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식 문화읽기] 몸짱 신드롬


이 곳 저 곳에서 몸짱이라는 말을 듣게 되면, ‘이미지는 모든 것을 삼킨다’라는 문화이론서의 제목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몸짱과 관련된 사회적 무의식 속에서 몸은 유기적인 신체를 의미하지 않는다. 얼짱이 시각적 이미지로 번역된 얼굴을 전제하듯이, 몸짱은 스타일로서의 몸만을 승인한다. 아마도 이미지가 실재를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인간의 생물학적 근거인 몸 역시 이미지나 스타일로 환원될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는 문화적 징후가 몸짱일 것이다. 몸짱이란 몸의 형태가 가치와 권력을 창출하는 시대의 문화적 표상인 셈이다.

몸짱 신드롬에는 일반인과 연예인의 경계도 없고, 젊은 세대와 중장년층의 구별도 없다. 딴지일보에 소개되어 많은 네티즌의 관심을 끌었던 몸짱 아줌마의 사진이 좋은 예이다. 두 자녀를 둔 39세의 가정주부라는 이력은, 몸짱 신드롬이 적용될 수 있는 범위가 얼마나 넓은지를 보여준다. 몸짱 아줌마는 몸으로 말한다. 평범한 사람도 나이와 상관없이 체계적인 자기관리만 한다면 건강하고 아름다운 몸을 만들 수 있다고. 그런 의미에서 몸짱 아줌마는 젊음과 늙음, 일반인과 연예인의 경계선을 가로지르는 몸의 이미지를 보여준 문화적 사건이다.

몸짱 신드롬의 또 다른 특징은 남성의 몸에 대해서도 새로운 미적 기준을 부여한다는 점이다. 축구스타 데이비드 베컴과 안정환, 가수 비와 배우 권상우의 경우 새로운 남성적인 매력의 대변자로 인정받고 있다. 몇몇 사람들은 이들을 메트로 섹슈얼의 문화적 아이콘으로 파악하기도 한다. 메트로 섹슈얼이란 화장품을 사용하며 쇼핑과 스타일에 남다른 관심을 가진 20~40대의 대도시 거주 남성을 말한다. 이제 남자의 몸은 사회적인 지위와 문화적 취향 그리고 자기관리의 수준을 보여주는 또 다른 얼굴이 되어버린 것인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한국사회에서 남자의 몸이 문제가 되었던 것일까. 전통적인 유교사회에서 몸은 주로 효도나 건강과 같은 덕목들과 관련되었고, 생물학적인 몸보다는 수양(修養)이나 몸가짐을 더욱 중요하게 여겼다. 1920년대 이후 서양식 복장이 유행하면서 여성의 몸은 언제나 관심의 대상이었지만, 남성의 몸이 사회문화적으로 문제가 되었던 적은 거의 없었다. 최근에 영화 <별들의 고향>(1974)을 다시 볼 기회가 있었고 그 덕분에 당대의 청춘스타 신성일의 벗은 몸을 구경할 수 있었다. 역삼각형의 균형 잡힌 몸매지만 특별하게 운동을 해서 관리한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반면에 1980년대의 토속적 에로영화 <뽕>이나 <변강쇠> 에 출연했던 이대근이나 김진태의 몸은 굵은 원통형이다. 넓은 어깨와 굵은 몸통 그리고 약간 튀어나온 배가 특징인데, 근육이나 균형보다는 크기와 굵기를 통해서 남성적인 힘을 상징한다. 하지만 이들 역시 관리한 흔적이 없는 몸이다.

문화적 텍스트로 대상을 한정할 때 남자의 몸에 대한 사회적 이미지에 커다란 변화가 생긴 것은 1990년대 초반의 일이다. 드라마 <사랑을 그대 품안에>에서 우람한 가슴 근육을 자랑했던 차인표의 모습을 기억할 것이다. 오피스텔에서 살고 할리 데이비슨을 몰고 다니며 재즈 연주를 즐기는 여피족의 라이프 스타일과 함께, 보디빌더를 연상하게 하는 근육질 몸은 남자의 몸에 대한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내었다. 비슷한 시기에 가수 구준엽과 배우 이정재, 차승원, 송승헌 등이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단련된 몸을 보여주었다. 최근에는 비와 권상우가 보여주듯이 근육질의 꽃미남이 각광을 받는다. 이들의 특징은 근육의 크기가 아니라 강하게 단련된 근육의 섬세한 결(cut)이다. 그래서 평상복을 입었을 때는 운동을 했다는 느낌을 거의 주지 않다. 옷 속에 근육질 몸을 숨기고 있어서일까. 이들은 상의의 단추를 여러 개 풀어놓는 패션을 즐겨한다.

몸에 대한 관심은 건강한 아름다움에 대한 추구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쉽게 평가를 내리기 어려운 사회적 현상이다. 다만 자발적이든 타율적이든 몸에 대한 관리와 감시가 보다 강력하게 요구되는 사회를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종전까지 여성의 몸에 집중되었던 통제와 억압이, 이제는 남성의 몸으로 확산되어 가는 양상이다. 여성의 아름다움을 섹시함으로 몰아갔던 남성 중심적 사고가, 되돌아오는 부메랑처럼 남성의 몸을 구속하게 되었다고 보면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또한 몸짱 신드롬은 한국사회가 젊음과 관련된 가치들을 강박적으로 강요하는 사회라는 점을 보여주는 징후적인 사건이다. 그런 의미에서 몸에 대한 과도한 열광은 한국사회가 외형적인 가치를 제외한 다른 가치나 권위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현상이다. 몸짱 신드롬은 아름답고 간엔옇熾?대한 관심의 표명이다. 하지만 몸에 대한 획일화된 이미지를 강요하는, 건강하지 못한 사회의 반영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이를 두고 몸짱 신드롬의 역설이라고 할 수는 없을까.

김동식 문화평론가


입력시간 : 2004-02-12 13:45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