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혼모와 그 딸의 '자아를 찾아서'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그러나 모두가 즐기는 화제의 뮤지컬단순하면서도 기능적인 무대공간, 관객들의 호응이 완성도 높여

[문화비평] 뮤지컬 <맘마미아!>
미혼모와 그 딸의 '자아를 찾아서'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그러나 모두가 즐기는 화제의 뮤지컬
단순하면서도 기능적인 무대공간, 관객들의 호응이 완성도 높여


뮤지컬 <맘마미아!>의 제작, 극본, 연출, 주인공, 나아가서 주요 관객층이 모두 여성인 것은 단순히 우연일까? 과연 관객은 이 공연의 어떤 부분에 공감하는가? <맘마미아!>는 자칭 ‘70년대 미혼모’인 도나가 오랜 별리 후에 사랑을 되찾는 이야기이자 그녀의 딸 소피가 결혼이라는 관습을 넘어서 진정한 자아를 찾고자 드넓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다룬다.

편모슬하에 자라 결혼을 앞둔 소피는 자신의 아버지일 법한, 엄마의 옛 연인 세 명을 결혼식에 초대하지만 이들은 소피의 존재조차 알지 못한다. 이들을 초대한 사실을 모르는 도나, 누가 소피의 아버지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은 극적 흥미를 불러 일으킨다. 공연의 흡인력은 이들 모녀간의 끈끈한 유대감, 극의 주제를 더욱 즐길만하게 만드는 위트와 유머, 그리고 줄거리의 기본바탕을 이루도록 절묘하게 엮어진 70년대 전설적 팝그룹 아바의 멋진 음악 22편에 기인한다.

- 40·50대 관객에게 진한 향수

<맘마미아!>는 뮤지컬의 본고장인 영국 웨스트엔드와 미국 브로드웨이에서의 성공을 거쳐 한국에서 성황리에 공연중이다. 아바의 팬이 아니었거나 아바의 음악에 얽힌 개인적인 추억이 없다고 해도 너무도 귀에 익숙한 이들의 음악은 40-50대 관객에게는 지나간 시절에 대한 진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것이 사실이다.

게다가 극의 주인공이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세 중년여성이 아닌가! 한 때 잘나가던 아마추어밴드의 가수였던 세 친구는 서로 다른 길을 걸었고 예전의 화려했던 젊은 시절을 노래를 통해 반추한다. 이들의 노래는 관객 각자의 젊은 시절을 일깨우는 동시에 이들의 모습을 통해 관객은 세월이 흘러 오늘에 이른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다. 결혼식을 앞둔 딸의 머리를 빗겨주며 도나는 딸의 어린 시절이 빠르게 지나가버렸음을, 이제 자신의 손길을 떠나려는 딸과의 이별을 아쉬워한다. 그런데 그녀가 아쉬워하는 그 시간은 나에게 아직 지나가지 않은 시간이거나, 혹은 다른 이에게는 이미 오래 전에 지나간 시간일 수도 있다. 무심코 흐르는 매 순간이 공연을 보면서 새삼 소중하게 여겨지는 것이다. 현실을 새롭게 보게 하는 힘은 예술이 지녀야할 가장 중요한 요소일 것이다. 이 순간이 아쉽게 다 지나가기 전에 나의 현재의 일상과 이 나날의 소중함을 부여잡아야만 하겠다.

