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그러운 땅 위의 별들

[이유미의 우리풀 우리나무] 기린초
싱그러운 땅 위의 별들

오랜만에 바위틈에 자라는 기린초를 만났다. 얼마나 싱그럽던지. 너무 튼튼하고, 잘 자라고 특별한 조건을 가리지 않으니, 귀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들의 마음이 도리어 야속하게 느껴질 만큼 아름답다. 사람도 그러하듯 식물에게도 건강미라는 것이 느껴질 때가 있다. 개인적으로는 사람이나 풀이나, 어찌 살아갈까 염려되는 가녀리고 까다로운 것보다는 싱그럽고 생동감 넘치는 건강한 아름다움이 훨씬 좋다. 기린초가 바로 그런 풀이다.

왜 기린초가 되었을까? 언뜻 생각하면 목이 긴 기린이 떠오른다. 노란색 꽃이 피니 기린의 색깔과 비슷해서일까? 기린이 초원을 뛰놀듯 강한 햇살이 뜨거운 곳에서 강건하게 자라니 그 때문일까? 아무래도 그 사연을 동물 기린에서 찾아내는 일은 무리가 있을 듯 싶다. 그래서 더욱 평범하지 않은 이름의 유래가 궁금하다.

기린초는 돌나물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 풀이다. 전국 산지의 주로 양지바른 바위틈에서 주로 자라는데, 한 뼘 훨씬 높게 크는 줄기가 여러 개 모여 포기를 만들고, 이들이 다시 모여 작은 무리를 만들어 피어나니 돌 틈에서 만난 기린초의 무리들은 자연 눈길을 끌게 된다.

어긋나서 달리는 주걱 모양의 잎새는 두텁게 살이 찐, 다육질이며 잎 가장자리에는 무딘 톱니가 동글동글 나 있는데 잎의 색깔이 짙푸르지 않아 연한 듯 느껴진다. 여름에 피어나는 노란색 꽃은 하나씩 보면 아주 작고, 더 깊숙이 눈여겨 보면, 뾰족한 5장의 꽃잎이 모여 이루어진 꽃송이들이 줄기 끝에 모여 달려 있어 그 모습이 밤하늘의 반짝이는 무수한 별들을 바라보는 듯 아름답다. 열매는 골돌과인데 5개씩 모여 별모양으로 달려 있다.

요즈음 기린초가 가장 많이 관심을 모으고 있는 이유는 관상적인 가치 때문이다. 우리 꽃을 가지고 초물분재(草物盆栽)를 만드는 이들의 작품 가운데는 꼭 이 기린초가 끼어 있는 것만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둥근 토기 뚜껑 같은 곳에 한아름 포기를 만들어 꽃을 피운 모습은 참으로 탐스러워 보는 이들의 마음을 환하게 만들어 준다. 물론 화단에 심어도 좋은데, 특히 돌이 있는 정원에 바위틈과 같은 곳에 심어 두면 생태적으로나 조경적으로나 좋은 효과를 볼 수 있다.

기린초는 이러한 관상적인 가치 이외에도 비채(費菜), 백삼칠(白三七), 양심초(養心草) 등의 생약 명으로 쓰는데 지혈, 이뇨, 진정 등에 효능이 있어 토혈, 코피 등 피가 나거나 가슴이 두근거리거나 울렁거리는 증상 등에 처방하며, 생풀은 타박상 종기 등에 짓찧어 붙이기도 한다. 봄에 연한 잎과 줄기는 가볍게 데쳐서 나물로 해먹어도 되는데 맛이 담백하다고 한다.

만일 우리 꽃을 처음 기르는 초보자에게 또는 아주 바쁘거나 게을러서 자주 물도 가꾸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야생화를 들라면 당연히 꼽히는 식물 가운데 기린초가 있다. 기린초는 사막에서 자라는 선인장처럼 몸 속에 많은 물을 저장하고서 아무리 거칠고 건조한 조건에서도 잘 견디며 꽃을 피우는 우리 꽃이다. 그래서 좋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입력시간 : 2004-07-21 10:31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99@fo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