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격적 성애묘사 표현의 수위 논란한 여자와 게이의 나흘간의 탐닉, 그리고 뜻밖의 반전

[현장속으로] 영화 <지옥의 체험> 시사회
파격적 성애묘사 표현의 수위 논란
한 여자와 게이의 나흘간의 탐닉, 그리고 뜻밖의 반전


6월 15일 오후 뜨거운 햇살에 그대로 노출된 아스팔트와 콘크리트 건물들은 무더운 공기를 푹푹 뿜어내고 있었다. 을지로3가 전철역 8번 출구를 빠져 나와 영화 시사회장인 매직시네마까지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불과 몇 분 거리였지만, 금세 목덜미를 타고 줄줄 흘러내리는 땀방울은 가히 좋은 느낌을 전해주지는 않았다. 매직시네마 입구에 들어서자 몇몇 기자와 극장 관계자들만이 눈에 띄었다. 모두 무더위에 지친 표정이었다. 참석자가 적은 것은 무더위와 관련이 있는 것일까? 영화와 관련이 있는 것일까? 오늘 시사회 작품은 이미 전작 <로망스>로 세계적인 인지도를 확보하고 있는 까뜨린느 브레이야 감독의 <지옥의 체험>인데….

영화 상영은 예정시각보다 10분 정도 늦은 4시 40분에 시작됐다. 시사회에 참석한 숫자가 워낙 적었던 탓일까. 매직시네마는 200석 남짓한 아주 작은 상영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조금은 휑한 느낌을 전하며 <지옥의 체험>은 참석자들을 지옥(?)으로 몰고갔다.

까뜨린느 브레이야 감독의 <지옥의 체험>은 지난 5월 4일 영상물 등급 위원회(이하 영등위)로부터 ‘수입 추천 불가’ 판정을 받은 작품이다. 다시 말하면, 그 만큼 표현의 ‘수위’가 높은 작품이라는 뜻이다. 게이바에서 자신의 손목에 면도칼을 그은 한 여자와 그녀를 구해준 한 남자(그는 ‘게이’다)가 나흘 밤 동안 벌이는 성의 탐닉이 이 영화의 줄거리지만, 영화 중간 중간에 등장하는 장면과 대사들은 매우 ‘정치적’이다. 따라서 <지옥의 체험>은 단순하면서도 아주 복잡한 영화다.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남녀주인공의 성기를 적나라하게 노출시키고 있는데, 특히 남자주인공이 여자주인공의 국부에 삼지창의 막대기를 찔러 넣는 장면이나 생리혈이 흥건한 생리대를 유리잔 속의 물에 적셔 나눠 마시는 장면은 가히 충격적이다. (이 두 장면이 영등위로부터 수입 추천 불가 판정을 받게 한 ‘문제의 장면’이었다!)

물론 이 장면들도 다분히 정치적 함의를 보듬고 있다. 영화의 엔딩은 남자주인공이 여자주인공을 죽이는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이 갑작스런 반전 때문인지 다시 상영관에 불이 켜졌을 때 맞닥뜨리게 되는 시사회 참석자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해석의 괴로움’을 호소하고 있었다. 아니, 지옥에 갔다온 느낌이랄까?

상영직후 바로 영화시민연대 주관의 포럼이 열렸다. 포럼은 주로 <지옥의 체험>이 수입 추천 불가 판정을 받게 된 것에 관한 문제 제기로 진행되었다. “오로지 성애 장면을 묘사하기 위한 영화라면 포르노물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작품을 위해 전개되는 장면 묘사는 예술로 이해를 해줘야죠. 그런데 이걸 (영등위에서) 이해하지 못하면 계속 투쟁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제한상영 전용관 듀크시네마의 조영수 이사는 영등위의 납득하기 힘든 ‘불가’ 판정을 향해 이렇게 성토했다.

실제로 이 영화는 본국인 프랑스에서 ‘16세 이상 관람가’로 등급이 매겨진 작품이다. 프랑스와 한국의 정서 차이를 감안한다 해도 16세 이상과 수입 추천 불가 사이에는 너무나 큰 틈이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더구나 이 영화는 2003년에 개최된 서울 여성영화제 초청작이기도 하다. 어쨌거나 <지옥의 체험> 기자시사회가 열렸던 이날은 바로 이 영화가 영등위에 재심의를 신청한 날이기도 했다. “이번을 계기로 영등위가 신중하고 깨끗한 심의를 했으면 한다”는 영화시민연대 측의 바람은 과연 이루어질 수 있을까.

이휘현 객원기자


입력시간 : 2004-06-22 15:59


이휘현 객원기자 noshin@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