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식의 문화읽기] 책읽기까지 기능이 되고 마는가


어느 포털 사이트의 게시판에서 눈에 띄는 제목의 글을 발견했다. ysouh라는 아이디 사용자가 4월 14일에 작성한 글이다.

‘두 아이를 둔 엄마로서 너무나 황당한 소리를 들었습니다. 독서 능력 검정 시험을 봐서 급수를 정한다구요. 처음에는 무슨 소리인가 했어요. 그런데 내용을 알고 보니 어이가 없더군요. (중략) 1급에서 10급까지 등급을 정해서 한 급수 당 40 내지 50권 정도의 책을 읽고 외워서 OMR 카드에 정답을 쓰는 방식이라고 하네요. 무슨 말인지 아시겠죠. 바로 객관식이라는 시험 방식인 거죠. (중략) 책을 안 읽어서 걱정을 하면서 내 놓은 발상이라고 하니 참 어이가 없네요. 가뜩이나 학원이다 학습지다 정신없는 아이들에게 책을 책으로 즐기지 못하고 시험으로 평가 받아야 한다니 아이들이 가여워 집니다. http://news.naver.com/nboard/read.php?board_id=news_dis45&nid=25224

정해진 책을 읽고 시험을 봐야 하는 아이들의 고통스러운 표정과 그러한 자녀들의 모습을 보며 가슴 아파하는 부모의 마음이 한꺼번에 몰려 온다. ‘독서인증제’라니? 참을 수 없는 짜증을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견디며 관련 기사들을 찾았다.

보도에 의하면, 전국독서새물결모임이 초ㆍ중ㆍ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도서를 선정하고 이를 검정하는 시험을 치는 독서인증제를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선정된 도서를 읽고 관련 홈페이지에 글을 올리면 석ㆍ박사 과정에 있는 학생들의 지도를 받을 수 있고, 공인 절차를 마치면 학교의 생활기록부에 등재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이상한 것은 독서능력검정시험을 독서ㆍ논술 전문 사교육업체가 후원하고 관리한다는 점이었다. 사교육의 역량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교육업체가 검정시험에 관여해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은 뭔가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 저기에서 현직 교사들과 교육청 연구사들이 사교육업체의 후원을 받아 동원되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었다.

사교육체가 검증시험에 관여해도 좋은가라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 본질적인 문제는 독서능력의 검증이 과연 가능하기라도 한 것이며, 또한 독서문화 및 청소년 독서교육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가라는 점에 있을 것이다. 독서검증시험을 추진하는 쪽에서는 독서인증제를 시행하자는 근본 취지가 ‘학교 현장의 책읽기 운동 확산’에 있으며 ‘너무나 책을 읽지 않는 학생과 일반인들에게 책을 읽을 목표를 갖게 해주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책읽기가 정답을 찾아 나서는 서바이벌 게임의 도구로 전락할 때, 그나마 책읽기에 열정과 관심을 간직하고 있던 학생들마저도 정나미가 떨어져 버리게 되지 않을까. 만약 독서검증이 국가적인 차원에서 승인된다면 학교 현장에서 책읽기가 획일화되어 실종되어 버릴 가능성이 더 크다.

공부를 하지 않으면 모르는 게 없어 진다. 독서능력을 검증하겠다고 하는 생각은 책을 제대로 읽어 본 경험이 없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 어쩌면 ‘너무나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은 학생이나 일반인들이 아니라 독서능력을 객관식 문제나 단답형 문제로 검증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물론 시험은 교육의 중요한 과정이자 절차이다. 하지만 시험만능주의는 교육을 망친다. 책읽기마저도 시험의 억압 속에 놓이게 된다면, 책읽기의 즐거움은 원초적으로 증발되어 버리고 책읽기의 지겨움만 남게 될 것이다. 시험이나 평가를 위한 의무 과정으로 청소년들에게 강요되는 책읽기, 생각만 해도 공포스럽다.

책읽기 만큼은 자유로운 경험 영역으로 남아야 한다. 정말로 책읽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 책을 읽든지 말든지, 어떤 책을 읽든지 말든지 상관하지 말고 그냥 내버려 두길 바란다. 그 대신에 도서관의 장서를 확충하고, 양서를 지속적으로 선별하여 추천하고, 책읽기의 즐거움이 어디에 있는지 보여 주는 일을 더 열심히 하면 되지 않을까. 책은 즐거운 다양성이다. 앞에서 인용한 글의 뒷부분을 마저 소개한다.

‘아이들을 진정으로 생각하신다면 이럴 수는 없어요. 당장 중지하라고 지금이라도 그 행동을 멈추라고 강력하게 주장합니다. 당장의 이익보다 우리 아이들의 미래가 더 중요하니까요.’

김동식 문학평론가


입력시간 : 2004-04-22 17:06


김동식 문학평론가 tympan@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