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서야 그들도 섭니다"장애인으로 새로운 삶 사는 당당한 그와 그녀 '송이'

[현장속으로] 강원래의 특별한 출사표
"제가 서야 그들도 섭니다"
장애인으로 새로운 삶 사는 당당한 그와 그녀 '송이'


“제가 웃어야 그들(장애인들)이 웃고, 제가 일어서야 그들이 일어섭니다.”

2월 16일 오후 2시 30분, KBS 본관 3층 제1 회의실에서 있었던 강원래의 기자간담회는 3년만에 다시 팬들에게 돌아 오는 ‘공인’ 강원래의 출사표와도 같았다. 강원래의 농담덕에 간담회는 시종 웃음이 넘쳐 났지만 장애인과 관련한 이야기가 나왔을 때 만큼은 사뭇 진지한 분위기가 연출되기도 했다.

“예전에 이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어느 날 중도 장애인이 된 어떤 사람이 의사 선생님에게 ‘그럼 저는 앞으로 어떻게 되는 겁니까?’라고 물었대요. 그러니까 그 의사선생님이 이렇게 대답했다는군요. ‘강원래처럼 사는 거죠’. 그러니까 그 환자가 또 이렇게 묻더래요. ‘그럼 강원래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어요?’” 이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때, 강원래는 ‘아, 큰일났다. 내가 이거 정말 열심히 살아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고 한다.

지난 2000년 11월 이후, 강원래라는 이름 석 자 앞에는 ‘인기 가수’ 대신 ‘장애인’이라는 타이틀이 붙어 다니게 되었다. 자칫 생명까지 잃을 뻔했던 그 때의 교통사고로 인해 그의 하반신은 영원히 감각을 잃었다. “그 날 이후 숨막힐 것 같은 절망감이 시도 때도 없이 저의 가슴을 짓눌러 왔죠”라며 강원래는 담담한 어조로 지난 어둠의 시절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러나 강원래는 절망에 무릎 꿇지 않았다. 그런 그가 KBS 제2라디오 해피 FM ‘강원래ㆍ노현희의 뮤직 토크’의 진행자-DJ로 나선 것은 2003년 10월의 일이었다. 명실공히 3년의 공백을 깨고 ‘공인’으로서 강원래가 다시 본격적인 기지개를 편 셈이다. 그러나 가수가 본업이었기에 DJ활동은 아직 좀 어색한 듯 했다. “제가 좀 서투르대요. 버벅댄다고도 하고요. 또 개인적인 얘기를 너무 많이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는 합니다. 아직은 모자라는 면이 많죠. 그래서 더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대중이 강원래에게 가장 궁금해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그가 ‘언제쯤 클론의 멤버로 복귀하게 되느냐’일 것이다. “클론의 부활은 현재 준비 과정에 있지만 언제 복귀할 지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물론 (클론으로 활동을) 하고 싶기는 해요. 대신 사람들이 저를 불쌍한 이미지가 아니라 밝은 이미지로 바라보게 되었을 때, 그 때 복귀하고 싶습니다. 대중들에게 신나는 모습으로 다가가고 싶은 거죠. 준엽이는 온몸으로 춤추고, 저는 휠체어 타고 춤추고.”

강원래는 장래 희망을 묻는 어느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주저 없이 말했다.“오래 전부터 꿈꾸어 왔던 게 있는데, 바로 ‘댄스 학원’입니다. 전문가 양성을 목적으로 삼는 곳이 아니라 말 그대로 춤을 배우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죠.”

그 꿈은 아마도 올해 5월쯤에 이루어질 것 같다고 강원래는 기자들에게 귀띔했다. 그리고 “송이(강원래의 아내 김송)와의 사이에 자식이 하나 생겨 함께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라는 또 다른 소망을 얼굴에 홍조를 띈 채 꺼내 놓았다. 1시간이 조금 넘게 진행된 간담회 자리가 파하자 그는 오후 4시 5분에 시작하는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을 위해 부랴부랴 자신의 보금자리인 스튜디오로 향했다. 불의의 교통사고로 삶의 빛깔이 돌변했을 지도 모르지만, 그는 지금 가장 행복한 시절을 구가하고 있는 듯 하다.

이휘현 자유기고가


입력시간 : 2004-02-26 13:18


이휘현 자유기고가 noshin@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