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화끈하게, 더 자극적으로케이블·위성TV채널, 불륜·섹스 등 은밀한 일상사 여과없이 방송

[배국남의 방송가] 리얼리티 쇼 프로그램 홍수
더 화끈하게, 더 자극적으로
케이블·위성TV채널, 불륜·섹스 등 은밀한 일상사 여과없이 방송


남편이 바람을 피우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취재진에게 의뢰를 한다. 외도의 증거가 확실하면 아내를 남편의 외도 상대와 대면하게 한다.’(현장고발, 치터스) ‘여자 팬티와 브래지어 차림의 남자가 나타난다. 그리고 외친다. “나는 변태인 것 같아!”’(제리 스프링거쇼), ‘혼자된 부자 아버지를 네 자녀가 결혼시키기 위해 수많은 여성 지원자들을 상대로 점검을 한다. 아이들과 아버지에게 온갖 애교를 부리다 탈락한 여자들은 냉정히 인사도 하지 않은 채 사라지고, 아이들은 대상자들에게 결혼 전 재산포기각서를 쓸 수 있느냐는 노골적인 질문을 해댄다.’ (서바이벌! 아빠의 천생연분)

한결같이 사람의 감정과 정서를 극단으로 몰고 가는 지극히 선정적인 내용이며 인간의 탐욕성을 극단화하는 상업성 마저 서슴없이 드러내 보이는 리얼리티 쇼 프로그램 내용들이다. 그리고 날로 증폭되는 폭력성마저 프로그램 전반에 깔려 있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들이 우리의 안방에서 아무런 여과 없이 그대로 방송되고 있다.


- 선정적 내용 일색

최근 케이블TV와 위성TV 채널이 급증하며 시청률을 높이기 위한 경쟁이 치열해지고 케이블, 위성 채널들의 제작환경이 열악해 이들 방송사들이 비교적 값싼 미국과 유럽의 리얼리티 쇼 프로그램을 앞 다퉈 수입해 방송하고 있다. 또한 섹스와 성형 등에 대한 것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일반인참여 국내 리얼리티 쇼 프로그램도 제작해 내보내고 있다. 그야말로 케이블과 위성TV 채널들의 리얼리티 쇼 프로그램 방송 홍수시대라고 할 수 있다.

국내에서 방송되는 국내외 제작 리얼리티 쇼 프로그램으로는 동아TV의 ‘배첼러’ ‘리얼 섹스 인 더 시티’ ‘러브 서바이벌’ ‘도전 신데렐라’ ‘다이어트 서바이벌’, 온스타일의 ‘서바이벌! 아빠의 천생연분’ ‘웨딩게임! 최악의 신랑’ ‘리얼 러브! 허락해주세요’, XTM의 ‘최악의 시나리오’ ‘제리 스프링거쇼’, 코미디TV의 ‘러브 크루즈’ ‘리얼 스캔들 러브 캠프, 캐치온의 ‘위 어 아이’, Q채널의 ‘현장고발 치터스’, OCN의 ‘백만장자와 결혼하기2’ , m.net의 ‘문희준 99.8’ 등 수없이 많다. 이들 프로그램은 현재도 확대일로다.

이들 프로그램들은 일반인들이 참여해 사랑이나 섹스 등 일상사를 가감없이 그야말로 ‘날 것’을 보여주는 특성이 있다. 이들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관통하는 공통점은 섹스, 외도, 결혼, 성형 등 인간의 강한 본능과 욕구에 연결된 문제들에 관련된 사람들의 행태를 그대로 노출시킨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현장고발 치터스’의 경우 르포형식으로 배우자나 애인의 의뢰를 받은 방송 제작진이 상대방을 밀착 취재해 외도의 증거가 확보되면 외도 당사자와 의뢰자를 대면시킨다. 카메라는 이 과정을 놓치지 않고 그대로 안방 시청자에게 전달한다. 상업성의 천국이라는 미국에서마저 저질과 선정성, 인종차별 시비에 시달리는 ‘제리 스프링거쇼’는 ‘나 사실 남자야’, ‘네 애인이 내거야’ ‘여보, 나 바람 피웠어’등 제목에서 보듯 변태문제에서부터 외도에 이르기까지 섹스와 관련된 내용을 집중적으로 내보낸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출연자가 나와 싸우는 장면까지 생생하게 전달한다.


