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친 그리움에 아름다움 더하고

[이유미의 우리풀 우리나무] 진노랑상사화
사무친 그리움에 아름다움 더하고

‘여름, 책의 향연’이라는 제목으로 한 서점이 주최한 행사에 참여했다. 숲을 주제로 고객들과 대담을 하는 행사였다. 마치 나무가 가득 찬 숲처럼 책들로 가득찬 곳에서 희귀식물을 찾듯, 마음에 드는 책들을 고르고 같은 관심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 잔잔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참으로 행복하였다.

무더운 날씨가 계속되면서, 몸도 마음도 지치기 쉬운 날들을 견디다 보니 왜 사람들에게 여름 휴가가 특별히 필요한지가 느껴진다. 또 이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쾌적한 곳에서 책을 읽는 것도, 뜨거운 태양을 한 몸에 받으며 길을 떠나는 것도 모두 좋은 방법이리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혹시 여름을 탈출하여 떠나는 길의 방향을 남도로 잡았다면, 불갑사 경내에 피어있을 진노랑상사화 구경을 꼭 한번 권하고 싶다. 물론 이 아름다운 꽃은 내장산이나 백양사, 고창 선운사같은 곳에서도 만날 수 있지만 딱 이즈음, 불갑사 경내가 가장 아주 쉽게 만나지기 때문이다. 혹 이곳에서 진노랑상사화에 마음을 빼앗겼다면 아예 이 여름 여행의 주제를 이 꽃으로 하여 아름다운 사찰구경을 함께 떠나봄이 어떨지.

이야기를 시작하고 보니 상사화도 아니고 진노랑상사화란 이름이 좀 생소하게 느껴질 지도 모르겠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식물은 우리 땅에서 자란 것은 아주 오래이고, 더욱이 우리나라에만 자라는 특산식물이지만, 식물학자들이 비슷한 종류의 식물과 비교하여 새롭게 다르다는 것을 찾아내고 비교적 최근에 새 이름을 붙여준 식물이기 때문이다.

비슷한 집안의 상사화는 꽃색이 연한 분홍색이고(요즈음 상사화 꽃도 한창 피고 있다), 백양꽃은 주황색이며, 꽃무릇이라고도 부르는 석산은 진한 주홍색이어서 진한 노란 빛의 꽃을 피우는 진노랑상사화와는 한번에 구별할 수 있다.

하지만 상사화와 같은 특성을 가진 점도 많다.(하긴 같은 집안 식물이니까 당연히 그렇겠지만) 우선 상사화란 이름의 유래처럼 꽃이 필 때는 잎이 없고 잎이 필 때는 꽃이 없는 것이 같고, 꽃잎이 갈라져 펼쳐지는데 백합과 식물들과는 달리 한쪽이 깊게 패이고 벌어져 마치 부채살이 펼쳐지듯 꽃이 피는 것도 같으며, 사찰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것도 같고. 땅속에 있는 비늘줄기를 약으로 쓰는데 많은 알카로이드가 함유되어 있어서 그냥 먹으면 독이 될 수 있고 잘 쓰면 약이 되는 식물로 해독, 가래 제거, 종기, 소아마비와 같이 마비로 인한 통증과 같은 중상에 처방한다는 점도 같다.

하지만 우리가 잘 아는 상사화나 석산의 고향은 중국인 반면 이 식물은 우리만의 꽃이라는 점이 정말 좋고 그래서 아름다운 원예식물로 개발해도 더욱 가치가 있어 더 좋다.

진노랑상사화는 여러해살이 풀인데 잎은 늘어지니 꽃자루가 올라왔을 때가 가장 큰 키라고 할 수 있는데 한 60cm 정도 된다. 잎은 봄에 나왔다가 지고 지금쯤 꽃대를 올려 그 끝에 몇 개씩의 큼지막한 꽃송이를 사방으로 매어 단다.

불갑사엔 이 진노랑사상사화가 질 무렵, 다시 새롭고 붉은 꽃 무리들이 장관을 이룬다. 바로 그 유명한 석산이다. 그쯤 되면 이 무서운 무더위는 다 물러가고 서늘한 가을바람이 불기 시작할 것이다. 하지만 불갑사에서 의미있게 볼 것이 어디 이뿐이랴. 스님과 공주의 사연을 담은 천연기념물 참식나무는 겨울이 되어도 그 푸른 잎과 붉은 열매를 여전히 달고 있을 터이니 말이다. 아! 세월은 빨리도 간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원


입력시간 : 2004-08-04 14:47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원 ymlee99@fo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