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 소비주체 겨냥, 10대 주인공으로 내세운 고교생영화 붐과장된 코믹 일변도, 신세대 특유의 감성 살린 다양한 소재도입 필요

고딩영화의 위험한 질주
대중문화 소비주체 겨냥, 10대 주인공으로 내세운 고교생영화 붐
과장된 코믹 일변도, 신세대 특유의 감성 살린 다양한 소재도입 필요


1970년대 하이틴 고교생 영화 붐이 인지 30년이 지난 2004년, 다시 고교생 영화 열기가 달아오르고 있다. 고교생들을 주인공으로 전면에 내세운 다양한 영화들이 현재 개봉 중이거나 촬영 중에 있어 1970년대 중ㆍ후반에 일었던 ‘얄개’ 로 대변되는 고교생 영화의 열기의 재현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30년이라는 긴 세월만큼 70년대 고교생 영화 붐과 2004년 고교생 영화 붐은 영화 내외적으로 큰 차이가 있다. 현상적으로는 비슷하나 영화의 내용과 전개방식과 제작 환경, 수용자 소비 양태 등이 크게 다르다.

1970년대는 대학생을 비롯한 젊은이의 생활을 다룬 청춘 영화물이 나오기는 했으나 주류를 형성하고 흥행에 성공한 것은 대부분 술집 여자를 내세운 호스티스물이었다. 1976년 ‘진짜 진짜 잊지마’ 는 고교생들을 일약 영화 주인공의 주류로 바꿔 놓은 계기를 제공했다. 문여송 감독의 ‘진짜 진짜 잊지마’의 폭발적인 인기로 이덕화 임예진은 일약 신세대 스타로 부상했고 당시 고교생들은 수첩에 임예진의 사진 한 장씩은 가지고 있었다. 이후 남녀 고교생의 사랑을 그린 ‘진짜 진짜 미안해’, ‘진짜 진짜 사랑해’가 나오는 등 ‘진짜 진짜’ 시리즈물이 연달아 성공을 했다.

‘진짜 진짜 잊지마’와 더불어 같은 해 조흔파의 명랑소설을 1970년대 상황에 맞게 각색해 만든 석래명 감독의 ‘고교 얄개’ 가 당시로서는 대박으로 기록되는 25만8,978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대성공을 거뒀다. 그야말로 1970년대 중반부터 말까지는 고교생 생활을 다룬 영화들이 봇물을 이뤘다. 또한 이덕화 임예진 이승현 진유영 등이 하이틴 영화를 통해 스타로 부상해 고교생 영화는 스타 탄생의 산실의 기능을 했다.

△ 1970년대 스타탄생의 산실

한 차례 고교생 주인공을 내세운 영화의 회오리가 휘몰아친 뒤 30년 가까이 한국 영화의 흐름에서 고교생이 전면으로 나서는 영화는 드물었다. 그 단절을 깨는 것이 바로 2003년 권상우 ‘동갑내기 과외하기’ 였으며 곧바로 ‘…ing’ 로 이어졌다. 그리고 올해 김재원 하지원의 ‘내사랑 싸가지’를 시작으로 권상우 한가인의 ‘말죽거리 잔혹사’ 등이 개봉됐다. 앞으로 고교생 주인공을 전면으로 내세운 영화 제작도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양가 할아버지의 정혼으로 결혼하는 대학생과 고교생을 다룬 ‘어린 신부’, 킹카 남고생과 어리버리 여고생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그놈은 멋있었다’, 열 여섯살이 되면 온달이라는 이름의 남자와 결혼해야하는 여고생 평강의 이야기 ‘여고생 시집가기’ 등이 제작 중에 있다.

30년의 세월이 흐른 뒤 일고 있는 고교생 영화 붐은 외부적으로는 분명 공통점은 있으나 붐의 원인과 영화라는 텍스트, 그리고 텍스트의 생산과 소비의 과정은 판이하게 다르다. 또한 관객들의 소비행태에서도 큰 차이가 있다.

