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는 봄이 아쉬운 진홍빛 꽃융단국내 최고의 철쭉꽃 감상 명소, 남원 역사기행도 매력적

[주말이 즐겁다] 지리산 바래봉 철쭉
가는 봄이 아쉬운 진홍빛 꽃융단
국내 최고의 철쭉꽃 감상 명소, 남원 역사기행도 매력적


눈부시게 파란 하늘, 늦봄의 말간 햇살이 초록으로 물든 능선으로 쏟아진다. 화사하게 피어난 붉은 철쭉꽃, 그 사이로 조붓한 길이 이어져 있다. 앞서 가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철쭉꽃이 마구 흔들린다. 성미 급한 산 아래의 철쭉꽃은 벌써 붉은 꽃잎을 뚝뚝 떨구는데, 정상 부근의 철쭉꽃은 이제야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한다.

철쭉은 깊은 봄을 대표하는 꽃이다. 우리나라엔 철쭉꽃으로 이름 높은 산이 제법 많다. 장흥의 천관산, 산청의 황매산, 지리산의 세석평전과 바래봉, 그리고 소백산, 태백산…. 그중 지리산 서쪽 줄기인 바래봉(1,165m)은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우리나라 최고의 철쭉 감상지로 떠오른 산이다. 여느 군락지와 달리 목장 풍경의 푸른 초원에 피어난 붉은 철쭉꽃이 아름다운 풍광을 연출하는데, 산은 높아도 길이 험하지 않아 아이들과 함께 거닐기에도 좋다.

- 푸른초원과 어우러진 아름다운 풍광

바래봉이 비교적 근래에 철쭉의 명소로 이름나게 된 데는 바래봉 아래의 축산기술연구소와 깊은 관계가 있다. 원래 바래봉 일대는 표고 1,000m가 넘는 산줄기덕에 숲이 매우 울창했다. 그런데 1970년대 초 이곳에 한국 – 오스트레일리아의 시범 면양 목장이 설치되면서 면양떼를 이 산자락에 방목하면서부터 사정은 달라졌다. 면양은 짙은 숲을 이뤘던 잡목의 잎은 물론, 풀의 새싹도 나는 대로 먹어 치웠다. 결국 대부분의 식물은 모두 말라 죽어 버렸는데, 잎에 독성이 있어 면양이 건드리지 못한 철쭉만 남게 되었던 것이다. 면양을 방목하던 산등성이의 넓은 초지엔 철쭉만 무성하게 덮이게 되었던 연유다.

바래봉 철쭉은 처음엔 지리산 주릉을 종주했던 산악인들을 통해 입소문을 타게 되었고, 사진작가들이 다녀가면서 관심을 끌게 되었다. 그러다 1990년대 들어 일반인들의 등산이 가능해지면서 우리나라 최고의 철쭉꽃 감상 명소가 된 것이다. 여기엔 운봉을 비롯한 남원의 여러 단체들이 철쭉 군락지 보호운동을 편 덕도 있다.

철쭉꽃 군락은 1123봉에서 바래봉 서쪽 아래까지 4km 이상 넓게 퍼져 있는데, 팔랑치에서 오두막까지 1.5km쯤에 가장 밀집되어 있다.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과 철쭉꽃을 즐기려는 사람들은 축산연구소 코스로 올랐다가 다시 내려 오던가, 팔랑치까지 간 뒤 전북축산고교쪽으로 내려와도 된다. 어쨌든 3~4시간쯤만 발품을 팔면 ‘ 해동 제일의 철쭉꽃밭’을 만끽할 수 있다.

바래봉 철쭉꽃은 매년 4월 하순 무렵 아래쪽부터 피기 시작하고, 정상 부근의 능선은 5월 중순 이후에 절정을 이룬다. 올해 정상 부근의 철쭉은 5월 20일쯤에 만개할 예정이라 한다. 바래봉 철쭉과 운봉읍 현지 정보는 운봉읍사무소(063-620-6601)에 문의하거나 홈페이지(http://unbong.or.kr) 참조.

남원은 판소리의 산실이다. 화창한 봄날에 광한루에서 그네 타던 춘향이 뿐만이 아니고, 심성 착한 흥부와 마음씨 나쁜 놀부 형제, 그리고 정력가의 대명사 변강쇠와 옹녀 부부도 이 고을에 터를 잡고 살았으니 남원은 판소리 여섯 마당 중 절반의 배경이 되는 고을인 셈이다.

- 동편제의 발상지 운봉

특히 바래봉 아래 자리잡은 운봉은 쭉쭉 뻗는 우렁찬 소리가 매력인 판소리 동편제의 발상지로 꼽힌다. 바래봉 가는 길목의 비전마을은 동편제의 시조로서 판소리계에서 최고의 칭호인 가왕(歌王)으로 불리는 송흥록 명창이 태를 묻었기 때문이다. 구룡폭포에서 득음한 송흥록은 ‘ 적벽대전’과 ‘ 춘향가’의 귀곡성이 매우 유명하다. 그는 귀곡성을 얻으려 가랑비 내리는 음침한 날 밤이면 ‘ 아장터’를 찾아가 밤새우기를 삼년, 결국 접신이 되어 귀신의 소리를 뛰어나게 할 수 있었다고 전한다. 송흥록에 버금가는 송광록도 비전마을에서 태어났고, 그 소리는 송광록의 아들 우룡, 우룡의 아들 만갑으로 이어지고 송만갑의 제자 박초월도 비전마을에서 소리를 익혔다. 생가가 잘 조성되어 있어 들러볼 만하다.

송흥록생가 뒤쪽엔 ‘황산대첩비지’가 있다. 고려 말기인 1380년(우왕 6) 이성계는 이곳 황산 일대에서 왜구를 크게 무찔렀으니 바로 황산대첩이다. 이를 기념하여 1577년(선조 10)에 황산대첩비를 세웠으나 일제시대에 파괴되었고 광복 후에 재건하였으나 비석을 완전 복원하기 어려워 대신 그 터를 사적으로 지정하였다. 운봉 일대엔 왜구들의 시체가 피를 肩蹄募?피바위 등 관련 유적지가 남아 있다.

별미의 고장, 남원은 미꾸라지로 요리한 추어탕과 추어숙회, 미꾸라지찜 등이 매우 유명한 고을이다. 광한루 근처에는 추어탕으로 전문으로 하는 식당이 즐비한데, 광한루 서편의 새집추어탕(063-625-2443)이 유명하다. 40여년 전통을 자랑하는 새집은 서삼례 할머니가 첫 맛을 내었고, 이젠 조카딸이 맛의 비법을 이어가고 있다. 주재료인 미꾸라지는 예전 논둑에서 흔히 잡던 몸통 둥근 토종 미꾸라지를 쓴다. 직접 담가 맛을 낸 간장, 된장, 고추장과 지리산 자락의 각종 산나물과 야채도 입맛을 돋운다. 추어탕 6,000원.

민병준 여행작가


입력시간 : 2004-05-13 15:09


민병준 여행작가 sanmin@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