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추고 싶은 고통·수치심 "안녕"여성 전문의가 진찰에서 수술까지, 세계 최고 수준의 진료

[클리닉 탐방] (3) 대항병원 <여성치질>
감추고 싶은 고통·수치심 "안녕"
여성 전문의가 진찰에서 수술까지, 세계 최고 수준의 진료


사내에서 쾌활하기로 소문난 커리어우먼 A(30)씨는 요즘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많은 부담을 느낀다. 불규칙적인 식사 때문에 대학 시절 때부터 있었던 변비가 심해지더니 급기야 피가 나기 시작했다. 변을 보고 난 뒤에도 몇 시간씩 심한 통증을 느낄 때도 많다. 치질의 일종으로, 변을 볼 때 피가 나면서 통증을 유발하는 치열이다. A씨는 하루에도 몇 번씩 병원에 가볼 생각을 하지만 (남자) 의사에게 엉덩이를 드러내놓고 진료 받는 것이 부끄러워 그냥 꾹 참고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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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의] 김혜정 외과전문의

- 치질수술 재발률 0%에 도전

A씨처럼 치질과 같은 항문질환을 가진 여성들이 막연한 수치심으로 병원 찾는 것을 망설이다가 병을 키우는 경우가 많다. 대장항문 외과 의사가 대부분 남자이다 보니 진료 받는 것 자체를 부끄러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걱정은 얼른 날려버리는 게 좋다. 여성 전문의가 여성 항문질환만을 전문적으로 진료하는 병원을 찾으면 된다.

서울 서초구 방배동 대항병원(원장 강윤식)의 '여성치질 클리닉'도 바로 이런 곳이다. 서울대 의대 출신 여성 전문의 2명이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여성 환자를 직접 진찰하고 수술까지 해준다. 특히 이 병원은 대장항문 관련 질환만 진료하는 병원으로는 국내 최대 규모로, 진료 기록면에서도 국내는 물론 세계 최고 수준에 올라 있다.

이 병원은 1990년 서울외과 개원을 시작으로 올 1월 말까지 18만 6,000여명의 대장항문 질환자를 진료했고, 이들 중 6만9,000여명을 수술했다. 최근에는 대학병원으로부터 까다로운 대장항문 질환자의 수술을 의뢰 받기도 한다. 특히 지금까지 6만여 건을 실시한 대장 내시경 검사 실적은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기록이라고 한다. 전문 의료진 26명 중 대장항문 질환을 주로 보는 외과 전문의가 19명인 점은 이 병원의 전문성을 말해준다. 이 병원이 '재발은 필수이고 재수술은 기본'이라는 치질 수술의 재발률을 1~2%대로 떨어뜨린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 것이다.

김혜정 여성치질클리닉 과장은 "치질은 국내 인구의 25%, 성인 여성의 40~50% 정도가 앓고 있을 정도로 '대중적인 현대병'의 하나"라면서 "이들 중 상당수는 즉시 치료를 받아야 하는 중증인 상태"라고 말했다. 치질은 항문 밖으로 근육이나 혈관 덩어리가 빠져 나오는 치핵, 항문이 찢어져 생기는 치열, 항문 주위가 자꾸 곪아 구멍이 생기면서 고름이나 대변이 밖으로 새는 치루 등 항문 안팎의 질환을 통칭한다. 이 중 치핵 질환자가 70%정도를 차지하기 때문에 흔히 치핵을 치질이라고 부른다.

- 임신 등으로 여성환자 많아

치질 예방을 위한 생활 10계명
1. 10분 이상 변기에 앉아 있지 않는다.
2. 변을 볼 때 너무 힘을 많이 주지 않는다.
3. 변이 너무 딱딱해지지 않도록 한다.
4. 섬유질이 풍부한 음식을 많이 섭취한다.
5. 쪼그리고 앉거나 책상다리는 가급적 피한다.
6. 무거운 것을 들거나 등산, 골프를 피한다.
7. 좌욕, 목욕하는 습관을 들인다.
8. 몸에 끼는 속옷을 피하고 면 속옷을 입는다.
9. 맵고 짠 자극적 음식은 피한다.
10. 과음하지 않는다.
<자료제공 : 대항병원>

특히 여성들은 병이 생긴 곳이 내놓고 말하기 어려운 부위이다 보니, 다른 질환에 비해 잘못된 상식이나 민간처방에 의존하다 낭패를 보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대항병원이 여성 치질수술 환자(133명)를 대상으로 설문조사 한 결과에 따르면, "처음 증상을 느끼고 10년 이상 참고 지냈다"는 응답이 55.8%나 됐다. 남성 환자 34%에 비해 월등히 높은 수치다.

김 과장은 "많은 여성들이 임신과 출산에 따른 무리한 힘 등으로 인해 치질(치핵)이 생기거나 악화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애 한 두명 낳은 여성 가운데 항문이 깨끗한 사람을 보면 신기할 정도"라고 말했다. 젊은 여성들은 불규칙한 식사와 무리한 다이어트 등으로 인해 만성 변비와 함께 치열이 흔하단다.

그렇다면 치질 치료법은 어떤 게 있을까. 먼저 초기 증상인 경우에는 약물이나 좌욕 등 보존적 요법과 적외선응고법, 밴드결찰술, 직류 또는 교류 전기를 이용한 치질 소작술, 레이저를 이용한 소작술 등 비수술적 요법으로 치유할 수 있다. 하지만 중증의 치질은 마취를 한 상태에서 의사가 눈으로 보아가며 치질 덩어리를 세밀하게 제거하는 방법만이 완치를 위한 근본 치료법이다. 최근 들어 통증 조절장치들이 개발돼 있어 수술에 따른 고통도 거의 없다. 이 병원이 치질 치료에서 재래식 수술법을 고집하는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특히 임신 전 치질이 의심되거나 임신으로 악화할 가능성이 있는 경우나, 첫 임신 때 치질로 많은 고생을 해 두 번째 임신을 망설이게 되는 여성은 임신 전에 근본적인 수술을 받는 게 좋다고 한다. 김 과장은 "치질 증상이 뚜렷하다고 생각되면 진료를 받은 뒤 임신 전에 수술하는 게 최선의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산모의 경우는 산모와 태아의 안정을 위해 좌욕 등의 치료에 치중하고 수술은 가급적 출산 후로 미룬다. 그러나 치질에 따른 급성빈혈 등 합병증이 생기게 되면, 임신 중분 이후 불가피하게 수술을 하기도 한다.

김 과장은 "여성의 경우 출산과 육아, 자녀교육 등으로 치질 증상이 있더라도 대부분 참고 지내는 걸로 알고 있다"면서 "그러나 항문에서 피가 나온다고 치질이라고 지레짐작하고 있다가 암과 같은 큰 병의 발견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김 과장은 치질로 알고 온 여성 환자 가운데 대장암을 발견한 사례도 흔하다고 귀띔했다. 치질은 더 이상 수치스러운 병도, 난치병도 아니다. 치질로 고통 받고 있는 여성들은 지금 당장 병원으로 달려가는 게 어떨까.

다음기사는 여성피부 <레이저 전문> 편이 게재됩니다.

김성호 기자


입력시간 : 2004-02-26 14:40


김성호 기자 shkim@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