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달리의 세상을 보는 눈과 사상알랭 보스케 지음/ 강주헌 옮김/ 작가정신 펴냄

[출판] 지식인은 돼지다, 고로 나는 최상의 돼지다
화가 달리의 세상을 보는 눈과 사상
알랭 보스케 지음/ 강주헌 옮김/ 작가정신 펴냄


살바도르 달리. 그의 이름 앞에 붙는 가장 평범한 수식어는 ‘20세기를 대표하는 초현실주의 화가’라는 것이다. 좀 더 풀어쓰면 ‘의식의 세계를 다루던 기존의 미술이 아니라 무의식의 세계를 최초로 회화에 도입한, 초현실주의 운동을 시각 언어로 구체화 시킨 대표적 화가’정도가 되겠다.

그러나 솔직히 이런 식의 모범 답안은 달리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그는 진짜로 특이했다. 스스로를 천재라고 여겼다. 자신의 작품, ‘그리스도 최후의 만찬’을 “피카소의 그림들을 모두 합친 것 보다 뛰어난 작품”이라고 서슴없이, 어찌보면 뻔뻔하게, 추켜세우는가 하면 레오나르도 다 빈치나 라파엘로 같은 거장들의 작품을 자기 멋대로 깎아내렸다. 인생의 절반을 채 살기도 전인 37살 때(그는 1904년에 태어나 1989년에 죽었다)에 자서전을 썼는데, 기가 막히게도, 그의 자서전은 어머니 뱃속에서의 추억부터 시작한다.

지극히 긍정적으로만 그를 평가하면 그는 자신의 삶 그 자체를 예술작품으로 승화시킨 예술가다. 다른 사람들에게서라면 곧장 광기로 치달았을 내밀한 정신적 모순들과 신경증을 예술로 승화시킨, 그래서 미치광이나 기인이라는 분류표 만으로는 정의내릴 수 없는 천재다. 반면 조금 비틀어보면 그는 철저하게 자아도취 상태에 빠져 살았다. “나는 세계의 배꼽”이라고 떠들었지만 황금기를 넘긴 이후 사람들은 그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 책은 프랑스의 작가 알랭 보스케가 던지는 100가지 질문에 대한 달리의 기상천외한 즉흥 대답을 엮었다. 달리가 인식하고 있는 예술, 문화, 사회, 역사란 도대체 어떤 것인지를 보여준다. 아무도, 그 무엇으로도 제대로 정의되어지지 않는 인간, 달리에 대해 달리 스스로 말하는 것이다.

대담이 이뤄진 것은 1960년대 중반. 이미 그림 주문도 없는 때였다. 젊은 세대에게 달리는 화가라기보다는 텔레비전에 출연하는 ‘문화 관계자’ 쯤으로 여겨지고 있었다. 심지어 언론은 “달리는 예전에 화가였지만 지금은 하나의 구경거리가 됐다”고 조롱하기도 했다.

그러나 달리는 여전히 자신의 천재성을 자랑한다. 자신에게 쏟아지는 비난이나 조롱을 오히려 즐기고 있었다. 알랭 보스케는 허풍과 과시 너머에 있는 달리 내면의 진실을 파고든다. 그러면서 잊혀져가는 화가 달리를 아쉬워하고, 달리에게 자신의 작품을 소중하게 생각했던 시절로 돌아가라고 조심스레 충고한다.

입력시간 : 2004-03-31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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