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칠맛 나는 영화관의 추억토요일 밤, 기억에 남을 사랑과 낭만의 영화 즐기기

[시네마 타운] 밸런타인데이, 연인과 함께 추억을…
감칠맛 나는 영화관의 추억
토요일 밤, 기억에 남을 사랑과 낭만의 영화 즐기기


올해 발렌타인 데이는 토요일이어서 연인들이 함께 시간을 보내기 충분한 여유가 있을 것이다. 은은한 촛불 혹은 조명과 함께 근사한 저녁을 먹기 전후, 사랑의 감정을 확인 혹은 배가 시켜줄 영화를 한 편 본다면 서로에게 더욱 기억에 남는 발렌타인 데이가 되지 않을까 싶다. 더구나 토요일에는 수적으로도 많은 10여편의 영화가 개봉이 되는데 질적으로도 놓치기 아까운 영화들이 포진해 있는 주다.

△ 삼각관계 그린 로맨틱 코미디

우선 발렌타인 데이에 최적으로 보이는 로맨틱 코미디 영화들을 살펴보도록 하자. 가장 먼저 추천할만한 영화는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 이다. 잭 니콜슨과 다이앤 키튼, 그리고 키아누 리브스 주연의 이 영화는 딱히 젊은 연인들만 즐길 수 있는 영화라기보다는 환갑을 넘긴 잭 니콜슨과 환갑이 가까워 오는 다이앤 키튼과 함께 나이를 먹어가는 관객들에게도 더할 나위 없이 즐거운 영화다.

<왓 워먼 원츠>의 낸시 마이어스 감독의 최근작인 <사랑할 때…>는 20대의 여성들과만 40년 이상 데이트를 했기 때문에 그 나이대의 여성에 관한 한 전문가로 자처하는 부유한 독신남 해리 샌본(잭 니콜슨)이 미모의 20대 크리스티 경매사인 마린(아만다 피트)과 주말을 보내기 위해 마린 엄마의 햄튼 별장에 놀러 갔다가 엄마 에리카(다이앤 키튼)을 만나게 되면서 시작한다. 영계를 밝히는 플레이보이 해리를 처음부터 싫어하는 에리카와 여자친구의 엄마라는 점이 불편한 해리.

그러나 마린과 섹스를 하려다 심장발작을 일으킨 해리는 병원응급실에 실려가게 된다. 해리의 주치의인 줄리안(키아누 리브스)은 평소에 흠모하던 희극작가 에리카에게 매료되고, 줄리안은 해리에게 당분간 여행을 삼가고 쉬면서 통원치료를 받으라고 명령한다.

영화는 이렇게 삼각관계를 설정해놓지만 에리카와 줄리안보다 에리카와 해리의 관계를 강조한다. 어떻게 바람둥이 해리가 20대가 아닌 나이든 여자와 데이트를 할 것인지, 에리카는 어떻게 해리에게 매력을 느끼게 되는지, 해리의 상태가 좋아져 다시 뉴욕으로 돌아가더라도 둘의 관계가 지속될 수 있을지 등에 대해 상당한 시간을 할애하면서 즐거운 코미디를 제공한다. 재미있는 이야기에다가 쟁쟁한 배우의 코믹 연기를 볼 수 있는 즐거움, 그리고 주인공들이 상류층이기 때문에 햇빛이 화사하게 비치는 아름다운 별장, 고급 레스토랑, 뉴욕시의 대저택, 그리고 파리의 화려한 밤 풍경 등의 배경화면도 흥미롭다.

<사랑할 때…>도 가장 로맨틱한 장면이 파리에서 벌어지듯이 사랑의 대표적 도시 혹은 국가는 누가 뭐래도 파리, 프랑스다. 이번 주에는 프랑스 영화가 두 편(원래 이번 주 예정이었던 <8명의 여인들>이 한 주 연기되었다) 개봉되는데 그 중 <러브 미 이프 유 데어>는 소꿉친구와 내기와 장난을 하면서 지내다가 우정인지 사랑인지 모르던 두 남녀가 어느 순간 서로의 소중함을 깨달아가는 이야기다.

또 다른 프랑스 로맨틱 코메디는 누벨바그의 대표 주자중 한 명인 73세의 쟈끄 리베뜨 감독의 2001년 작 <알게 될거야>이다. 그는 1968년에 그리스 비극이 펼쳐지는 연극 무대와 현실의 비극(감독인 남편과 배우인 아내의 사랑의 종말)을 강렬하고 밀도 있게 그려냈던 4시간 30분 짜리 <미친 사랑>을 만들었었다. <알게 될거야>도 연극과 인생, 환상과 현실이 직조되지만 이번에는 여섯 남녀의 꼬리를 무는 사랑이 위트있고 우아하게 펼쳐진다. 관객과 배우가 같은 시공간에 놓여 있다는 연극의 즉실성(presentation)은 영화의 재현성(representation)과 서로 얽히면서 카메라와 편집의 화려함이나 반전이 거듭되는 플롯이 없이도 아주 감칠맛나는 작품으로 태어난다.

