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쾌한 협곡의 기세꺽정의 포효가 들리는 듯

[주말이 즐겁다] 철원 한탄강
장쾌한 협곡의 기세
꺽정의 포효가 들리는 듯


강원도 철원 고을은 1100여 년 전 삼한 통일을 꿈꾸던 궁예가 나라를 세웠던 ‘쇠가 나는 벌판’이다. 궁예는 강원도 땅답지 않게 너른 평야지대가 펼쳐진 이 곳을 근거로 나라의 면모를 갖추었지만, 많은 신하를 죽이는 등 횡포를 일삼다가 왕건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살해된 비운의 인물. 궁예의 영욕을 지켜본 철원평야를 적시는 한탄강(漢灘江)은 경관 좋기로 유명한 강줄기다.


- 고석정은 한탄강 절경의 백미

북녘땅인 평강군에서 발원하여 철원~갈말~연천을 지나 임진강으로 합류하는 한탄강은 화산활동에 의해 생성된 현무암 평원을 굽이도는 거대한 협곡이다. 철원평야에서 20~30m 아래로 깊게 패어 들어간 계곡 양쪽으론 깎아지른 듯한 기암절벽이 병풍처럼 웅장하게 둘러섰다. 그래서 사람들은 한탄강을 ‘한국의 그랜드캐니언’이라 부르기도 한다.

명성에 어울리는 절경지가 많다. 그 중 강 가운데 홀로 우뚝 서있는 10m 높이의 거대한 기암인 고석암(孤石岩)이 으뜸이다. 지표면으로 솟구친 용암이 굳어 현무암이 될 때는 기둥모양의 주상절리가 발달하는데, 오랜 세월 동안 강물의 침식작용으로 절리를 따라 암반이 떨어져 나가면서 고석암 같은 기암이 만들어진 것이다. 역사적으론 신라 진평왕이 이 암봉 주변의 풍치를 즐기기 위해 정자를 짓고 고석정(孤石亭)이라 부른 후부터 이곳 지명으로 굳었다고 한다. 또 조선 명종 때는 의적으로 이름 날린 임꺽정이 고석정을 은신처로 삼아 활동하기도 했다. 당시 임꺽정은 관군이 나타나면 한탄강의 꺽지로 변해 살아남곤 했다는 전설도 전한다.

고석정 감상의 가장 일반적 코스는 입구에 있는 철의 삼각 전적관(033-455-3129)을 둘러본 뒤 돌계단을 밟고 강변으로 내려가는 것이다. 그러나 요즘엔 래프팅을 즐기며 고석정을 구경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많은 시인묵객들의 발길이 머물다 갔다는 유명한 고석정과 그랜드캐니언을 닮은 계곡을 래프팅을 하면서 감상하면 한탄강이 조금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한탄강은 우리나라 래프팅의 산실이다. 이곳에선 이미 1980년대 초반부터 래프팅이 이루어졌다. 인기 있는 래프팅 구간인 순담계곡은 한탄강 물줄기 중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기묘한 바위와 깎아 세운 듯한 벼랑이 협곡을 이루면서 물줄기를 에워쌌다. 또 벼랑에서 강으로 쏟아지는 수많은 폭포들에 더위는 까맣게 잊게 된다.

한탄강은 평소 1~2급을 유지하는 순탄한 물살로서 가족끼리도 유람하듯 즐길 수 있지만, 수량이 많을 때는 3급을 넘어서는 위력을 보이기도 한다. 참가비는 코스마다 다르지만 보통 3만원~5만원선. 한탄강 주변엔 순담레저(033-452-3034), 한탄강래프팅(033-452-2006) 등 수십 개의 업체가 성업중이다.

번지점프도 한탄강에서 즐길 수 있는 인기 레포츠. 갈말읍 상사리와 동송읍 장흥리를 잇는 태봉대교에 설치된 번지점프장(033-452-8294)의 높이는 52m나 된다. 고무보트가 지나가는 한탄강으로 뛰어내리는 맛이 색다르다. 개인 3만원, 단체 2만5000원.

고석정에서 2km쯤 상류에 있는 직탕폭포는 높이는 2~3m 쯤 되고 폭은 강 넓이의 80m에 이른다. 특이하게 일(一)자처럼 생긴 암벽에서 쏟아지는 폭포로 주목을 끈다. 이 직탕폭포 근처는 최적의 여름 피서지로 꼽힌다. 이곳에서 잡은 민물고기로 끓이는 매운탕 맛은 유명하다.


- 겸재 정선도 들렀던 삼부연 폭포

한탄강 본류에 속하진 않지만 더운 날에 철원에 들러 유명한 삼부연폭포를 안 볼 수 없다. 갈말읍 동남쪽에 솟은 명성산(923m)은 그 옛날 궁예가 왕건에게 쫓겨와 크게 울었다는 ‘울음산’이다. 한탄강의 지류를 이루는 그 협곡엔 조선시대에 금강산 가던 여행객들이 자주 들렀던 명승지로 이름 높은 삼부연 폭포가 걸려있다. 나라 땅 경치 좋은 곳을 찾아다니며 그림을 그렸던 진경산수의 선구자인 겸재 정선도 금강산 가던 길에 이 삼부연폭포를 화폭에 담기도 했다.

폭포수가 떨어지는 세 곳이 모두 가마솥처럼 움푹 패였기 때문에 삼부연, 즉 ‘세 개의 가마솥 같은 연못’이란 이름을 얻었다. 그 폭포수엔 패망자 궁예의 한 서린 피눈물도 섞여있고, 임꺽정이 무예를 닦으며 내지르던 우렁찬 기합소리도 울려 퍼진다. 폭포 근처의 부연사는 내세울 만한 거창한 문화재는 없지만 절집 석간수 한 모금 시원하게 들이키고 호방한 기세로 쏟아지는 폭포수를 바라보는 맛이 좋다.

■ 숙식
고석정 앞에는 승일회관(033-455-8787), 꺽정가든(033-455-3128)등 민물고기 매운탕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이 여럿 있다. 대부분 식당은 민박집도 겸한다. 또 직탕폭포 바로 옆에도 민물고기매운탕을 전문으로 내놓는 집이 많다. 강변에서 폭포를 구경하며 맛보는 매운탕이 별미다. 역시 민박을 치고 있다. 갈말읍에 한양파크(033-452-50670) 등의 모텔이 여럿 있다. 삼부연폭포 주변은 상수원보호지역으로 지정되어 있기 때문에 숙식할 만한 시설이 전혀 없다.

■ 교통
서울→의정부→43번 국도→포천→갈말(신철원)→5km→고석정→463번 지방도→4km→직탕폭포. 삼부연폭포를 보려면 갈말 읍내에서 포천 이동면 방향으로 가는 지방도를 타고 2~3km쯤 달리면 된다.

민병준 여행작가


입력시간 : 2004-06-22 16:04


민병준 여행작가 sanmin@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