막을 장식했다. 이날 서태지가 1시간 10여 분간 들려 준 노래는 신보 4곡들과 히트곡 ‘이밤이 깊어가지만’등 모두 13곡.

▽ 관객과 교류, 대중속으로

이날 공연의 가장 큰 특징은 관객과의 밀접한 교류를 시도했다는 점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 팬들 보게 관객석에 불 좀 켜 주세요”라며 관객석으로 걸어 들어가 덥석 팬들의 손을 잡는다던가, 친근한 반말조로 “나의 음악 동력은 바로 당신들이야”라고 외치는 모습은 사뭇 달라진 부분. 과거 방송이건 콘서트장이건 시원스럽게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던 철저한 신비주의를 벗고, 무대 아래 대중과 가까워지려고 한 흔적이 역력했다. 가요관계자들은 “과거 자신의 고유한 음악세계 표출에 집중하던 데서 한층 대중 중심으로 바뀌었다”고 입을 모은다.

서태지가 스스로 규정한 새 음악 성향은 ‘감성 코어’. “감성적 측면을 부각하고 멜로디를 강조했다”는 그의 설명처럼 예전보다 훨씬 편안한 느낌을 전면으로 내세워 대중성을 강화했다는 게 중평. 하드코어를 주조로 독창성을 강조했던 6집에 비해 한결 쉽게 대중의 호응을 끌어낼 조짐이다. 앨범 전체가 하나의 곡처럼 들리도록 모든 곡의 전주 부분을 하나의 테마로 묶은 것(인트로 브리지)도 이 같은 맥락에서 연결된다.

이와 관련, 기성 문화에 대한 항변의 상징이던 서태지가 변했다는 말들이 무성하다. 대중의 기대를 의식하고 현실과 타협하려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있다. 일부 음악 평론가들은 “서태지의 음악이 여전히 독특한 성향을 드러내고 있지만, 사회 문제에 대해 날카롭게 칼을 들이대던 실험성은 약화한 것으로 보인다”며 석연찮은 반응을 보인다.

그러나 서태지 팬과 20~30대를 중심으로 한 젊은층의 호응은 뜨겁기만 하다. “신비하다”, “깔끔하다”는 평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내면적 성찰에 귀를 기울인 점도 높이 평가된다. 한국 음악산업의 문제점을 비판하는 노래 ‘f.m 비즈니스’나 여성 인권 침해의 심각성을 경고한 ‘Victim’ 등에는 여전히 강한 메시지가 살아 있다는 것이다. 대중음악연구소 강헌 소장은 “강렬한 문제 의식을 바탕으로 한 서태지만의 고유한 음악적 파괴력이 아니라면 어찌 열광적인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겠냐”고 말한다.

▽‘음악인 서태지’ 정당한 평가 받아야

여하튼 ‘서태지의 힘’이 여전히 엄청나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그의 앨범은 발매 3일 만에 30만장 가량 판매된 것으로 추정된다. 교보문고 음반 매장에 따르면 발매 첫날 2,500장이 팔려나가 매장 개장 이래 최고 판매 기록을 세웠다.

인터넷도 서태지 특수를 누리고 있다. 인터넷 경매 사이트에 올라온 서태지 관련 도메인 ‘www.taiji-boys.co.kr’, ‘www.taijiboys.com’ 등은 구매 가격이 최고 7,000만원을 상회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고, 코스닥 등록 기업인 예당은 1월 26일 서태지 7집을 독점으로 유료 다운로드 서비스를 한다는 내용을 공시한 뒤 주가가 전일보다 9.18%나 상승하고 거래량도 급증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신보 발표 이후의 폭풍 같은 인기가 그의 새로운 음악을 과연 어느 정도 이해한 결과이겠느냐는 일부의 의혹을 잠재울 수 없다는 점이다. ‘맹목적 추종’이라는 비판을 받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는 지적이다. 문화 관계자들은 이제 서태지는 신화 속 우상이 아니라, 음악인으로서 정당한 평가를 받아야 할 시점이라고 입을 모은다. 문화평론가 이동연 씨는 “서태지를 더 이상 문화 아이콘으로서만, 유행을 일으키는 전사로서만 몰아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하고 “이제 음악인으로서의 성숙함을 평가할 때”라고 말했다.

배현정 기자


입력시간 : 2004-02-04 14:52


배현정 기자 hjb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