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쇼핑의 세계] "일주일 지난 회 한번 드셔보세요"


“야, 그거 먹기만 하면 되는 것 아니냐? 맛있게 생겼던데, 그거 알바 자리 있으면 나도 한 번 하자, 맛있는 음식 먹고 돈도 벌고 얼마냐 좋냐?”

TV 홈쇼핑을 통해 맛있게 먹는 모델을 보고 부탁 아닌 부탁을 하는 사람이 가끔 있다. 하지만 그거 정말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화면에서는 맛있고 그럴 듯 하게 보이겠지만, 먹는 사람 입장에서는 입맛에 맞지 않거나, 엄청 뜨겁다거나, 같은 음식을 계속 먹어야 하는 상황이 반복돼 그것만큼 고역이 없다. 또 방송이니 만큼 즐겁게 먹어야 한다.

필자는 음식 방송을 할 때, 비교적 음식을 가리지 않고 잘 먹는 쇼호스트로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단언컨대 방송의 완성도를 위해 몸 바쳐 충성한 것이지 결코 먹성이 좋아서가 아니다.

언젠가 김치 냉장고를 방송할 때였다. 김치 냉장고의 생명은 김치는 물론,다른 음식도 싱싱하게 보관할 수 있는 기능이다. 그래서 냉장고에 있는 김치, 생선, 회 등을 보여주며 싱싱함을 막 자랑하고 있는데 바깥의 PD로부터 아무거나 하나 먹어보라는 주문이 들어왔다. 그래서 손바닥 만한 연어 회 한 덩어리를 입에 집어 넣었다. 그 순간, 물컹한 느낌과 입 안에 퍼지는 비린내, 그 역거움…. 정말 눈물이 쏙 빠질 정도로 정신이 아득했지만, 겉으로는 행복하고, 만족스런 표정을 지어야만 했다. 내심 “이제 조금만 더 참자”를 외치며 부담스러움을 이겨내고 있었는데, 이어폰으로 들어오는 PD의 목소리. “야~ 반응 좋은데!, 석현씨 하나 더 먹자!” * 허걱 ~

사실 그 연어회는 1주일이 지난 것이었고, 샐러드도, 초장도 아무 것도 없는 것을 제 정신으로 먹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하지만 TV에서는 그런 사정을 절대 봐주지 않는다. 일단 입 안에 들어가면 무조건 맛있는 표정을 지어야 한다. 매출과 직결되기 때문에…

또 있다. 요구르트 청국장 제조기 이야기다. 요구르트 뿐만 아니라, 청국장도 만들 수 있어 주부들에게 인기가 상당히 좋은 제품이다. 몇 번 히트를 치다가 매출이 주춤해지기 시작할 쯤에 방송에 투입됐다. 우선 제품을 살리고 봐야겠기에, 방송 전부터 야무지게 맘을 먹고, 시작부터 여러 과일을 조각 내 그릇에 요구르트를 붓고 먹어대기 시작했다. 정성이 갸륵했던지, PD의 말로는 ‘내가 입안이 터지게 마구 집어 넣을 때마다 주문 콜이 상승했다’고 했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 무조건 먹을 수 밖에 없다.

세숫대야만한 그릇에 과일을 썰어 넣고, 요구르트 10개 정도를 한꺼번에 넣어 버무린 것을 입 안으로 팍팍 집어넣었다. 물론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보통 먹을 때 카메라는 먹는 사람을 5초 정도 잡고 다음 컷으로 넘어가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이 날은 먹을 때마다 주문 콜이 올라갔기 때문에 카메라는 계속 내가 먹는 것만 잡고 있었다. 인고의 시간은 시작됐다. 30초, 1분, 2분이 지나도 카메라는 계속 나를 잡고 있었다. 나는 계속 먹었다. 비로소 그 큰 그릇이 다 비워질 때 카메라는 다른 컷으로 넘어갔다. 이미 3분이 지났을 때였다. 그렇게 쉬지 않고 숟가락질을…. 아마 평생 요구르트 샐러드만 먹는 사람이라 할 지라도 죽을 지경이었을 것이다.

그 날 매출은 히트 칠 때의 수준으로 돌아왔지만, 난 방송 끝나고 바로 화장실을 가야만 했다. 동료 중에는 음식 방송을 하다, 입 안이 홀랑 다 탄 적도 있다. 입 안이 다 타는 고통이 온 몸을 찌를 때에도 쇼호스트는 웃는다. 적어도 방송을 하는 그 순간 만큼은….

물론 늘 고통스런 것만 아니다. 얼마 전 전복 방송을 했는데, 그날 난 돈으로 치면 수십만원어치의 전복을 먹었다. 이 행복함이란 체험하지 않으면 모른다. 이런 날은 보통 일부러 한 끼 정도 굶고 들어간다. 전복을 회로 먹고, 데쳐 먹고, 튀겨 먹고, 구워 먹고, 죽을 만들어 먹고…. 정말 원 없이 실컷 먹었다. 성과도 좋았다. 45분 방송에 1분간 평균 100개씩, 다음 방송 물량까지 모두 판매했다.

은밀한 비밀 공개 한가지. 음식 방송을 할 때, 여자 쇼호스트의 표정을 보면, 베테랑인지 초년병인지 쉽게 알 수 있다. 미혼여성이거나 초년병인 여자 쇼호스트는 음식을 먹을 때, 무조건 예쁜 표정을 짓는다. 입 안 가득 음식이 가득 차 있으면서도 예쁘게 보이려는 여자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이 바닥 말로는 망가(?)져야 하다. 베테랑은 바로 이럴 때 우거적 우거적 먹으며 망가진다.

문석현 CJ 홈쇼핑 쇼호스트


입력시간 : 2004-03-04 16:45


문석현 CJ 홈쇼핑 쇼호스트 moonanna@cj.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