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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 타운] 트로이
니힐리즘 속의 영웅들, 블록버스터 속으로 지다
'글래디에이터'의 처절함, 브래드 피트의 육체 언어에 휘발돼






영화 ‘트로이’에 이미 300 만명이 넘는 관객이 몰렸다. 그럴만하다. 영화는 브래드 피트같은 일급 스타를 내세운 거대 블록버스터의 기본적인 매력에다, 호머의 ‘일리아드’같은 부담스러운 고전을 스크린에서 부담없이 체험할 수 있는 즐거움을 주기 때문이다. 사실 원작과 비교해보면 영화는 ‘일리아드’에서 올림푸스의 신들을 모두 허공으로 날려보낸 채 역사 실화처럼 만든 전쟁 서사물같은, 훨씬 세속적인 모습을 띄고 있지만, 그런 결과 역시 에너지 넘치는 남성 영웅담을 즐기는 관객에게 오랜만에 던지는 오락거리로서 모자람이 없다. 이 영화는 신화의 충실한 재현이라기 보다는 4년 전에 나왔던 ‘글래디에이터’같은 남성 영웅을 내세운 액션 블록버스터를 다시 한번 즐기고 싶은 관객들의 갈증을 노린 영화다.

하지만 영화 ‘트로이’를 보고 나면 과연 영화 속 캐릭터라는 것이 어떻게 만들어져야 하는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한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아킬레우스 역의 브래드 피트다. 흔히 우리가 주연이라고 말할 때 이 영화를 예로 들면 아킬레우스 외에도 트로이의 장군 헥토르와 그의 아버지 프리아모스 왕도 같이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의 ‘주인공’은 언제나 한명이다. 그는 이야기 전체의 주제를 대변하고, 자신의 위기와 결심에 따라 이야기의 위기와 갈등구조를 만들어 내고, 그 갈등을 해결하면서 영화를 결말로 이끌고 가는 사람이다. 이 영화가 내세운 그 한명의 주인공이 아킬레우스인 것이다.

그러나 영화를 본 사람들이었다면 누구나 느꼈겠지만 영화를 보고 난 다음에는 주인공 아킬레우스보다 에릭 바나가 맡은 헥토르 역이나 프리아모스 왕에게 더 이끌렸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영화 개봉 후 실시된 한 설문조사에서 아킬레우스 보다 헥토르에게 더 매력을 느꼈다는 결과가 나온 것은 단지 배우 에릭 바나가 떠오르는 차세대 스타이며 그가 충실한 남성의 캐릭터를 가졌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건 영화의 주인공이어야만 되는 브래드 피트를 주인공에 걸맞는 캐릭터로 만들지 못했다는 사실의 방증이다.


- 남성 영웅에로의 갈증을 겨냥



“신을 섬기고 나라를 섬기고 내 아내를 사랑하라”는 헥토르는 ‘글래디에이터’의 막시무스와 닮아있다. 나라에 충성하고 가족을 사랑하는 그는 어리석은 동생 때문에 원치 않는 전쟁에 뛰어들지만, 불행한 운명을 예감하며 준비하는 강인한 남성성을 보여준다. 캐릭터의 영웅적인 면모로 보자면, 그는 ‘전쟁의 무상함’이라는 영화의 주제에 아킬레우스보다 훨씬 더 들어맞는 주인공이다. 그가 이 영화의 주된 주인공이었더라면 영화는 훨씬 더 설득력 있게 다가 왔을지 모른다.

‘글래디에이터’와 ‘트로이’를 비교해보면 캐릭터라는 것이 단순히 ‘이러이러한 성격이다’라는 설정만으로가 아니라 이야기의 구조와 맞물려서 하나하나 쌓여가면서 만들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글래디에이터’에서 막시무스는 도입부의 어두운 전투신에서 등장하면서부터 그의 캐릭터를 명확히 드러낸다. 그는 부하들을 사랑하고, 왕의 사랑을 받으며 그에게 충성을 맹세하지만, 전쟁에 대한 허무함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으로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꿈을 가진 캐릭터다.

