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고딩들의 환상서핑인터넷 세대의 로맨틱 코미디, 가슴 저미는 사랑의 아픔도

[시네마 타운] 늑대의 유혹
발칙한 고딩들의 환상서핑
인터넷 세대의 로맨틱 코미디, 가슴 저미는 사랑의 아픔도


엽기적인 그녀’로 시작한 인터넷 문학의 파급력은 올해 그 분야의 대스타인 귀여니의 소설 두 개 ‘늑대의 유혹’과 ‘그놈은 멋있었다’가 나란히 영화로 동시 개봉되면서 절정에 오른 모습이다. ‘엽기적인 그녀’가 공격적이면서도 의리있는 적극적인 여성 주인공을 앞세웠다는 파격으로 눈길을 끌었지만 이어 등장한 ‘동갑내기 과외하기’‘내사랑 싸가지’등의 영화화와 TV드라마‘옥탑방 고양이’에 이어 두 편의 영화들은 모두 평범한 여자 주인공이 주로 예의 없고 발칙한 남자 주인공에게 이끌려 결국 사랑에 빠지고 만다는 관계를 내세우고 있다.


- 여고생의 꿈과 사랑이 골격

강동원 ㆍ 조한선 주연의 ‘늑대의 유혹’역시 이런 인터넷 세대의 새로운 로맨틱 코미디의 공식을 착실히 따르고 있다. 작가가 고등학교 때 쓴 작품이니 만큼 여고생들이 꿈 꿀만한 사랑 혹은 연애에 대한 모든 환상을 이루는 아이템들이 골고루 들어가 이야기의 골격을 이룬다.

이를테면 자신은 부모로부터 관심을 덜 받을 만한 불행한 가정환경을 가지고 있으며, 뼈아픈 짝사랑이나 실연의 경험이 있으며, 비록 평범하지만 마치 만화책의 주인공 같은 멋진 남자들이 자신과 사랑에 빠지며, 그 사랑은 여간해서는 움직일 수 없는 단단한 것이며, 그와의 연애는 멋진 스포츠카나 오토바이를 타고 머리카락을 바람에 휘날리는 것이며, 어디선가 잊을 수 없는 그와의 멋진 키스가 기다리고 있으며, 하지만 불행하게도 하늘이 그들을 시샘해 몹쓸 병이 연인을 시한부 생명으로 만들며, 결국 그는 떠나지만 영원히 내 가슴속에 남아 있는… 이런 식의 환상들이 스크린으로 그대로 펼쳐진 것이 바로 이 영화다.

주인공 한경(이청아)은 어릴 때 엄마와 헤어진 아버지와 함께 지방에 살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재혼한 엄마와 살기 위해 서울로 올라온다. 서울에 와 짝사랑의 실패를 맛본 그에게 갑자기 멋있는 ‘늑대’가 한꺼번에 두 마리나 몰려온다. 바로 학교의 쌈짱 해원(조한선)과 옆 학교의 태성(강동원)이다. 여학생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는 그들은 평범하기 만한 한경을 차지하기 위해 몸싸움을 마다하지 않지만 한 친구가 위기에 몰리면 멋지게 그를 구해내기 위해 또한 몸을 아끼지 않는 멋진 남자 친구들이다. 좀더 적극적인 해원이 멋지게 친구들 앞에서 뜨거운 키스를 퍼부으며 적극적으로 달려드는 것에 비하면 한경을 ‘누나’라 부르는 태성은 왠지 한발짝 물러서서 안타까워하기만 한다. 그 이유는 태성이 한경과 피를 나눈 형제이며 그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남매임을 원망하며 태성은 한경을 떠나고 세상을 떠나며 조용히 눈감는다.

원작 귀여니의 소설이 인터넷에서 통용되는 이모티콘과 가벼운 문체로 고등학생이 쓴 인터넷 소설 특유의 가벼움이 물씬 풍기는데 비하면 영화‘늑대의 유혹’은 훨씬 무거운 터치다.

원작에서 특유의 발랄한 분위기는 배제하고 그 속의 사랑 이야기만 가져와서 가슴 울리는 젊은이들의 사랑이야기로 이끌고 가겠다는 의도다. 때문에 “문자 씹으면 죽는다. 넌 내 마누라야”같은 그 세대 특유의 용어들을 사용하고 있으면서도 영화는 이루지 못할 태성의 사랑에 더 무게를 두면서 그 아픔을 묵직하게 전하고자 하는 느낌을 준다.

