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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쇼핑의 세계] 불륜여행 조장


TV 홈쇼핑 채널은 케이블 TV를 통해 시청자에게 소개된 뒤 9년 만에 단일 회사가 조 단위가 넘는 매출을 기록하며 엄청난 발전을 거듭, 이제는 쇼핑을 넘어 일반적인 하나의 TV 채널로 자리 잡게 되었다.

사회적으로도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 케이블 방송 도입 초기 TV홈쇼핑 채널을 거의 정크 채널(junk channel)로 홀대하며 설립을 반대했던 방송 학계에서 조차도 이젠 TV 홈쇼핑 채널을 대상으로 여러 연구 작업을 진행하고 있고, 필자도 쇼호스트를 중심으로 논문을 발표하자 여기 저기서 많은 관심을 나타내 TV 홈쇼핑 채널의 달라진 위상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쇼호스트라는 직업에 대해서도 단순히 고액 연봉자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TV 방송 프로그램의 전문 진행자로서 인정하는 추세여서, 현직 쇼호스트들 모두 나름대로 보람과 긍지를 가질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하지만 늘 좋은 것만은 분명 아닐 것이다. TV 홈쇼핑 채널 종사자들 모두는 달라진 사회적 인식에 자긍심을 갖기 이전에 케이블 TV라는 미디어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아쉽게도 막을 수 있는 실수를 할 때도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작년 모 TV홈쇼핑 채널에서 방송했던 ‘이민 상품’이다.

첫 방송이 나간 후, 폭발적인 시청자의 호응으로 전례가 없는 엄청난 기록을 남기면서, 신문 방송 할 것 없이 여기 저기서 앞 다퉈 기사가 보도되었다. 하지만 결국 국민에게 돌아 갔던 후유증은 너무나 컸던 기억이 아직도 머리에 생생하다. 실제로 당시 그 회사의 이민 상품 담당 MD와 방송 담당자는 기록적인 매출로 여러 차례 방송이 나간 후 회사측으로부터 성과금 지급 등 기록에 상응하는 인센티브를 약속 받았지만, 여론이 악화되자 인센티브는 커녕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데 대한 징계까지 언급이 되는 등 극과 극을 오가는 경험을 했다고 한다. 매출에만 신경을 집중하다 보니 그만 방송의 위력과 사회적 책임을 간과했기 때문이었을 게다.

최근의 일은 아니지만 몇 해 전에도 이와 유사한 일이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진 어느 TV 홈쇼핑 채널에서 태평양과 알래스카 일대를 도는 부부 동반 크루즈 여행 상품권을 판매한 적이 있다고 한다. 원래는 미국의 한 여행사에서 미주 지역 사람들을 대상으로 기획한 상품이었는데 예약이 이루어 지지 않자, 어떤 기회로 인해 우리나라에서 거의 덤핑 가격으로 남은 좌석을 판매하게 되었다. 이 여행권은 워낙 조건이 좋았던 탓인지 모두가 깜짝 놀랄 만큼 예상 외의 판매고를 올렸다. 사실 크루즈 여행은 모든 이들이 일생에 한 번 쯤 꿈꿀만한 멋진 이벤트가 아니겠는가! 더군다나 조건마저 좋다면 더 이상 미룰 일이 아니었다.

어쨌든 방송 담당자 들은 희희낙락하고 있는데, 문제는 그 다음에 일어났다. 여행 신청을 한 사람들 중 90% 정도가 미국 여행사로부터 비자를 발급 받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었다. 이유는 이랬다. 그 여행 상품은 부부를 대상으로 판매를 한 것이어서 당연히 정식 부부인 사람들 만이 미국 정부로부터 비자를 발급 받을 수 있었는데, 방송 중에 크루즈 여행을 신청한 커플 중 90%는 부부가 아니었던 것이다! 앞서 언급한 ‘이민 상품’과는 분명히 다른 성격의 상품이고 기획 의도도 충분히 이해할 만한 여지가 있지만, TV 홈쇼핑 채널에 대해 사회적인 관심이 상대적으로 적었던 때에 방송되었기에 망정이지, 요즘 같았으면 분명히 사회적인 이슈로 떠오를 만한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지금은 몇몇 사람만이 기억하는 추억 속의 이야기가 되었지만, 이 사건은 TV 홈쇼핑 채널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귀감으로 삼아야 할 중요한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지상파 방송보다는 못하겠지만, 불특정 다수가 시청하고 국민 모두를 대상으로 하는 케이블 TV 미디어이기 때문에 뜻하지 않은 곳에서 방송 담당자들이 생각하지 못한 엄청난 파급 효과를 언제나 염두에 둬야 하기 때문이다. 역시 시청자는 묵묵히 TV를 시청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방법으로든 결과를 보여 주기 때문에 무섭다.

눈앞의 이익만을 생각하고 그것만을 좇는 편협한 사고를 했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큰 사고를 불러 온다는 것. 평소 앞만 보고 달리기만 하는 현대인에게 꼭 필요한 말이기도 하지만, 특히 순간 순간 매출이 집계되고 실시간으로 모든 결과가 드러나는 우리에게는 반드시 가슴에 품어야 할 경구가 아닐까 한다.



문석현 CJ 홈 쇼핑 쇼호스트 moomanna@cj.net


입력시간 : 2004-05-13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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