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명의 마누라 지키기 거짓말 대소동이중생활 사수 나선 동성애 택시기사의 좌충우돌 코미디

[시네마 타운] 라이어
2명의 마누라 지키기 거짓말 대소동
이중생활 사수 나선 동성애 택시기사의 좌충우돌 코미디


한국에서 일부일처제는 사랑, 결혼, 가족의 근간이 되는 이념이자 제도다. 이런 제도는 우리의 오랜 역사에서 가족의 기초를 형성해 왔다. 하지만 과거 역사에서 왕족과 귀족층은 일부다처제를 당연하다고 여겨 왔으며, 근대 이후에도 일부일처제와 간통죄가 법의 이름으로 보장받는 영역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남성들이 한 명 이상의 여성에게 남편이 되었다.

이런 이야기는 한국 영화에서 ‘비극적 멜로드라마’로 재생산되었고, <미워도 다시 한 번>(1968)은 그런 장르의 대표작이다. 그 이후에도 멜로드라마들은 일부일처제를 벗어난 행동으로 인한 가정의 파국, 개인의 파멸, 불행과 비극을 간헐적으로나마 지속시켜 왔다. 만약 달라진 점이 있다면, 여성이 두 가정을 오가는 이야기(<결혼은 미친 짓이다>(2002))가 등장했다는 것과 주인공 여성이 죄책감에 시달리지 않는 다는 것이다.

그런데 <라이어>는 비슷한 소재를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슬픈 멜로드라마가 아니라 ‘코미디’라는 점은 여러 가지 흥미로운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두 명의 아내를 완벽히 속이고 이중생활을 하는 남성은 비밀이 탄로날 위기에 처하자 갖가지 거짓말로 위기를 모면해 보려고 시도한다. 여기에는 결혼의 신성함이나 성역화된 가족에 대한 사랑이 발견되지 않는다.

또한 비밀이 모두 들통나는 경우 발생할 수 있는 결론, 즉 이혼에 대한 두려움과 고민보다 주인공에게 중요한 것은 둘 모두를 사랑하기 때문에 이중생활을 계속 유지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점이다. 흥미롭게도 최악의 사태를 막기 위해 최선(?)의 거짓말로 반복되는 점이 주인공과 그의 절친한 친구가 ‘동성애 커플’이라는 것이고, 영화의 맨 마지막 장면은 두 여성이 택시에서 만나고(기사와 손님으로 만난다는 것은 주인공이 두 번째 부인을 그렇게 만났던 것과 동일), 주인공과 친구는 한 방에서 라면을 먹는다.

- 동성애 코믹장치로

‘동성애’를 코믹한 장치로 끌어들인 건 최근 영화에서 자주 쓰여지고 있는 (<오! 브라더스> 중 여관 장면을 떠올려 보라) 방식이지만, <라이어>에 등장하는 동성애는 영화의 갈등이 일부일처제에 대한 위반이기 때문에 다른 의미로 읽혀질 수 있다. 즉, 이성애 커플에서 동성애 커플로의 전환이 일어날 수 있다는 가능성과 그런 변화의 원인은 일부일처제의 모순에서 시작된다는 점이다.

정만철이 1년이라는 기간 동안 들키지 않고 가난한 옥수동 집과 압구정동의 화려한 아파트를 드나들며 두 명의 부인을 완벽하게 속일 수 있었던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그의 직업이 택시 운전사이기 때문에 밤에 근무하고 새벽에 첫 번째 아내, 양명순(서영희 분)이 있는 집으로 이동했다가 명순이가 공장에 출근하면, 두번째 아내 오정애(송선미 분)가 있는 아파트로 이동한다. 두 번째 이유는 정애와는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철이가 이중생활을 유지하는 것은 두 여성이 여러 측면에서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명순은 만철과 결혼 전부터 잘 알던 사이였고, 순박하고 억척스럽다. 정애는 가죽전문회사를 운영하는 능력있는 여성이고, 매력적인 미모의 소유자다. 따라서 만철에게 이중생활의 의미는 두 명의 부인이라는 단순한 사실을 넘어 전혀 다른 외모와 성격을 가진 여성들 사이를 오가며 계급적 신분 차이를 즐기는 유부남의 판타지 실현이다.

