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적 언어로 그린 신화와 전설

[Books] 아더왕 이야기
현대적 언어로 그린 신화와 전설

그리스 로마 신화의 제신(諸神)과 영웅들이 있었다. 해리 포터가 탄생했고, 반지의 제왕이 나타났다. 그리고 이제 아더왕과 원탁의 기사들이 돌아온다.

왜 그들인가. 신화의 주인공들이 이토록 화려하게 부활해 귀환하고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원시의 숲에 부는 바람이 현대인의 잘 빗겨진 머리카락을 헝클어뜨린다. 달밤이면 우리 안에 숨겨져 있던 은빛 이리가 되돌아와 우리를 머나먼 황야로 데리고 간다. 우리는 그곳에서 수천 년 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던 어머니의 언어를 되찾아낸다. 우리는 그 노랫소리를 알아듣는다. 아니다. 우리가 알아듣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영혼이 알아듣는다.”

‘아더왕 이야기’를 번역한 시인 김정란 상지대 교수는 그들의 부활을 이렇게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신화에의 매혹, 신화를 구하는 심리는 잘 먹고 잘 살기, 즉물적인 감각의 쾌락 추구에 식상해 ‘근대인으로 사는 데 지쳐버린 인류’가 ‘근대의 발전 신화가 오랫동안 아스팔트 밑에 파묻어 두었던 근원의 충일함을 되찾으려는 욕망’과 관련이 있다.

프랑스 작가 장 마르칼의 ‘아더왕 이야기’는 켈트 신화에서 비롯된 아더왕 전설군(群)에 속한 모든 신화와 전설을 아우른 결정판이라 할 수 있을 만한 책이다. 장 마르칼은 고전문학ㆍ철학 교수 직을 접고 40여 년간 켈트 신화를 연구해 수십 종의 책을 써낸 이 방면의 전문가. 신화와 전설을 노래한다는 점에서 그는 현대의 음유시인이다. ‘아더왕 이야기’는 마르칼이 중세의 필사본부터 아더에 대한 이야기를 종합해 현대적 소설처럼 쓴 것이다.

아더는 기원 후 500년 경에 실존했던 인물이다. 라틴어로 기록된 자료에 따르면 그는 통용되는 의미의 왕,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는 통치자가 아니라 한 사람의 둑스 벨로룸(dux bellorum), 즉 ‘전쟁 우두머리’ 였다. 로마제국 말기에 현재의 영국인 브리튼 섬을 침략하는 색슨 족을 물리치기 위해 고용된 장수였다. 침입자들과 싸워 커다란 승리를 거둔 그에 대한 전승은 이후 수많은 이야기꾼들에 의해 구전이 덧붙여지고, 마법사 멀린 등 새로운 주인공들을 탄생시키고, 마침내 12세기 이후에는 유럽 전역에 공통적인 신화로 자리잡게 된다.

바위에 꽂힌 검 엑스칼리버를 뽑아내 신이 선택한 왕으로 인정받는 아더, 악마의 책략으로 태어난 미치광이 마법사 멀린(역시 6세기말의 실존인물이다), 호수의 기사 랜슬롯과 원탁의 기사들의 이야기가 탄생한 것이다. 마르칼은 ‘삼국지’나 ‘영웅문’처럼 흥미진진하게 그들의 이야기를 그려낸다. “가장 본질적이고 가장 경이로운 유럽 전통을 구성하고 있는 것을 현대의 언어로 다시 말하는 것, 그것이 ‘아더왕 이야기’의 목적이다”라고 그는 말한다.

그렇다면 아더 이야기는 다른 신화나 판타지처럼 또 하나의 영웅담에 불과할까. 그렇지 않다. 아더의 신화와 전설은 다른 신화들과의 결정적인 차이점들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켈트 신화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켈트 신화는 유럽에서도 기본적으로 비주류 신화, ‘야만인의 신화’로 인식돼 왔다. 합리성과 현실성이 두드러지는, 신들마저도 인간적 감정의 극치를 보이는 그리스 로마 신화와 달리 켈트 신화는 그야말로 야만적이고 주술적이며 원시적인 색채가 농후하다. 두번째 특징은 두드러지는 여성성이다. 주인공 아더는 엑스칼리버를 소유했지만 원탁의 소유자인 여신 귀네비어와 결혼함으로써 비로소 왕이 된다. 또한 켈트 신화의 여주인공들은 바람 피우는 남신들을 질투하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여신들과 달리, 프리섹스에 가까운 자유로운 연애 행각을 벌이는 여신들이다. 오랜 시간 잠들어있던 인간의 원초성, 여성성의 부활이다. 신화의 귀환은 그래서 근대의 기획을 깨려는 탈근대의 이념과도 맞물린다.

성배를 찾는 아더의 모험 이야기는 국내에서 이미 베스트셀러에 올라있는 미국 작가 로버트 랭던의 소설 ‘다빈치 코드’가 제기한 성배에 대한 흥미로운 가설과 비교해 읽을 수 있어 재미를 더한다. 또한 아더(Arthur)의 어원이 곰을 의미하는 켈트어(웨일즈어 arth, 브리튼어 arz)에서 비롯됐다는 것을 알게 되면, 우리의 웅녀(熊女) 이야기가 떠으8庸?인류?상징체계의 유사성에 다시 한번 놀라게도 된다. 이번에 2권까지 나온 ‘아더왕 이야기’는 올해 안에 8권으로 완간될 예정이다.

하종오 기자


입력시간 : 2004-07-22 11:45


하종오 기자 joh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