- 국내 채널로 성형과정 방송

동아TV가 자체 제작해 방송하다 여성단체와 시청자단체에서 성의 상품화를 조장한다는 비난을 받으며 방송 중단 압력에 시달린 ‘도전! 신데렐라’는 지원 대상자 1,240명중 3명의 여성을 뽑아 발에서 얼굴까지 성형하는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형식의 리얼리티 쇼 프로그램이다.

리얼리티 쇼 프로그램들은 이처럼 카메라를 은밀하고 은폐된 인간의 욕구와 관련된 것들에 대해 대담하고 노골적으로 들이대고 있다.

리얼리티 쇼 프로그램이 홍수를 이루는 것은 방송?내외적인 원인이 존재한다. 우선 돈이 많이 드는 자체 제작보다 값이 훨씬 싼 선정성과 자극성으로 무장한 외국 리얼리티쇼 프로그램을 방송해 시청률을 쉽게 올릴 수 있다는 방송사의 전략이 리얼리티 쇼 프로그램 범람을 부채질하는 가장 큰 원인이다.

또한 시청자들은 이웃 특히 섹스나 사랑, 결혼 등 은밀한 부분의 문제에 대해 엿보기 욕구 즉 관음증을 갖고 있으며 이러한 시청자의 욕구에 최대한 부응한 것이 리얼리티 쇼 프로그램이어서 이들 방송에 눈길을 주게 된다. 이밖에 방마다 TV를 놓는 텔레비전 수용 환경의 변화와 각종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져 나오는 엽기와 변태에 가까운 내용들을 자주 접하면서 선정성과 폭력성이 가미된 리얼리티 쇼 프로그램을 아무런 내적 점검 없이 자연스럽게 수용할 수 있게 된 것도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증가의 한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리고 욕망을 자제하고 욕구를 숨기는 것이 미덕이었던 시대에서 욕망을 분출하고 드러내는 것이 일반화된 의식과 사회적 상황의 전환 역시 리얼리티 쇼 프로그램의 범람을 부추기고 있다. 무엇보다 사회와 사람들이 합리와 세련, 진지함과 엄숙주의로 무장하면 할수록 그 반동으로 가공되지 않은 날 것, 탈권위적인 것에 대한 욕구가 리얼리티 쇼의 엿보기 방식을 성행시킨다. 하지만 안방 브라운관에 넘쳐나는 리얼리티 쇼 프로그램의 문제점은 프로그램 자체가 안고 있는 선정성과 폭력성, 그리고 자극성이 시청자들에게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이다. 또 사실성이 두드러진 리얼리티와 연출이 가미된 쇼를 혼합해 만든 리얼리티 쇼는 사람들에게 현실을 가장한 비현실을 사실화하고 일반화시키는 역기능을 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픽션인 드라마 경우에는 시청자들이 현실과 픽션을 구분해서 보려는 태도를 견지하지만 리얼리티 쇼의 경우는 사실 그대로 믿는 경향이 강하다.


- 강도 더한 프로그램 확대 재생산

무엇보다 선정성과 폭력성, 자극성으로 무장한 리얼리티 쇼의 대부분은 이전 프로그램보다 강도가 더한 프로그램을 확대 재생산하는 것도 적지 않은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시청자들은 이전 프로그램보다 선정성이나 자극성 면에서 강도가 강해야만 새로운 리얼리티쇼 프로그램을 시청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3~4일 KBS와 한국프로듀서연합회, 서강대학교 영상대학원이 공동 주최한 ‘Best of Input Korea 2003'은 새로운 형식과 내용의 세계 각국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한자리에 모아놓은 자리였다. 여기서는 영국 TV방송의 ’Wife Swap(마누라 바꾸기)'이라는 리얼리티 쇼 가 출품돼 눈길을 끌었다. 매우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이 프로그램은 두 부부가 일정 기간 서로 아내를 바꿔 생활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었는데 이 포맷은 미국 ABC-TV에 수입돼 9월 29일부터 미국 전역에 방송될 예정이다. 이처럼 리얼리티 쇼 프로그램은 한층 강도가 높은 선정성과 자극성을 무장한 새로운 프로그램으로 시청자와 만나고 있다. 과연 리얼리티 쇼 프로그램의 끝은 어디일까.

배국남 대중문화평론가


입력시간 : 2004-07-20 16:21


배국남 대중문화평론가 knbae24@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