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 답사 1번지의 속살봄을 봄 답게 채색하는 동백과 강진만, 그리고 절집

[주말이 즐겁다] 강진 백련사와 다산초당
남도 답사 1번지의 속살
봄을 봄 답게 채색하는 동백과 강진만, 그리고 절집


해마다 봄이면 성숙한 여인의 순정처럼 붉은 동백이 지천으로 피어나는 ‘청자의 고을’ 강진. 붉은 동백숲과 어우러진 푸른 차밭이 유난히 아름다운 만덕산(409m) 자락엔 고려 말 천태종 부흥의 본산이었던 유서깊은 백련사(白蓮寺)가 있다. 이 절집 주변의 수 백년 묵은 동백림(천연기념물 제151호)은 남도의 봄을 봄답게 해주는 곳으로 1,500여 그루에서 피어나는 동백꽃들은 강진만 바다, 그리고 단아한 절집과 조화를 이루며 한 폭의 그림을 연상케 한다.

- 백련사 부도밭 주변의 동백꽃 일품

<동국여지승람>에서는 이 절을 가리켜 “남쪽 바다에 임해 있고 골짜기 가득히 송백이 울창하며 동백 또한 곁들여져 창취가 사계절을 통해 한결 같은 절경”이라고 표현했는데, 이는 21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동백림 중에서 부도숲 주변의 정취가 일품이다. 동백이 만개하는 3월 중순부터 4월 초순 사이에 이 숲을 찾으면 동백의 붉은 기운을 느낄 수 있다.

동백꽃이 아름다운 이 절집의 본래 이름은 백련사였다. 그러다 조선 후기에 만덕산에 있다 하여 만덕사(萬德寺)로 불리다가 근래 다시 원래 이름을 되찾았다. 백련사는 천태사상에 입각한 결사도량을 개설하여 침체된 불교의 중흥을 꾀하는데 중심 역할을 하면서 널리 알려졌다. 고려 고종 19년에 백련결사문을 발표하여 참회와 정토를 강조한 백련결사운동은 송광사의 정혜결사운동과 함께 고려 후기 불교의 양대 산맥을 이루었다.

백련사 동백꽃 감상과 다산초당에서 약천 한 모금 마시는 일은 한 코스로 엮인다. 백련사와 다산초당을 오가는 오솔길은 다산이 백련사의 혜장선사와 만나기 위해 다니던 오솔길이다. 동백나무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도암만 풍경은 고즈넉하고, 대나무와 차나무와 동백나무 어우러져 있어 사색하며 걷기에 더 없이 좋다. 천천히 걸어도 20~30분쯤 이면 된다. 다산초당 주변에도 동백나무가 많다.

조선 실학사상을 집대성한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은 강진에서 18년의 귀양살이 가운데 10년쯤을 이 다산초당에서 지냈다. 다산이 해남 윤씨 소유의 만덕산 기슭의 초당으로 들어온 것은 1808년 봄이다. 다산의 모친이 공재 윤두서(尹斗緖 1668~1715)의 손녀고, 윤두서는 고산 윤선도(尹善道, 1587~1671)의 증손이니 해남 윤씨 집안은 다산의 먼 외가 친척들이다. 다산은 이곳에서 윤씨 집안의 각별한 배려로 1818년 9월 해배될 때까지 본격적으로 학문에 탐구했고, <목민심서>, <흠흠신서>, <경세유표>등 ‘다산학’이라 일컬어지는 방대한 저술활동을 대부분 이곳서 이루었다. 원래 초가였던 것을 복원할 때 매년 짚을 갈아주는 번거로움 때문에 지붕을 기와로 올리는 바람에 ‘와당’이 되어버려 ‘초당’의 소박한 정취를 느낄 수 없지만, 곳곳에 다산의 체취가 남아있다.

- 정약용 실학정신 엿볼 수 있는 다산초당

뜰앞의 평평한 바윗돌은 다산이 솔방울을 지펴 찻물을 끓이던 부엌인 다조(茶), 초당 왼편 뒤쪽의 맑?샘물은 다산이 찻물로 쓰던 약천(藥泉), 뜰 오른쪽의 아담한 연못은 다산이 직접 축대 쌓고 못을 파고 꽃나무도 줄지어 심고 물을 끌어 폭포도 만들었던 연지석가산(蓮池石假山)이다. 또 초당 뒤쪽의 바위벽에는 선생이 해배될 때 썼다는 정석(丁石)이란 글씨가 있는데, 사람들은 이 네 가지를 일컬어 ‘다산4경’이라 한다.

강진으로 귀양 온 다산은 다산초당으로 들어오면서 생활의 안정을 얻어 학문에 몰두하는 한편 본격적인 차생활을 즐겼다. 차를 즐겼던 다산에게 차나무 많은 만덕산은 마음의 위안을 안겨주었을 것이다. 다산이 백련사 혜장스님에게 “목마르게 바라노니 부디 선물을 아끼지 말기를” 하며 올린 걸명소(乞茗疎)에는 다산의 차 사랑과 여유가 돋보이고 있다. 그리고, “새 비가 내린 귤숲은 자못 아름답구나/바위샘물을 손수 떠서 찻병을 씻네/약 절구질 잦아지니 번거로운 곰팡이는 없건만/드물게 달이는 차풍로엔 먼지만 있네” 하는 다산의 글에 나오는 ‘바위샘물’은 초당 뒤꼍에서 솟아나는 약천(藥泉)이다. 이 옹달샘은 1808년 다산이 손수 파서 만든 샘으로 이 물로 차를 끓여 마셨으며 담도 삭이고 묵은 병도 낫게 했다 하여 약천이라 불렀다. 200년 가까이 지난 요즘은 뜰앞의 차부뚜막이 반질반질해질 정도로 많은 답사객들이 찾아와 이 샘물을 마시며 다산의 실학 정신을 되새기고 있다.

한편, 다산초당과 700m쯤 떨어진 곳에 다산 정약용 선생의 생애와 업적 등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꾸민 다산유물기념관이 있다. 좀더 자세한 사항은 강진군청(www.gangjin.go.kr) 문화관광과(061-430-3223)에 문의.


입력시간 : 2004-03-18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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