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 속에 담긴 애잔함을 보라가족애·이별·눈물과 웃음 그린 지적인 연극

[문화 비평] 극단 사다리 <휴먼 코메디>
웃음 속에 담긴 애잔함을 보라
가족애·이별·눈물과 웃음 그린 지적인 연극


‘사다리움직임연구소’로 잘 알려진 극단 ‘사다리’의 <휴먼코메디>가 1998년 초연 이래 지난해 공연에 이어 대학로에서 다시 공연되고 있다. 제목이 말하듯 <휴먼코메디>는 인간적인 웃음을 추구한다. 말하자면 희극의 하부 장르인 파스(소극)에서처럼 어리석은 사람이 속아 넘어가거나 신체적 고난을 당하는 모습을 보고 웃는 그런 종류의 웃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인간적인 희극 속에는 우리의 삶이 그러하듯 웃음과 더불어 애잔함과 눈물이 있다. 가족애, 이별의 아픔, 눈물 속의 웃음 등을 다루는 이 공연을 보면 러시아 마임 연기자 폴루닌의 <스노우 쇼>에서 떠나간 연인이 남긴 편지를 읽으며 슬픔에 잠기는 광대나 러시아 마임극단 <리체데이>의 귀여운 광대들이 연상된다. 그러나 광대의 존재 그 자체와 아기자기한 스펙터클로 웃음을 자아내던 이들 러시아 극단과는 달리 프랑스 자크 르코크 국제연극마임학교 출신 연출가 임도완은 <휴먼코메디>에서 배우의 신체적 움직임을 웃음을 위해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 세 가지 에피소드, 세 가지 웃음

<휴먼코메디>는 “가족, 냉면, 추적”이라는 세 가지 에피소드로 구성된다. 각 에피소드는 서로 다른 종류의 웃음을 선사한다. 에피소드 사이에 사진사 역할의 해설자가 나와서 등장인물을 소개하거나 이벤트를 주관하는 등 극의 진행을 돕는다. 그는 극 시작에서 이야기를 도입하고, 막간에 사진을 찍어주며 관객의 적극적인 동참을 유도한다. 의도적으로 어눌한 그의 태도와 말투는 관객의 웃음을 야기한다.

‘가족’에서는 가난한 가족의 생계를 위해 이미 아버지와 네 형제가 목숨을 잃은 바다로 아들이 다시 선원이 되어 먼 항해 길을 떠나간다. 만삭인 아내를 두고 떠나는 그와 이별의 아쉬움을 삭이는 가족간의 사랑이 다루어진다. 시간이 되어 떠나려는 이를 붙잡고 조금이라도 더 함께 시간을 보내기를 원하는 가족과의 밀고 당기는 심리전이 벌어진다. 이런 심리전의 바탕에 가족애라는 한 가지 눈물겨운 정서가 깔려있음을 읽을 수 있다.

배우들이 보여주는 다양한 움직임은 민첩함과 느릿함으로 대조되며 웃음을 야기한다. 이는 다른 배우들의 움직임으로 연결되고 확대되어서 궁극적으로 등장 인물들의 심리를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도구가 된다. 이런 앙상블 연기를 통해서 단순한 하나의 동작은 그 의미가 구체화되고 증폭된다. 크고 작은 감자를 두고 서로에게 큰 감자를 권하며 밀고 당기는 장면은 가족간의 사랑을 신체언어로 표현하는 좋은 예이다. 동시에 감자를 주고받는 움직임 그 자체의 스피드가 가속되며 극의 희극적 흐름을 만들어낸다.

애잔함과 경쾌함이 교차되는 라이브 음악, 밝고 어두운 조명의 대조가 극의 감성적 분위기를 형성한다. 항해를 떠난 아들이 맞이하는 죽음조차도 해설자의 설명을 통해 눈물 속에서 웃음을 야기한다. 침몰하는 배에서 탈출하다 창문에 허리가 끼어서, 그러나 선물로 받은 아버지의 유품인 고무장갑을 낀 손을 가슴에 얹은 채, 웃음을 띠고 죽음을 맞이한 아들의 비보는 관객에게 웃음과 애잔함을 동시에 선사한다. 해설자는 그가 다시 살아나서 극중에서 다른 역할로 나올 것임을 예고하며 관객의 애상을 걷어낸다.

