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쇼핑의 세계] 뭘 팔거냐고? 발품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쇼호스트는 1~2시간의 방송을 위해 많은 준비 시간을 보낸다. 원고가 없는 상태에서 어떤 상품의 A부터 Z까지 논리 정연하게, 그리고 시청자가 부담 없이 제품을 선택할 수 있게 설명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쇼호스트들은 나름대로 방송 준비를 위해 제품 설명서를 참고하는 것외에 분주하게 발로 뛰면서 방송 준비를 한다. 예를 들어 백화점이나 할인점을 들러 방송할 상품의 가격 차이 등을 확인하거나, 그곳에서 매장 판매원이 같은 상품을 어떻게 고객에게 설명해주는가를 유심히 살펴 보기도 한다. 또 디지털 카메라나 캠코더 같은 IT 제품들은 직접 샘플을 받아 촬영도 해보고 컴퓨터와 연결해 일부러 복잡한 과정을 테스트하기도 한다. 이런 경험들은 역시 실전에서는 상품설명서보다 더 위력을 발휘하기 마련이다. 머리로 익힌 상품 지식보다는 몸으로 익힌 상품 지식이 훨씬 기억도 오래 남고, 시청자에게 필(FEEL)을 강하게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자도 상품을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 몸으로 때우는(?) 작업을 자주 한다. 그런 방법 중 하나가 방송 전에 그 상품을 제조하는 회사를 직접 찾아가 보는 것인데, 의외로 여러 가지 도움이 된다. 생산 현장이나, 작업 공정, 배송 과정 등을 둘러 보고, 그곳 사람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우선 이야기 거리가 풍부해진다. 또 제품의 질을 소개하는데 매끄러운 진행이 가능하다.

며칠 전에는 자동차 시트(카 시트) 방송을 맡았는데, 신상품이 되다 보니 가격이 올라갔다. TV홈쇼핑에서 가격 인상은 치명적이다. 더구나 지난 2년간 꾸준히 소개됐고, 비록 기능이 더 첨가됐다 하더라도 가격이 2만원이나 인상된 후 첫 방송이라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2만원 인상의 부담을 어떻게 이겨내나 고민하다 무작정 제조 회사를 찾아가 보기로 했다. 1시간 30분 정도를 물어 물어 찾아가 2~3시간 있었을까? 처음엔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제품에 대한 지식이야 이전에도 꾸준히 방송을 했던 터라 잘 알고 있었고, ‘역시나’ 예상했던 것 만큼 새로운 사실은 없었는데, ‘오기를 잘했구나’라고 느낄만한 것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작업 현장에서 묵묵하게 작업에 열중하는 근로자의 모습과 제품에 대한 자부심, 그 자부심과 자신감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진지한 자세였다.

사실 쇼호스트는 매출이 좋든 나쁘든 크게 책임지거나 영향을 받는 일은 없다. 하지만 제조업체 입장은 다르다. 그야말로 방송하는 시간과 그 이후의 매출 결과가 회사의 존립 여부를 판가름할 정도로 중요하기 때문에 제품을 만드는데 최선을 다 할 수 밖에 없고, 누가 봐도 부끄럽지 않은 제품을 생산해야 한다. 그 현장을 둘러보고 온 필자는 바로 너무나도 중요한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이렇게 노력한 사람들 모두가 나의 말 한마디, 움직임 하나하나를 주시하겠구나’하는 점이다.

방송에 들어간 뒤 필자는 제품 기능도 중요했지만 제조 현장에서 받은 느낌을 전달하려고 애썼다. 다행히 매출 결과는 좋았다. 나중에 협력업체에서 매출보다 필자의 방송 멘트에 더 흡족해 했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그렇게 흐뭇할 수가 없었다. ‘TV 홈쇼핑 방송 진행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다시 깨닫는 순간이었다.

경험적으로 이렇게 몸으로 때우는(?) 준비 과정을 거친 상품은 매출 실적에서도 거의 실패한 적이 없다. 물론 열심히 몸으로 때워 준비한 자료를 한 번도 방송에 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 준비 과정을 거치면서 가졌던 느낌은 입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가슴에서 나오기 때문에 놀랍게도 같은 말을 하더라도 결과는 다르게 나온다. TV 홈쇼핑 채널에서 노력하는 자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는 것 같다.

문석현 CJ홈쇼핑 쇼호스트


입력시간 : 2004-04-22 16:02


문석현 CJ홈쇼핑 쇼호스트 moonanna@cj.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