이런 그의 캐릭터가 왕의 아들 코모두스의 반란으로 큰 위기를 맞는다. 그는 가족을 잃고 왕을 잃고 모든걸 잃어버린 채 허무에 빠진다. 이는 동시에 영화의 가장 극적인 위기이다. 이야기는 니힐리즘에 빠진 그가 어떻게 주변의 도움으로 그 허무를 극복하고 자신이 평생 믿어왔던 소중한 신념들을 하나하나 되찾아 가느냐의 과정을 그린다. 막시무스의 캐릭터는 극적구조의 흐름과 정확히 일치하며 변화해나가다 결말에서 영화의 주제와 자신의 열망을 실현시킨 뒤 비극적인 선택으로 관객의 마음을 뺏는다.


- 원작에 없던 캐릭터, 지나친 상상력

하지만 ‘트로이’에서의 아킬레우스의 캐릭터는 브래드 피트의 아름다운 몸 때문에 구조적 전략대신 패셔너블한 전략으로 쓰였다고나 할까. 여자들의 벗은 몸 사이에서 등장한 그는 우울하고 전쟁을 막연히 싫어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후세에 이름을 남기고자 하는 복합적인 캐릭터로 등장한다. 원작 신화에서 볼 수 없는 이런 아킬레우스의 모호함을 그리겠다는 의도는 스토리 전개와 맞물리지 않으면서 그의 행동의 동기와 캐릭터를 피상적으로만 만들 뿐이다. 초반 전쟁을 싫어하는 듯한 아킬레우스를 전쟁으로 끌어들인다는 명목으로 사촌의 죽음을 내세우지만, 이건 주인공에 불어닥친 극적인 위기라기보다는 그저 주인공의 분노 정도일 뿐이다. ‘사후의 명예’라는 것 외에 그의 행동에 대한 동기가 불명확하게 설정됨으로써 주인공은 극적인 갈등구조에 끼어들지 못하고 겉돌기만 한다. 주인공의 의지나 강렬한 희망과는 상관 없이 이야기는 계속 전개되고 힘을 잃는 주인공의 캐릭터들을 다른 사람들을 통해 보충하려고 하면서 영화는 일관된 시점을 잃어버린 채 힘이 빠지고 만다. 그의 죽음이 그다지 열정적으로 보이지 않았던 브리세이즈와의 사랑때문이라는 결말에 이르면 도대체 이 이야기의 포인트가 무엇이며 주인공이 진정으로 바라던 것이 무엇이었나 하는 것까지 헷갈리게 된다. 결국 기억에 남는 것은 브래드 피트의 육체적인 매력에 의존한 애매한 로맨틱함 뿐이다. 캐릭터가 이야기의 구조 속에 차곡차곡 쌓여가지 않을 때 어떻게 실패할 수 있나를 ‘트로이’는 여실히 보여준다.

■ 시네마 단신
  


- 스크린 발권, 전산화 추진

서울시극장협회(회장 이창무)가 통합전산망에 참여한다. 협회는 9일 총회에서 발권 정보를 매주 월요일 한 차례씩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에 제공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주간 박스오피스 집계의 정확도가 훨씬 높아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8일까지 통합전산망에 연동신청을 한 스크린은 발권이 전산화된 1천32개 스크린 가운데 422개(40.9%)이며 서울시극장협회 회원사가 모두 참여하면 가입률이 57%대에 이를 전망이다.



- 영화제 자원활동가 모집

서울 넷&필름 페스티벌(이하 세네프) 조직위원회는 9월 15일부터 22일까지 열리는 영화제 자원활동가를 다음달 31일까지 모집한다. 모집 분야는 기획팀, 자원활동팀, 프로그램팀, 홍보팀, 인터넷팀, 기술ㆍ자막팀, 초청팀, 상영관 운영, 티켓운영, 행사운영, 홍보, 인터넷, 기술, 초청 등이며 응모자는 영화제 홈페이지(www.senef.net)의 자원활동가 페이지에서 내려받은 신청서를 e-메일(jini0000@senef.net)로 제출하면 된다.





이윤정 영화 평론가 filmpool@naver.com


입력시간 : 2004-06-16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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