하지만 청소년 세대들의 ‘환상’에만 근거를 두고 있는 원작의 가벼움까지 영화가 구해내는 것은 아니다. 어차피 청소년 세대들의 진정한 ‘고민’을 낳게 한 시대적인 고민이나, 아이에서 어른으로 성장하면서 겪을 수 밖에 없는 아픔이라거나 이런데 관심을 두고 있지 않다고 불평하기에는 이 영화는 너무나 태생적으로 거리감이 있다.

주인공들이 입고 있는 교복은 단지 그들이 고등학생 나이임만을 알려주고, 이복형제가 있다거나 재혼한 부모님 집에 와서 사는 것이 쉽게 받아들여지기 힘든 사춘기 소녀 주인공은 그?모든 것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그들의 주 활동무대는 학교가 아니라 밤거리와 술집 등이다.

어차피 현실에 기반하지 않은 그들의 사랑의 환상을 키워나가고자 하는 영화에 굳이 구질구질한 현실을 뒤 돌아 보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는 잔소리일 것이다.


- 여주인공의 빈약한 캐릭터 거슬려

그러나 영화 속에서 강동원, 조한선 두 꽃미남 배우의 사랑을 동시에 받는 정한경의 캐릭터마저 빈약해 보이는 것은 생각해 봐야 할 문제다. 거의 완벽해 보이는 두 ‘왕자님’의 사랑을 한꺼번에 받고는 있지만 그녀는 도통 어리둥절해 하고 칭얼대기만 할뿐 어떤 매력을 가지고 있는지 영화 속 행동으로 파악하기는 힘들다.

그녀는 영화 속에서 주어진 상황만을 계속 따라갈 뿐 어떤 선택을 내린다거나 중요한 대사로 자신의 성격을 표현해 내지 못하고 있다. 빈약한 그녀의 캐릭터는 두 남자 사이를 갈팡질팡 오가기만 하고, 태성의 죽음 앞에서 계속 눈물만 흘릴 뿐 관객의 동감을 이끌어 내지 못한다. 이것은 다시 밑그림으로 머무르기만 한 ‘현실’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없다는 데로 돌아간다.

그녀는 성적 스트레스에 시달릴만한 여고생이고, 재혼한 엄마의 집에 올라왔고, 또 다른 이복동생이 있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는 드라마틱한 현실 위에 있지만 영화는 도무지 그런 현실에 애정어린 눈길을 던지지 않기에 이 ‘공주님’은 왕자님들의 싸움이나 술집만 열심히 쫓아다니면서 키스와 짙은 화장과 눈물로 극적인 긴장을 이끌어 내려다 번번히 실패하고 이야기는 밋밋하게만 흘러간다. 주인공의 현실은 없고 상황만 있을 때 드라마와 캐릭터가 이렇게 빈약해 질 수 있음을 영화는 보여준다.

■ 시네마 단신
   
* 인디 다큐 영화제 신작공모

인디다큐 페스티벌 조직위원회는 2004 인디 다큐 영화제 (10월28일~11월 2일)에서 상영될 국내 신작 다큐멘터리를 공모한다. 지난해 8월23일 이후 완성된 다큐멘터리(단편 포함)를 대상으로 하며 참가희망자는 영화제 홈페이지(www.sidof.org)나 한국독립영화협회 홈페이지(www.kifv.org)에서 참가 신청서를 다운 받아 심사용 VHS 테이프와 함께 8월 29일까지 영화제 사무국(서울시 마포구 아현3동 626-70번지 유니 빌딩3층)에 접수하면 된다.

* <붉은 나무> 오타와 국제애니 영화제 초청

단편 '붉은 나무'(한남식)가 9월22일부터 캐나다에서 열리는 오타와 국제애니메이션 영화제에 초청됐다. 오타와 페스티벌은 안시(프랑스), 자그레브(크로아티아), 히로시마(일본)와 함께 세계 4대 애니메이션 축제로 불리고 있다.


입력시간 : 2004-07-29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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