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함 속에 담긴 절제의 美

[이유미의 우리풀 우리나무] 매실나무
화려함 속에 담긴 절제의 美

눈이 정말 많이 왔다. 광릉 숲은 다시 볼 수 있을까 싶을 만큼 참으로 아름다운 풍경이 되었지만 눈으로 인한 고생들도, 피해들도 많으니 걱정이다. 식물들도 너무 빠르게 봄 준비를 했다면 연한 꽃잎과 어린 순에 상처를 입을까 이 또한 걱정이다.

남쪽에서는 이미 매화꽃 소식이 들려 왔으니 그 눈 쌓인 가지 속에 피어 있는 꽃들은 말 그대로 설중매(雪中梅)가 되었다. 사실 설중매란 수없이 많은 매화의 한 품종 이름인데, 자격 미달의 다른 품종까지 그리 불러 볼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이다.

매실나무라는 제목을 달고 매화하고 부르니 이상할 터인데 모두 같은 나무의 이름이다. 그러면 매화라고 불러야 할까 아니면 매실나무라 불러야 할까? 이른 봄꽃을 피우면 매화나무가 되고 여름에 열매를 맺으면 매실나무가 된다. 이 나무는 그 열매의 값어치를 생각하면 매실나무라 불러야 하고 그 단아한 꽃송이의 깊이 우러나는 아름다움을 생각하면 매화라 불러야 제격이니 매화 혹은 매실나무라 오락가락 하는 것을 과히 허물치 말기를 바란다.

먼저 꽃 이야기를 하자. 매화는 아주 오랜 옛날부터 우리 조상들의 아낌없는 사랑을 받아 왔다. 난초, 국화, 대나무와 함께 군자의 고결함을 가지고 있어 사군자에 들었고, 강희안의 양화소록을 보면 옛 선비들이 매화를 귀하게 여긴 것은 첫째로 함부로 번성하지 않은 희소함 때문이고, 둘째는 나무의 늙은 모습이 아름답기 때문이며, 셋째로 살찌지 않고 마른 모습 때문이며, 넷째로 꽃봉오리가 벌어지지 않고 오므라져 있는 자태때문이라고 한다. 단아하면서도 매서운 추위를 뚫고 꽃을 피워 내는 그 의연한 기상이 사람들의 마음을 끌었으리라.

더욱이 매화의 자태와 비견할 또 하나의 매력인 향기가 보태어 지니, 봄에 만발한 매화나무 사이를 거니는 상상만으로도 마음이 순화되는 것을 느낀다. 어떤 이는 매화 향기가 ‘귀로 듣는 향기’란다. 바늘이 떨어지는 소리도 들릴 만큼 마음을 가다듬어야 비로소 진정한 향기를 마음으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리라.

매화의 꽃을 따 빚은 술은 매화주가, 매실을 넣어 만든 술은 매실주가 된다. 꽃잎은 흰죽이 다 쑤어질 무렵 넣은 매화죽에, 말려두었다가 끓여 마시는 매화차에 쓰인다.

이 나무의 열매 매실은 꽃만큼이나 보배스럽다. 오월이 되면 꽃이 진 매화나무는 녹두만한 매실을 매어 단다. 매실로서는 이때가 중요한데 햇볕이나 거름이 부족해도, 비가 모자라거나 지나쳐도, 그 시기를 넘기지 못하고 떨어져 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풍성한 가을을 예고하는 늦은 봄비가 내리면 이 비는 매실을 튼튼하게 하는 비라 하여 ‘매우’라고 부른다.

매실은 요즈음도 술과 음료로 개발되어 많이 이용하지만 오래 전부터 귀한 약재였다. 설사를 멈추고 기생충을 구제하고 해열작용도 있고 위도 튼튼하게 해주는 효능이 있어 여러 증상에 처방 된다. 특히 예전에는 덜익은 매실을 사다 씨는 버리고 과육만 갈아서는 은근한 불로 다려 고약처럼 끈끈하게 만들어 썼는데(‘매실고’라고 부른다) 집안의 구급약이었다. 소화가 안 되거나 배가 아프고 구토가 날 때, 이질에 걸렸거나 설사가 심할 때 두루두루 요긴하게 쓰였다. 이렇듯 매실나무는 우리 곁에 가까이 살고 있지만 사실 고향은 중국 사천성 이라고 한다. 중국의 영향으로 고려시대 이전부터 수많은 분야에서 인연을 맺어 왔으니 큰 의미로 우리나무라 한들 누가 나무랄 수 있으랴.

쏟아진 눈의 흔적들이 지워질 즈음 매화꽃 구경을 떠나고 싶다. 굽이쳐 흐르는 섬진강변의 매화꽃밭을 거닐다 보면 세상사의 시름일랑 잊혀지지 않겠는가.

입력시간 : 2004-03-11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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