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사 '옛사람 솜씨전', 갤러리 시선 '옛 가구 민속품전'

[문화가 산책] 세월도 숨 죽인 선조들의 예술혼
고도사 '옛사람 솜씨전', 갤러리 시선 '옛 가구 민속품전'

칸딘스키의 기하학적 추상, 피카소의 천진난만한 상상력이 울고 갈 판이다. 전시장에 들른 사람들이라면 누구든 그런 생각을 얼른 하게 된다. 종로구 관훈동의 고미술품 전문 전시관인 고도사(古都舍)에서 펼쳐 지고 있는 ‘ 옛 사람 솜씨전’은 도시의 소음과 컴퓨터 문명의 속도에 지친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한다. 거기서 우리는 선조들의 디자인에는 놀라운 기하학적 추상성이 존재함을 피부로 실감한다.

얼추 한 세기전만 하더라도 집안 곳곳에서 굴러다녔으나 세월의 이기(利器)에 밀려 흔적조차 사라진 우리의 생활도구들이 1~2층을 가득 메우고 있다. “옷 만들고 남은 자투리 천 조각을 꿰매 붙인 것들이예요. 별달리 이름도 없어, 그냥 보자기라고만 했대요. 고운 삼베나 광목으로 만든 원단에 알록달록 쪽물을 들여 만들었죠.”그 결과, 허드렛 보자기가 작품으로 거듭난 것이다. 액자에 펼쳐져 전시된 100점, 비닐 봉지에 쌓여 전시된 100점 등 200점의 작품은 고미술 수집가인 대표 김필환씨에게는 자식이나 다름 없다.

“안 다녀 본 데가 없으니, 얼굴을 아는 상인들은 새 물건을 구하면 연락을 해 와요.” 그야말로 발품을 팔아 재구성해 낸 민중의 역사인 셈이다. 나주반, 통영반 등 소반의 대명사격 물건들과 맞먹는 해주반의 소담스런 자태도 함께 펼쳐져 있다. 우리 전통 벼루의 최상품으로 쳐 주는 화초석을 뺨치는 정교하고 아름다운 조각이 물건의 가치를 더해 준다. 어디선가 휘모리 가락이 절로 펼쳐져 나올 것 같은 분위기다.

이번에 전시된 해주반은 60여종. 양반다리를 하고 마주 하면 딱 알맞을 듯 싶은 상이다. 거기에다 연꽃문, 잉어문, 수복희(壽ㆍ福ㆍ喜) 글자문, 모란문, 새ㆍ꽃문, 나비문, 국화문, 나비ㆍ꽃문, 꽃문 등 9가지 주제로 짜여진 판각이 새겨져 어느 한 곳 소홀하지 않던 조상들의 풍류 정신이 느껴진다. 은행나무, 참죽나무, 단풍나무 등 세가지 재료로 나뉜다.

또 고도사와 골목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갤러리 시선에서는 ‘ 옛 가구 민속품전’이 펼쳐져 절묘하게 운을 맞춘다. 문갑, 책장, 평상, 죽부인, 사방탁자, 편지꽂이 등 사랑방 가구는 1층에, 장롱 등 안방 가구는 2층에, 뒤주 등 부엌 가구는 3층에 각각 분류돼 있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최초로 고려 시대의 장롱도 선보인다. 유리함에 넣어져 별도 전시된 이 물건은 문짝뒷편에 ‘홍무 이십일년(洪武 二十一年)’이라는 글자가 선명하다. 사양식으로 따지면 1388년이다. 고려장(高麗欌)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장롱은 가구를 건축 공법이 가구에 적용된 예로서는 유례를 찾기 힘들다는 것. 경기가 악화돼 살길을 찾고 있던 골동품상이 마지 못해 내놓은 것이라는 고려장은 현존하는 것으로는 유일한 물건으로 보고 있다. 골동품 수집가로서 그 같은 물건을 갖고 있다는 것은 최상의 기쁨일 터이다.

김씨가 이 일에 뛰어든 것은 1968년. 고향 천안에서 친구의 권유로 도자기에서 출발한 그는 목가구를 거쳐 현재의 고미술상으로 자리를 굳혔다. 지금껏 고미술품에 대한 수요가 가장 많았던 적은 1970년대였다고. 이후 고미술품은 점점 서양화해 가는 사회 추세에 내몰려 갈수록 음지 신세라는 안타까운 말이다. “비례감, 대칭감, 단아함이 목가구 최대의 자격이죠.”

현재 최대의 희망은 고려장이 문화재가 되는 것. “올해 안으로 공인 절차를 밟아 문화재 지정을 받는 게 꿈입니다.” 보존의 어려움 등을 이유로 해 목가구는 문화재 지정 대상에서 제외되지만, 이렇게 튼실하고 아름다운 우리의 가구는 문화재로 지정돼야 한다는 것이다. 두 전시회는 29일까지. 전시회장에서는 모든 작품에 값이 매개져, 작품당 수백~수천만원의 가격으로 명시된다. (02)735-5815

장병욱차장


입력시간 : 2004-02-18 15:51


장병욱차장 aj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