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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 타운] 인어공주
어머니, 아버지의 젊은 날은 어땠을까
엄마를 미워하는 딸의 시간여행, 그곳에서 좁혀지는 가족간 간극


좋은 영화는 영화를 본 사람의 인생을 한번쯤 돌아보게 만든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원더풀 라이프’를 보면서 자신의 인생 최고의 순간을 떠올리기 위해 살아온 기억들을 리와인드 시켜서 되돌아 보지 않은 사람은 드물 것이다. 새 영화 ‘인어공주’도 그렇다. 이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어머니, 아버지를 떠올리며 그들의 젊은 날의 가슴 뛰는 사랑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게 될 것이다.





이 영화의 출발지점은 그래서 따뜻하다. 최근의 영화들이 모두 사람들간의 갈등과 싸움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이때, 여유롭게 시간의 여행을 떠나 우리의 가족과 인생에 대해 한번 생각해보자는 영화의 순박한 마음이 일단 와 닿는다.

현실의 팍팍함에 넌더리를 내는 주인공 전도연이 사라진 아버지를 찾아 온 고향 섬마을에서 과거의 어머니와 만나는 영화의 줄거리 역시 소박하다. 영화 전체 장면의 90% 이상에 등장하며 1인 2역의 열연을 펼치는 전도연은 ‘내 마음의 풍금’에서도 그랬지만 이런 꾸밈없는 해맑은 순박함을 연기를 할 때 가장 돋보인다.

그의 열연은 그림처럼 아름다운 섬의 모습과, 그 속에 내내 비춰진 따스한 여름 햇살과, 푸르른 바닷속에서 춤을 추듯 헤엄치며 삶을 건져 올리는 해녀들의 아름다운 자맥질과, 글을 읽지 못하는 섬처녀와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순진한 우체부의 러브스토리로 둘러싸여 빛을 발한다.

이 과거로의 여행을 통해 영화는 ‘시간이라는 것이 젊은 날의 가슴떨림과 희망들을 냉소와 악다구니만 남은 남루한 현실로 만들어 버렸지만 그 한때의 꿈과 같았던 그 시절의 기억들이 살아가는 힘이 된다’는 메시지를 조용히 전해준다.

이 영화의 미덕은 엄마를 그토록 미워하던 주인공이 시간 여행을 겪고 난 뒤 엄마를 혹은 엄마의 현실을 완벽히 이해했다는 식의 결론을 욕심내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깊은 바다 속에 잠겨들던 엄마는 이제 아무리 애써도 공중 목욕탕의 물 깊이 밖에 가라앉을 수 없고, 바닷물 위로 솟구치며 내뿜던 싱그러운 호흡은 캭캭거리며 거친 가래침을 뱉는 버릇으로 변해버렸다. 결국은 쓸쓸하게 세상을 떠난 아버지와 진정 엄마는 화해를 한 것 같지는 않아 보이고 주인공 딸 역시 그 미운 엄마와 웃으며 이야기 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다.

영화는 그 대신 엄마의 옛날 사진을 보면서 주인공이 엄마에게 전화를 거는 마지막 장면에서처럼, 딸과 엄마가 같이 나눌 수 있는 기억이 생겼다는 것만으로 화해의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는 정도의 소박한 결론을 내놓는다. 인생의 소중한 기억들과 세세한 감정들을 소중히 여기는 영화를 보면, 영화를 만든 사람들의 착한 진심이 느껴진다.

이 순하디 순한 영화는 그렇지만 극적 긴장이란 부분에서도 너무 소박하고 순진하기만 하다는 아쉬움을 남긴다. 어차피 영화가 팬터지라는 대중영화의 틀을 빌고 있고 심도 깊은 메시지로만 승부하는 영화가 아니라면 좀 더 대중영화 본령의 극적인 긴장감에 대해 고민해 보았으면 훨씬 더 흡입력 있는 영화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 말이다.

