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女 + 美] 기억 속으로의 몰입


“예술가가 된다는 것은 단지 멋진 작품을 완성하거나 사람들로부터 찬사를 받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메시지 또는 의사 소통이다.” 40대 초반 영국의 젊은 여성 작가 트레이시 에민은 이처럼 그녀 자신의 삶과 소통하는 과정을 작품에 담았다. 어린 시절 입었던 성적 피해로 인한 아픈 기억들은 그녀의 작품 안에서 다소 피해 망상적인 이미지로 전환되기도 하지만, 솔직하다 못해 노골적인 성 묘사는 관음주의를 자극하기보다 숨길 수 없는 진실성에 가깝다.

에민은 회화, 드로잉, 콜라쥬, 퍼포먼스, 사진, 네온과 미디어 설치 작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매체를 이용하여 주로 자신이 지나온 과거의 흔적들과 아픔을 그대로 작품으로 표현하는데, 그와 같은 형상을 좀 더 사실적으로 드러내기 위하여 설명적인 텍스트를 작품에 덧붙이기도 한다. 작품 ‘바인딩’은 네온의 라인만으로 여성의 실루엣을 드러내고 있으며, 무엇인가에 묶여있는 여성의 신체는 그녀의 잊지 못할 기억을 상징하는 듯하다. 네온의 밝은 윤곽선 보다 저항 할 수 없는 강압적인 힘이 느껴지는 어두운 배경으로 인해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에민이 존경하는 쉴레와 뭉크의 작품에 나타난 분열증에 가까운 작가의 정신세계가 에민의 작품에서는 보다 유머러스하고 시적인 감각으로 묘사되어, 적지 않은 도덕성 문제와 성적 관심에도 불구하고 극적인 순수성에 사로잡힌 자기 인식으로 보여진다. 에민이 아픈 기억을 낱낱이 드러내어 완성했던 작품들은 건강한 자신과의 소통으로 이루어진 예술인 것이다.

입력시간 : 2004-02-26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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