- 정형화된 여성인물엔 아쉬움

<라이어>는 영국의 극작가겸 연출가 레이 쿠니의 1983년 히트작인 가 원작이다. 영화는 현재 한국 상황에 적절하게 캐릭터와 배경을 모두 바꿔 원작에 따른 어색함은 없다. 무엇보다 혼인신고와 호적등본, 주민등록등본 등의 개인 관리 시스템이 동시에 두 명의 배우자와 결혼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을 적절한 장치들을 통해 피해간 점이 좌충우돌 코미디를 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또한 만철의 친구 노상구(공형진 분)는 원작처럼 이웃이 아니라 한 집에서 얹혀 살고 있기 때문에 만철의 거짓말에서 믿을 만한 다중 인물로 그려질 수 있으며, 백수라는 신분은 그가 만철의 거짓말에 동참하게 되는 이유와 그 과정에서 폭소를 제공하게 해주는 원인을 제공한다.

여섯 명의 주요 인물ㆍ배우들 중 가장 독창적이고 독특한 캐릭터는 박 형사(손현주 분)다. 자신이 잡을 수 있었던 현상 수배범을 만철이 뜻하지 않게 우연한 사고로 잡게 되자 만철이 범인과 한 패인지를 의?玖?만철과 상구를 추궁하는 말더듬기와 오버 액션의 달인이다. 관객이 만철과 상구가 범인과 아무런 연관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박 형사의 수사는 엉뚱한 사건을 일으킬 수 밖에 없지만, 그가 심각한 얼굴과는 어울리지 않게 더듬거리다가 무슨 뜻인지 모르는 소리들을 내며 감정을 폭발시킬 때, 그리고 강력계 형사라고 믿기 어려운 전혀 날렵하지 않고 충동적인 행동은 등장할 때마다 웃음을 터트리게 만든다.

비교적 탄탄하게 웃음을 끌어오던 이야기는 사실이 밝혀지기 직전부터 조금씩 답답해지다가 숨겨 왔던 비밀이 폭로되면서 웃음의 고리는 느슨해지고 달리 치환되는 새로운 감동이나 재미 없이 막을 내린다. <라이어>는 모든 인물들이 서로의 정체성을 오인하고 있다는 점에서 소극 혹은 익살스런 희극(farce)의 재미가 발생하는데, 결말에 가까워질 때, 김 기자(임현식 분)와 박 형사만이 오해로 인한 폭소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이 결말을 경쾌한 웃음으로 마무리하지 못하게 만든다.

시네마 단신
   
- 염정아 <여선생 vs 여제자> 캐스팅

<장화, 홍련>, <범죄의 재구성>을 거치며 현재 여배우로선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는 염정아가 <여선생 VS 여제자>의 엽기 발랄한 여선생으로 캐스팅 되었다. 제자와 선생이 한 남성을 사이에 두고 라이벌이 된다는 이야기로 <선생 김봉두>의 장규성 감독 작이다. 4월 중순 크랭크인하여 8월 초 개봉 예정이다.

- '악역의 원조' 독고성씨 별세

독특한 성격의 악역 스타로 은막을 누볐던 연기파 배우 독고성(본명 전원윤)씨가 10일 저녁 8시 서울 한남동 순천향병원에서 심장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74세. 1929년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난 고인은 55년 <격퇴>로 데뷔, <목포의 눈물>, <칠십이호의 죄수>로 주목받았고,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대탈출>, <칠인의 난폭자>, <제3부두 영번지>, <악인가>, <유혹하지 마라>, <풍운의 임란야화>, <눈물 젖은 부산항> 등의 영화로 60~70년대에 개성있는 악역으로 인기를 끌었다. 장남 독고영재(본명 전영재)씨는 영화 <나비>와 드라마 <애정만세> 등에 출연하며 중견배우로 활동하고 있으며 손자 전성우씨는 지난해 SBS 톱탤런트 선발대회에 합격해 연기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는 마지막 출연작인 영화 <까>(감독 정지영)에서 아들, 손자와 함께 연기를 한 바 있다.

채윤정 영화평론가


입력시간 : 2004-04-22 15:50


채윤정 영화평론가 blauthin@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