파리 출신이지만 이탈리아 극단에서 활동하고 있는 까미유는 3년이 지난 후 순회공연으로 파리에 돌아온다. 하지만 옛 애인 삐에르를 완전히 마음에서 지우지 못하고 같은 극단의 연출가이자 배우인 애인 위고와도 잘 지내지 못한다. 한편 18세기 이탈리아의 유명 극작가인 골도니의 미발표 희곡이 프랑스에 있다는 설을 믿고 찾아 다니던 위고는 적극적이고 발랄한 도미니끄를 만나게 되고 둘은 서로에게 끌린다. 동시에 도미니끄의 의붓 오빠 아뛰르는 삐에르와 동거 중인 소냐에게 접근한다.

얽히던 관계들이 전환을 맞게 되는 결정적인 장면은 까미유가 파리의 지붕 위를 자유롭게 걸어다니는 신이다. 까미유는 삐에르와의 관계를 확실히 청산하기 위해 삐에르의 아파트에 간다. 하지만 아직 그녀를 사랑한다면서 삐에르는 까미유를 방에 가두고 나간다. 까미유는 천장의 창문을 통해 지붕위로 올라가 지붕을 걸어 답답하고 막힌 창고 방을 나와 자유롭고 유유하게 지붕을 걷는다. 주인공의 감정적인 변화와 플롯의 변화가 이렇게 경쾌하게 처리된 장면을 본 적이 생각나지 않을 만큼 매력적이다. 하지만 <알게 될거야>는 빠른 전개와 화려한 화면 처리를 원하는 관객보다는 보다 편안하고 유희적이고 관조적인 시선으로 사랑이야기와 영화미학을 즐기고 싶은 관객에게 적당한 작품이다.

△ ‘감정 휘날리며’즐기는 한국영화

발렌타인 데이라고 하더라도 남녀 간의 사랑 이야기보다는 ‘액션이 있는 감동’을 느끼고 싶은 커플이라면 지난 주에 개봉한 강제규 감독의 <태극기를 휘날리며>를 추천할만하다. 개봉 전부터 <실미도>의 흥행을 이어갈 대작이라고 기대를 모았듯이 ‘형제애와 비극적인 정서’를 강조하는 것까지 <실미도>와 유사하다. 다만 배경이 한국 전쟁이기 때문에 북파부대 사건보다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감정적인 동일시나 여운을 느끼게 해줄 수 있을 것이다.

<태극기…>는 동족상잔의 비극이라는 테마를 임권택 감독의 <태백산맥>이나 정지영 감독의 <남부군>처럼 빨치산을 중점으로 풀어나가지 않고 가난하지만 행복한 가족의 아버지 같은 형과 아들 같은 동생을 주인공으로 설정한다. 이 우애좋은 형제는 피난 길에 우연히 강제 징집된다. 진태(장동건)와 진석(원빈)은 최후 보루인 낙동강 방어선으로 투입되고, 진태는 무공훈장을 받으면 진석을 제대시킬 수 있다는 얘기에 몸을 사리지 않고 전투에 뛰어든다. 하지만 진석은 잔인하게 변해가는 형에 대해 반감을 품기 시작하고 결국 형을 부정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형제를 주인공으로 설정한 것은 감정이입과 전쟁의 비극을 전달하는데 있어 훌륭한 역할을 한다고 보여진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진태가 인민군으로 전향해 깃발부대의 대장으로 ‘적’이 되었을 때의 과정을 상대적으로 간접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부분이다. 분명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것이다라고 예상은 되지만 앞에서 진행되어 온 것처럼 적나라하게 묘사되었으면 전쟁의 참상이 더 드라마틱한 구조를 갖게 되지 않았을 까 싶다.

시네마 단신
   
- 임권택 영화 뉴욕 초대전

임권택 감독의 대표작 15편이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 상영된다. 이 회고전에서는 안성기, 오정해, 정경순 등이 주연한 <축제>를 시작으로 칸 영화제 감독상 수상작 <취화선>, 모스크바 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작 <아제아제 바라아제>, 몬트리올 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작 <아다다> 등이 소개된다.

채윤정 영화평론가


입력시간 : 2004-02-11 15:18


채윤정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