지중해의 쪽빛 바다를 연상하게 하는 푸른빛의 무대, 그리고 녹슨 쇠붙이의 디테일이 눈길을 끄는 하얀 등대 건물은 뮤지컬의 배경인 그리스의 한 섬의 풍광을 재현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검은 두건과 원피스 차림으로 뜨개질을 하는 그리스 여인의 모습과 등불이 밝혀진 늦은 혼례시간은 더욱 극의 지방색을 살려준다. 그리스라는 공간이 이 극에서 구체적으로 무슨 역할을 하고 있는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다만 도나의 연인 샘이 꿈꾸던, 그가 초안을 그린 건물을 도나가 실제로 짓고 그곳에서 그녀가 21이나 모텔을 경영하고 있다는 낭만적인 설정만으로도 충분하다. 등대를 연상케 하는 두 개의 구조물과 나무 한 그루의 몇 가지 조합으로 이루어지는 무대는 단순하면서도 기능적이다. 조명이 어울려진 무대는 붓으로 물감을 씻어낸 수채화 한 폭처럼 색감이 신선하다. 의상은 이 공연이 가장 심혈을 기울인 부분 중의 하나일터이지만 시각적 다양함에 기여하는 것 이외에 특별한 의미부여가 어렵다. 혼례복만은 여전히 결혼을 통한 관습에의 순종을 상징한다. 결혼을 앞두었던 소피는 오히려 이 옷을 벗어던지고 오히려 오래 홀로서기를 해왔던 도나가 이 옷을 입고 때늦은 결혼식을 치른다. 말하자면 결혼이란 그것이 관습적으로 반복되어왔기 때문에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그것이 소망되는 시기에 비로소 실현되어야 하리라는 암시가 들어있다.

- 훌륭한 가창력, 안무엔 아쉬움도

가창력에 있어서 대체로 모든 연기자들이 훌륭하지만, 소피(배해선 분)의 곡 해석은 여백이 있어서 좋았고 도나(박해미 분)가 부르는 몇몇 곡에서는 전율이 일 정도였다. <맘마미아!>의 아쉬움은 안무에 있다. 몇 장면에서 밥 포시 풍의 날카로운 선이 잠시 보였을 뿐 이렇다할 특징이 없다. 공연을 완성시키는 쪽은 오히려 관객이다. 이들의 적극적인 호응은 공연의 어색한 부분들을 감싸준다. 아바 음악의 가사를 자Ы볜??우리말로 바꾸고자 기울인 노력은 높이 살만하다. ‘맘마미아!’(원어의 맛을 그대로 살리자면 “엄마야!”)라는 감탄사의 번역 하나를 놓고도 고심한 흔적이 있다. 이왕이면 우리나라 가수의 음악을 바탕으로 한 창작뮤지컬도 생각해봄직하다. 시인이 주어진 운을 가지고도 유연하게 시를 짓듯 아바의 가사들이 극에 자연스럽게 통합되는 것을 보는 재미가 있다. 그러나 노래로 전달되는 부분에서는 모든 대사가 다 잘 들리지는 않았고 영어 자막은 바라보기에 위치가 너무 높다.

소피에게 약혼자 스카이는 말한다. “아버지가 누구인지 안다고 자신을 아는 것은 아니야.” 이어지는 스카이의 대사는 좀더 의미심장하므로 공연을 보면서 유의해 들어주시기 바란다. 소피가 결혼이라는 관습에 얽매이기보다는 진정한 자아를 찾기 위한 더 먼 길을 떠나듯 우리도 그렇게 일생을 걸쳐서 자신을 알기 위한 여정을 걸어가야만 한다.

- 모든 세대가 폭넓게 공감

관객석의 열띤 호응은 뮤지컬 <맘마미아!>의 또 하나의 무대이자 구경거리이다. <맘마미아!>는 오래 우리의 곁을 지키는 아바의 음악이 그러하듯 삶을 좀 더 견딜만한 것으로 만들어주는 색다른 공연체험이 되어줄 것이다. 아울러 이 공연은 흔히 연극공연을 향유하는 20대가 아닌 40-50대 관객들, 나아가서 모든 세대를 폭넓게 공연장으로 끌어들이는 중요한 문화대사로서의 역할까지도 담당하고 있다. 이들의 문화적 욕구를 제대로 읽어내고 그것을 예술적으로 충족시키고자 노력하는 것은 앞으로 우리 연극계가 해결해야 할 즐거운 숙제이다. 4월18일까지,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

송민숙 연극평론가


입력시간 : 2004-03-11 15:33


송민숙 연극평론가 ryu1501@kornet.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