짙푸른 낭만 '마로니에'

[이유미의 우리풀 우리나무] 칠엽수
짙푸른 낭만 '마로니에'

다양하던 연두빛이 이젠 초록이라는 한 빛깔로 변해간다. 가지마다 삐죽삐죽 돋아 나던 새싹들이 어느새 무성하게 가지를 덮어 간다. 이제부터 나무들에게는 여간 꽃을 피워서 돋보여 보이기가 힘들 것 같다.

칠엽수도 마찬가지다. 붉은 얼룩이 지며 큼직하고 개성 넘치게 올라오던 새순들이 어느새 주름진 잎들을 내더니 이제 하나 둘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초록의 잎에 가로 새순보다도 잎새보다도 더 독특한 고깔 모양의 꽃들이 눈에 잘 들어 오지는 않지만, 한번 꽃을 발견하고 나면 아무리 보아도 특별하게 아름다운 것이 바로 칠엽수의 꽃이 아닌가 싶다.

칠엽수는 마로니에라는 이름으로 더욱 유명하다. 사실 마로니에라는 이름은 칠엽수를 비롯한 이 집안 나무들을 통틀어 부르는 이름이고, 칠엽수는 그 다양한 마로니에들 중에서 우리나라에 가장 많이 심겨진 일본이 고향인 나무의 이름이다. 유럽을 것을 두고 서양칠엽수라 구분하여 부르기도 한다. 물론 칠엽수란 우리 이름은 잎이 7장씩 모여 달려 붙여졌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육엽수도, 팔엽수도 더러 보이긴 한다.

프랑스 아니 유럽의 어느 나라이든 한 번 다녀 온 사람들은 저마다 그 아름다운 마로니에 가로수와 낭만을 이야기하곤 한다. 그 이유는 어느 거리에서나 이 나무를 쉽게 만날 수 있고, 또 그 모습이 모든 이들의 가슴에 남아 있도록 짙푸르게 아름답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파리의 몽마르뜨 언덕의 마로니에 가로수는 아주 유명하다. 유럽의 화가며 문인을 비롯한 많은 예술가들이 항상 이 언덕에 모여 문학을 이야기하고 그림을 그리며 시간을 보내고 있으며, 그러다 보니 줄지어 서 있는 이 싱그러운 나무들이 자연히 그들의 예술 소재로 수없이 등장하게 되고 어느새 낭만주의 문화의 상징이 되었다. 서울대학교 문리대가 있던 자리에 마로니에 공원이 들어 선 이유도 이 때문이다.

마로니에는 세계의 3대 가로수에 속한다. 오래 전 빙하 시대에 발칸반도, 즉 지금의 그리스가 있는 곳까지 내려갔고 빙하시대가 끝나고 다른 많은 식물들은 다시 북쪽으로 올라왔지만, 이 서양칠엽수만은 종자도 큰데다가 커다란 산에 가로 막혀 올라가지 못하고 주저 앉아 루마니아국경근처에서만 자란다고 한다. 이것을 16세기에 프랑스에 어떤 사람이 처음으로 도입하여 지금은 전 유럽에 퍼져 사랑을 받는 것이다. 봄이면 꽃과 잎이 곱고, 단정하고 수려한 모습으로 여름에 시원한 그늘과 황갈색으로 져가는 낙엽의 풍치가 좋아 가로수나 공원수로 많은 사랑을 받을 만한 나무이다.

그 이외에도 칠엽수의 목재는 무늬가 독특하여 공예의 재료나 기구재, 합판 등으로 다양하게 이용되며, 그림을 그릴 때 쓰는 목탄도 이 나무의 숯으로 만든다고 하고, 서양에서는 화약의 원료가 되기도 한다. 꽃이 많이 피면 벌이 많이 찾아 와 밀원으로도 이용이 가능한데, 환경 조건만 잘 맞으면 20m 정도 잘 큰 나무에서는 하루에 꿀이 10 리터나 생산된다는 기록이 있다.

또 밤과 비슷하지만 밤보다 큰 이 나무의 종자를 말밤라고 한다. 종자는 떫은 맛을 제거하여 떡을 만들어 먹거나 풀을 쑤기도 하며, 백일해에 걸렸을 때나 말이 눈병에 걸렸을 때 효과가 있다고 한다. 잎을 쓰는데, 키니네의 대용품이 되기도 하고 설사나 기침을 멈추는 데 효과가 있다고 한다.

시원한 칠엽수 그늘이 좋아지는 때가 오는 것 같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입력시간 : 2004-05-04 20:14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99@fo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