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고독합니다. 거의 매일…"진지한 웃음 보여줄 관록의 '연기 백전노장'들이 한자리에

[현장속으로] 영화 <고독이 몸부림칠 때> 기자회견
"항상 고독합니다. 거의 매일…"
진지한 웃음 보여줄 관록의 '연기 백전노장'들이 한자리에


기자 회견 장소에 배우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주현ㆍ양택조ㆍ이주실ㆍ박영규, 그리고 가장 ‘나이 어린’ 진희경까지. 어림 잡아 평균 연령은 오십대 중 후반일 듯 싶었다. 이 날 사정이 있어서 빠졌지만, 또 다른 주연 배우인 김무생ㆍ송재호ㆍ선우용녀까지 가세했다면, 아마도 평균 연령은 환갑을 너끈히 넘어 섰을 것이다. 지난 3월 8일 오후, 대한극장에서 있었던 영화 <고독이 몸부림칠 때>의 기자회견장은 분명 그런 진풍경을 펼쳐 보이고 있었다.

“(영화를) 촬영하는 과정에서 때론 일이 잘 되도록 밀어주시고 때론 좋은 아이디어까지 제공해 주시면서 몸을 사리지 않은 배우 어르신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출연 배우들에 대해 이수인 감독이 보내는 감사의 멘트다. 다소 차분한 표정을 짓고 있던 이 감독은 자신의 첫 작품에 대해 “관록 있는 연기자들이 떼로 나오는 영화”라고 짧게 갈무리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저는 항상 가장 나이가 많은 편이었는데, 이번 영화에서는 제가 남자 배우들 중 가장 어립니다. 하하.” 박영규의 능청에 기자들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그렇게 농담을 던진 다음 그는 조금은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훌륭한 중견 연기자 분들이 모처럼 애정을 쏟은 이 영화가 잘 되었으면 좋겠지만, 일단 흥행이 되건 안 되건 이런 영화를 자주 접할 수 있었으면 한다”는 소망도 피력했다.

박영규의 말마따나 요즘의 충무로는 너무 젊은 연기자만 좇는다. 관록이 붙은 중견 연기자들에게는 쉽사리 눈길을 주는 법이 없다. 이런 상황에 비추어볼 때, 영화 <고독이 몸부림칠 때>는 최근의 한국영화계의 주류 정서와 다소 아귀가 맞지 않는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이 영화가 최근의 여타 한국영화들과 어떤 차별성을 가질까. 기자회견장에서 이수인 감독이 발한 답변은 이렇다.

“굳이 기존의 젊은 영화들과 차별화 된 영화를 만들겠다는 의도는 없었습니다. 다만, 진짜 재미있는 코미디가 되려면 그 안에 ‘진지한 재미’가 있어야 한다고 끊임없이 되뇌었죠. 그래서 연기자들에게 일부러 웃기려 하지 말고 ‘진지하게 웃겨 달라’고 계속 주문했었습니다.”

이 날 기자회견장에서 단연 돋보이던 인물은 영화에서 배중달이라는 역을 맡았던 주현이었다. 극 속에서의 어수룩하고 우스꽝스러운 캐릭터와는 달리, ‘중견배우 주현’은 과묵한 표정으로 기자들의 질문에 시종일관 진지하게 답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것은 마치 할리우드의 노장 잭 니콜슨과 비견되는 카리스마라 할 만 했다. 그런 그에게 “실제 생활에서 가장 고독에 몸부림 칠 때가 언제입니까?”라는 질문이 떨어졌다.

“항상 고독합니다. 거의 매일 일에 쫓기다 보니 예전의 친했던 친구들과의 관계는 점점 멀어져 가고, 그러다 보니 어쩌다가 며칠 쉴 여유라도 생길라치면 막상 만나서 술 한 잔 나눌 친구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죠. 만날 친구가 없으니 그냥 집에서 우두커니 앉아 텔레비전 보면서 시간을 때우는데 그 때 정말 고독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이 직업이 항상 고독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랜만에 스크린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한 이 ‘백전의 노장’들은 이제 막 데뷔한 신인들 마냥 각자의 얼굴에 설렘과 긴장을 잔뜩 안고 있었다.

이휘현 자유기고가


입력시간 : 2004-03-18 21:14


이휘현 자유기고가 noshin@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