두 번째 에피소드인 ‘냉면’에서는 의도적으로 앙상블이 파기된 움직임이 야기하는 웃음이 다루어진다. 단체가 만들어내는 일련의 일사분란 한 움직임에서 끊임없이 조금씩 어긋나는 한 사람의 동작은 관객으로 하여금 그가 겪는 내면의 당혹감과 어색함을 읽는 즐거움을 준다. 단체의 움직임에서 꼭 한 치씩 벗어나며 소외되던 그는 그러나 대부분의 희극의 결말이 그렇듯이 마지막 장면에 와서는 단체와 다시 앙상블을 이루며 화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배우들이 부르는 노래 ‘냉면’은 희극적 움직임을 동반하는 청각적 요소가 된다. 신체언어만이 아니라 음악이나 음향도 다양한 웃음의 원천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도 희극 영역의 확장을 위해 탐구될 필요가 있겠다.

세 번째 에피소드 ‘추적’에서는 서로가 서로를 뒤쫓는 배우들의 신속하고도 다양한 변신이 관건이다. 열린 부분과 닫힌 부분으로 구성된 무대를 통과하면서 한 사람이 전혀 다른 사람으로 ?탭求?모습은 감탄스럽다. 단지 의상이나 외모만이 아니라 자세와 목소리, 태도까지 확실하게 변하는 배우들에게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극이 종료되고 이들이 변신하는 모습을 공개하는 장면은 단연코 가장 관객이 즐길만한 이 공연의 하이라이트이다.

형사반장은 마치 처음 무대에 선 아마추어 배우처럼 도대체 두 손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를 몰라 하며 어색한 포즈를 취한다. 그의 모습은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능숙한 연기자들의 모습과 대조되며 미소를 짓게 한다. 아무리 제 자리에 놓아도 끊임없이 다시 내려지는 전화 수화기를 보고 분통을 터뜨리는 할아버지는 반복되는 상황이 다시 반복될 것임을 예상하고 그의 심리를 이해하는 관객에게 웃음의 원천이 된다.


- 아이디어와 신체연기에 승부를 거는 지적인 희극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아이디어와 신체연기로 승부하는 극단 사다리의 공연 <휴먼코메디>는 그러나 연극이라는 장르가 분명히 밀도와 엄청난 집중력을 요구하는 어려운 공연 예술임을 입증한다. 여타 연극도 그렇지만 특히 희극에서 관객에게 웃음이라는 극 효과를 확실하게 얻기 위해서는 매 공연마다 성공적인 앙상블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연기 밀도의 면에서는 여전하지만 지난 해 학전 블루에서 공연되던 때와는 극장 환경도 바뀌었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대사도 약간의 첨삭이 있었다.

움직임이 중시되는 희극이니 만치 관객이 전체를 내려다볼 수 있는 무대가 더 유리하다. 예전보다 에피소드 연결 면에서 더 신경을 쓴 흔적이 보인다. 웃음이란 본능적이거나 감정적이라기보다는 상황과 그 맥락에 대한 이해를 요구하는 매우 지적인 작업이다. 나아가서 단순히 우스꽝스러운 장면에서 야기되는 웃음이 아니라 치밀하게 계산된 움직임을 통한 웃음이라는 점에서 <휴먼코메디>는 희극의 지평을 넓힌 공연이라고 할 수 있겠다.

<보이첵>에서 신체언어를 통해 대사를 세련된 시각적 움직임의 이미지로 전환시키고, 특히 ‘의자’라는 소품의 놀라운 활용을 보여준 바 있는 극단 사다리가 신체언어의 영역에서 더 많은 가능성을 탐구하고 그를 통해 새로운 연극성을 발굴하기를 기대한다. 온 가족이 즐길 수 있는 공연 <휴먼코메디>의 공연장인 창조 콘서트홀은 지하철 4호선 혜화역 1번 출구에 위치한다.

때 2004년 6월 9일~8월 29일 |곳 창조 콘서트홀 |작 공동구성 |연출 임도완 |출연 백원길, 권재원, 조재윤, 이은주, 이지선, 방현숙 |문의 극단 사다리 02-382-5477

송민숙 연극평론가


입력시간 : 2004-07-20 17:27


송민숙 연극평론가 ryu1501@kornet.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