70년대 중ㆍ후반 대중문화 환경은 박정희 정권의 폭압 정치가 절정으로 치닫으면서 대중문화의 표현의 자유는 크게 훼손돼 소재와 내용의 제약이 많았고 사회 정화차원이라는 이유로 연예인들에 대한 제재도 심했다. 이로 인해 영화는 성애물에 가까운 호스티스물이 주류를 이루고, 우회적으로 청년의 고뇌를 담아보려는 청춘영화가 몇 편 개봉됐을 뿐이다. 가요계를 비롯한 연예계는 조용필 송창식 신중현 등 트로트 위주의 음악에서 벗어나 대중음악의 지평을 열려고 했던 연예인들이 대마초 파동으로 족쇄를 찼다. 또한 1960년대 전성기를 누리던 영화는 텔레비전의 보급과 함께 사양길에 접어들었고 대중문화의 흐름을 텔레비전이 좌우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성인들이 음반, 영화 등을 소비하는 과거와 달리 대중문화를 소비하는 층은 1970년대에 더 낮아졌는데, 1960년대 후반에서 1970년대 초반까지 발흥한 청년문화의 영향으로 대학생들의 대중문화 소비가 눈에 띄었다. 또 한 부류는 고도 성장의 주역이었던 공단의 20대 근로자들로 이들 또한 대중문화 소비의 한 축을 이뤘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영화계는 당국의 제재를 받지 않으면서도 시장을 확대하려는 이유로 고교생을 영화의 관객층으로 끌어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렇게 1970년대 고교생 영화의 붐은 영화 제작자의 주도로 이뤄졌다. ‘고교 얄개’나 ‘진짜 진짜 잊지마’ 등은 문제 고교생의 기발한 학교생활을 코믹 터치로 그린 것과 남녀 고교생의 순수한 사랑을 그졌ぐ〈?것이 주류였다. 대중문화 소비라고는 라디오 음악 청취나 텔레비전 감상이 고작이었던 당시 고교생들은 입시의 압박감을 이들 영화를 통해 잠시나마 잊었다.

△ 10대들의 아이디어 영화화

2004년 고교생 주인공 영화는 30년 전 상황과 판이하다. 이제 대중문화 소비에서 가장 큰 손은 10대이다. 1980년대 후반부터 가요를 시작으로 방송 등 대중문화를 소비하는 연령층 중 10대가 절대 다수를 차지했다. 10대의 향방에 따라 대중문화의 판도가 바뀌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 동안 가장 많은 관객층을 형성한 것이 20~30대였던 영화도 바뀐 상황을 맞닥뜨렸다. 2000년대 들어 고교생 등 10대 중ㆍ후반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극장을 찾으면서 영화까지 10대들이 접수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또한 대중문화 표현의 영역은 끝없이 확장되고 일반적 정서에 맞지 않는 엽기스러운 소재마저 영화나 드라마로 등장하고 있다.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매체의 등장은 대중문화의 가장 큰 수요층인 고교생들이 단순히 대중문화를 소비하는 것에서 벗어나 대중문화 텍스트에 대한 반응을 적극적으로 개진하는 등 대중문화 생산자로 나서게 했다. 특히 요즘 일고 있는 고교생 영화 붐은 대부분 아이디어와 원작이 10대들의 손과 머리에서 나온 인터넷 소설이나 인터넷에서 소개된 내용들이다.

내용과 소재 역시 단순한 고교 생활이나 남녀 고교생의 사랑에서 벗어나 결혼, 성 문제, 폭력 문제 등으로 확장됐으며, 빨라진 육체시계만큼이나 성적인 표현 등이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열 여섯살 여학생과 킹카 대학생 남자가 결혼을 한 뒤 어린 신부의 바람기를 잡기위해 벌어지는 해프닝을 그린 ‘어린 신부’같은 내용이 대표적인 예이다. 1970년대 일었던 고교생 영화를 보며 관객들이 대리만족을 얻었다면 2004년 관객들은 고교생 영화를 보며 동일시의 느낌을 받는다는 것도 차이점이다.

1970년대 고교생 영화 붐은 갑자기 사라졌다. 이 장르의 영화가 인기를 끌면서 소재와 내용이 재탕, 삼탕돼 고교생들의 외면을 받았기 때문이다. 모처럼 고교생 영화 붐이 일고 있는 요즘 벌써부터 고교생이 주인공으로 나온 영화에 대한 우려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아무리 요즘 청소년들이 이성보다는 감성이, 내러티브 구축보다는 내러티브 해체를, 그리고 문자나 논리보다는 영상과 이미지를 선호하는 세대라고 하지만 ‘내사랑 싸가지’처럼 그야말로 10대 특유의 발칙한 상상력은 거세된 채 순간을 웃기는 에피소드를 과장된 코믹 터치로만 그려 나가려는 것이 대세이기 때문이다.

모처럼 형성된 고교생의 영화가 영화사적으로 의미를 갖고 자리를 잡으려면 다양한 소재와 형식을 도입하고, 10대 특유의 감성을 최대한 살려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1970년대 갑자기 일었다 어는 순간 관객의 외면을 받아 스크린에서 사라지는 전철을 밟는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배국남 대중문화평론가


입력시간 : 2004-02-18 14:59


배국남 대중문화평론가 knbae24@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