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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 연극 <잘자요, 엄마>
일상 속에 배태된 관계 혹은 비극
실제 모녀가 펼치는 격정적 극전개, 절재된 연기력 돋보여


연극열전 일곱 번째 작품, 모녀가 등장하는 이인극 <잘 자요, 엄마>에서는 실제 모녀간인 윤소정, 오지혜가 출연하여 화제를 더 하고 있다. 미국의 한 평범한 가정의 실내를 배경으로 극히 일상적이고 사실적인 무대 장치 속에서 모녀가 나누는 대화 또한 지극히 평범하게 시작된다. 그러나 지병인 간질병에 오래 시달려 온 딸 제시가 엄마에게 권총 자살하겠다는 폭탄 선언을 하면서 극은 팽팽한 긴장감 속으로 돌입한다. 죽음을 결심한 딸 제시와 이를 만류하려는 어머니 델마 사이의 길고도 긴 대화는 ‘ 잘 자요, 엄마’라는 제시의 인사말로 끝난다. 조금 후 잠긴 방 안에서 총성이 나고, 이 소리를 들은 델마가 아들 도슨에게 도움을 청하는 전화를 하는 장면에서 공연은 막을 내린다. 마샤 노먼의 <잘 자요, 엄마>에서 모녀가 나누는 마지막 대화가 드러내는 극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 딸의 자살을 만류하려는 엄마의 실패



제시는 죽음에 대한 자신의 결심이 확고하며 자신의 행동이 불가피한 것임을 엄마에게 납득시키고자 한다. 반면 엄마 델마는 그런 딸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녀의 심정을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딸을 다시 삶으로 이끌고자 혼신의 힘을 다한다. 극은 그런 델마의 설득 과정이 그녀의 집요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실패로 돌아간다는 것을 보여준다. 비극의 원인은 이미 오랜 시간에 걸쳐 태어나고 지속되어 왔을 것이지만, 지금에 와서 그 흐름을 돌이키는 일은 불가능해 보인다. 삶이 미묘한 것은 그 원인을 밝히는 것도, 그것을 돌이키는 것도 그리 단순하지 않다는 것에 있다.

죽음을 결심하게 된 가시적이고 직접적인 원인으로 제기되는 제시의 간질병, 딸의 병에 무심하게 대처한 엄마의 방식, 삶에 대한 제시의 절망감 등에 비극의 원인은 잠복해 왔다. 어쩌면 그것은 아버지의 병이 유전된 것이거나 델마가 말하듯 무심코 피워온 담배에 원인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모든 것은 진정한 의사 소통에 이르지 못한 두 사람의 관계가 빚어낸 문제에 비하면 부수적인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비극을 돌이키는 것이 불가능해 보임에도 불구하고 관객은 극을 지켜보면서, 그들이 대화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화해함으로써 딸 제시가 말하는 극단적인 결말에 이르지 않기를 소원하게 된다. 이제 이 곳을 떠나려는 제시보다는 제시에게 애원하고 협박하는 델마에게 더 공감하게 되는 것은 그래서다. 제시가 죽음을 맞이하는 총성이 들릴 때 관객은 팽팽하던 실의 한 끝을 놓쳐버린 허망함과 그녀를 살리지 못한 일말의 죄책감을 공유하게 된다. 동시에 나의 상황은 어떠한가를 제시와 델마의 입장에서 반추하게 된다.


- 죽음을 앞둔 일상적 대화가 주는 낯설음

평범해 보이는 모녀간의 대화 장면은 일상의 모습 그대로이지만, 죽음을 결심한 딸 제시가 처한 예외적 상황 때문에 일상적 대화 하나 하나는 낯선 모습과 새로운 무게를 가지고 다가 온다. 농담 같은 자살선언이 진정으로 여겨지기까지의 과정이 설득력 있게 그려지고, 그 과정에서 터지는 의외의 웃음으로 공연 분위기가 무겁지만은 않다. 딸은 자신이 비울 자리를 염려하여 살림에 관한 당부의 말들을 일일이 챙기고 냉장고와 장들을 정리한다. 극의 관건은 단지 제시가 죽음을 결심한 원인을 하나하나 밝혀내는 데 있지는 않아 보인다. 물론 그것은 질병이거나 이혼으로 인한 지독한 외로움이거나 마약을 하는 아들이거나 더 이상 나아질 것이 없는 자신의 상황 등에 기인한 절망감 때문이겠지만, 궁극적으로 극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삶의 상황에 처한 인간간의 관계에 대한 문제이다.

제시를 보호하려는 엄마 델마의 의도는 순수하였을 것이나 그 방식은 딸 제시가 고립되고 소외되는 부정적인 결과를 낳게 된다. 그 결과 제시는 자신을 완성되지 못한 사람으로 여기게 되는 자아 정체성의 문제를 안게 되었다. 제시의 자살은 그녀가 이런 문제들을 제대로 인식하고 조화롭게 해결할 능력을 가지지 못하였음을 보여 준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악조건들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죽는 것이 과연 불가피한 선택인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싶어진다. 그녀는 살 수도 있었으며, 살았어야 한다고 말한다?삶에 애착을 갖지 못한 제시의 힘겨운 절망감을 다 이해하지 못한 소치일까?

이 극의 특이한 점은 공연의 시공간과 극의 시공간이 동일하게 진행되는 형식미에 있다. 극 행동 또한 제시의 죽음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으므로 삼일치의 법칙에 충실하다. 그런 만큼 극의 진행은 밀도가 있고 극적 관심 또한 집중되어 있다. 무대에서 배우들의 행동을 자연스럽게 만드는 ‘ 스테이지 비즈니스’는 주로 살림을 마지막으로 정리 정돈하는 딸의 행동으로 이루어진다. 낡은 권총을 손질하고 사탕을 담거나 설탕을 채워 넣고 냉장고를 정리하는 등 떠나가는 사람의 모습이다. 반면 엄마는 딸에게 코코아를 만들 어주며 삶에 대한 애착을 불러 일으키고자 애쓴다. 극의 흐름도 초반의 차분한 분위기에서 점차 격정적인 감정상태로 고조된다. 그러나 배우들은 상황을 과장하지 않고 절제하는 연기력을 보여준다.

<잘 자요, 엄마> 공연 첫날, 인파로 비좁아진 소극장 로비에서 가족들이 출연하는 공연을 보러 온 오현경씨와 우연히 마주쳤다. 어린 시절 그가 나온 세계 일주 영화를 보고 먼 세계로 나가보리라는 꿈을 키웠던 필자는 초면에도 불구하고 목례를 했다. 원한만큼 많은 세상을 만나지는 못했으나 다른 방식으로 너른 세상을 보여주는 연극의 세계에서 가지는 만남들을 통해서 예전의 꿈은 성취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여름의 길목에서 세상과의 조화로운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하는 연극 한 편과의 만남은 어떠할지?

때 2004년 6월 4일-7월 25일 |곳 동숭아트센터 소극장 |작 마샤 노먼 |번역 성수정 |연출 심재찬 |출연 윤소정, 오지혜



송민숙 연극평론가 ryu1501@kornet.net


입력시간 : 2004-06-16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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