이 영화의 이야기는 현실에서 대립하는 딸과 어머니가 팬터지를 통해 화해할 수 있냐라는 주요 갈등으로 이끌어 지지만 ‘일상 속에서 차곡차곡 쌓여온 지겨움’이라는 것 외에 영화 속에서 주인공이 “차라리 고아였으면 좋겠어” 라고 할 만한 드라마틱한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어머니가 죽음을 앞둔 아버지를 돌아보기조차 하지 않을 정도로 미워하는 이유 역시 “너무 착하기만 해서 돈을 다 날리고 고생만 시켰다”라는 영화속 이유로만은 좀 약해 보인다.

물론 관객들은 자신의 일상 경험을 통해 가족간의 갈등들을 미루어 짐작할 수는 있지만 또 이들이 어떤 식으로든 화해하는 방향으로 결론이 날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렇다면 그 갈등?해소까지의 경로내에서 어떤 리듬감 있는 긴장감을 기대하는 것이 당연하다. 거기에 비하면 영화내에서 설치해놓은 갈등만으로 주인공들에게 완전히 감정이입을 하면서 이야기의 전개에 흥미를 가지기에는 모자라다 싶은 면이 있다. 특히 고두심이 맡은 어머니의 현실의 억척스런 모습과 전도연이 연기한 팬터지 속의 어머니의 삶에 대한 긍정적인 모습은 비교적 잘 연결된 반면 팬터지 부분 아버지역을 맡은 박해일의 캐릭터의 비중에 비하면 현실에서의 아버지의 캐릭터는 꼼꼼하게 그려져 있지 않아 ‘착하다’는 것 외에 아버지의 과거와 현실의 연결고리가 느슨해 보인다.

데뷔작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에 이어 각박한 세상에 치여 주눅들어 사는 소시민들의 인생에 애정을 보내는 감독(박흥식)의 시선에는 분명 남들에게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진정성이 느껴진다. 작은 감정과 세심한 일상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그의 정서가 그저 ‘심심하다’거나 ‘잔잔하다’라는 것 이상의 감동으로 다가오는 데는 자신의 진심을 그대로 관객에게 전달해 줄 수 있는 이야기의 장치에 대한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 시네마 단신
  


- 부천 국제영화제 개막

제8회 부천 국제판타스틱 영화제(PiFan2004)가 15~24일 경기도 부천 시민회관 대강당, 부천시청 대강당 , 복사골 문화센터 아트홀 등에서 열린다. 총 32개국 261편(단편 178편 포함)의 영화가 상영되는 이번 영화제에서는 1990년대 공포영화의 거장으로 통하는 스튜어트 고든의 신작 ‘개미들의 왕’이 개막작으로, 안병기 감독의 ‘분신사바’가 폐막작으로 각각 상영된다. 토비 후퍼 감독의 ‘연장통 살인’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이노센스’등의 화제작들과 함께 네크로필리아(시체 애호)영화의 거장으로 유명한 ‘요르그 부트게라이트 특별전’, 일본 애니메이션의 역사를 되짚어보는 ‘데코보에서 모모타로까지’등의 특별전등이 열린다. www.pifan.or.kr

- 동아시아 멜로 영화전 열려

한국 영상자료원은 5일부터 10일까지 서울아트시네마와 영상자료원 시사실에서 ‘1950~60년대 동아시아 멜로 영화전’을 연다. 한국, 홍콩 일본 3개국 14편의 멜로 영화들이 소개되는 이 행사에서는 한형모 감독의 <자유부인>, 신상옥 감독의 < 지옥화>, 이만희 감독의 <귀로>등 당시 한국 멜로 영화와 함께 <스자키 파라다이스><산의 소리>등 일본영화 3편과 홍콩영화 6편이 소개된다. (02)521-3147, (02)720-9782





이윤정 영화 칼럼니스트 filmpool@naver.com


입력시간 : 2004-07-07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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