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꽃 향기로 새긴 여름의 추억백련과 함께 희귀한 수생식물 즐비, 주면 볼거리도 많아

[주말이 즐겁다] 무안 백련지
연꽃 향기로 새긴 여름의 추억
백련과 함께 희귀한 수생식물 즐비, 주면 볼거리도 많아


연(蓮)은 진흙에서 자라나지만 고귀하고 아름다운 꽃송이를 피워내는 ‘처염상정(處染常淨)’의 성정으로 인해 불가(佛家)뿐만 아니라 모든 인류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식물이다. 우리 민간에서는 연에 종자가 많은 것을 보고 여성의 옷에 연꽃무늬를 새겨 다산을 기원하기도 했다.

전남 무안군 회산마을 백련지(白蓮池)는 동양에서 가장 너른 백련 서식지로 알려진 곳이다. 연꽃 중에서도 희귀하다는 백련이 10만 평에 이르는 저수지에 가득 피어나는 백련지는 희귀성과 규모 덕에 가장 사랑 받는 백련 감상지로 자리매김했다.


- 동양 최대의 백련 서식지

일제 강점기 때 축조된 백련지는 당시엔 복룡지란 다소 촌스런(?) 이름표를 달고 인근 농경지에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젖줄 역할을 해왔다. 이런 저수지에 처음 백련이 피어난 것은 지금으로부터 60~70여년 전. 당시 저수지 근처에 살던 정수동이라는 노인이 백련 12포기를 구해 저수지 가장자리에 심었던 것이다. 정 노인은 그 날밤 하늘에서 학 12마리가 내려와 연 잎에 앉는 꿈을 꾸었는데, 그 광경이 마치 백련이 피어있는 모습과 같았다고 한다. 이후 정 노인과 마을 사람들은 합심하여 백련을 정성으로 가꾸었다.

1981년 영산강 하구둑이 건설되면서 인근 논밭에 영산강 물을 직접 끌어들일 수 있게 되자, 저수지는 점차 그 기능을 상실하게 되었다. 저수지의 수면도 점차 낮아지면서 연이 자라기 적당한 조건으로 변해 백련은 해마다 눈에 띄게 빠른 속도로 번졌다.

97년 연꽃축제를 처음 시작하면서 복룡지란 이름도 백련지로 개명했다. 여덟 번째를 맞이한 올해엔 8월 14일(토)부터 22일(일)까지 9일간 ‘생명의 꽃, 평화와 빛의 순례’라는 주제로 열린다. 백련지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나무다리인 백련교는 연꽃을 감상하기에 더 없이 좋은 장소. 280m에 이르는 다리 중간중간엔 백련지의 전경을 살펴볼 수 있는 나무 전망대가 있다. 연꽃을 보러 온 이들은 누구나 한두 번씩은 이 백련교를 천천히 건넌다. 또 작은 배를 타고 연못의 수면을 떠가면서 연꽃을 가까이서 감상할 수 있는 수중연꽃길 보트탐사도 있다.

백련지에선 승복 입은 스님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법정스님은 오래 전 이곳을 둘러보곤 “마치 정든 사람을 만나고 온 듯한 두근거림과 감회를 느끼고 살아있는 기쁨을 누렸다”고 예찬하기도 했다. 축제 행사에서 스님들의 바라춤과 나비춤 등을 감상할 수 있는 것도 무안 연꽃축제만의 특색이다. 저녁 무렵엔 연등을 들고 저수지를 한바퀴 도는 행사도 벌인다.

저수지 한쪽에 마련한 수생식물자연학습장도 관람객들에게 인기 있는 곳이다. 한낮에 개화한 뒤 저녁에 오므라들어 ‘잠자는 연’이라 불리는 수련(睡蓮)의 붉은 꽃잎이 정갈하고, 군락 지어 피어난 샛노란 물양귀비의 자태는 너무 요염하다. 또 멸종 위기에 있다는 보랏빛 꽃잎의 가시연, 앙증맞은 노란 개연, 애기수련, 순채, 물옥잠, 택사 등 이젠 보기 어려워진 70여종의 수생식물이 즐비하다.

백련은 홍련처럼 화려하지는 않다. 그러나 연분홍 빛깔이 도는 꽃봉오리는 티없이 맑은 소녀처럼 청아하고, 활짝 피어나면서 하얗게 빛나는 꽃잎은 한 마리 학처럼 고아하다. 가만히 숨을 들이키면 꽃처럼 맑은 향내가 코끝을 맴돈다. 주민들은 “이른 아침에 연못을 산책하면서 연꽃 향내를 맡으면 마치 천국에 온 것처럼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자랑한다.


- 초의선사 생가 등 볼거리도 많아

삼향면 봉수산 기슭에 있는 초의선사 생가.

무안엔 연꽃만 있는 게 아니다. 무안읍에서 남쪽으로 18km쯤 떨어진 무안군 삼향면 봉수산(205m) 기슭 왕산마을엔 조선시대 다성으로 추앙받는 초의(草衣 1786~1866)선사 생가가 있다. 초의선사는 다산 정약용, 추사 김정희 등 당대 최고의 석학들과 깊은 교유를 통하여 도교는 물론 유교 등에?능통했던 선승이다. 15세에 고향을 떠나 출가했던 초의선사는 68세에 백발의 늙은 몸으로 고향을 찾아 왔다가 폐허가 된 집과 잡초만 우거진 부모님의 묘소를 돌아보고 ‘귀고향(歸故鄕)’이란 시 한편을 지어 놓고 돌아갔다. 생가 주변엔 2만~3만 평의 차밭이 조성되어 있다.

또 무안 몽탄면과 청계면 사이에 솟은 승달산(318m)은 비록 300m가 조금 넘는 낮은 산이지만 각종 풍수지리서에서 호남 4대의 명혈 중 제1의 혈처를 안았다고 알려진 명산이다. 높이에 비해 계곡도 제법 깊고, 숲도 짙다. 넉넉하게 2~3시간이면 정상에 다녀올 수 있다.

승달산 북쪽 기슭에 자리한 법천사는 호젓한 절집. 대흥사의 말사로서 1031년에 원명스님이 중창하자 500명의 제자가 몰려들었는데, 모두 도를 얻어 산 이름을 승달산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유물로는 사찰 들머리에서 방문객을 맞이해 주는 법천사 석장승(전라남도 민속자료 제24호) 등이 있다. 황소가 터를 잡았다는 목우암은 종이로 만든 아미타불로 유명한 산중 암자다.

이외에도 무안읍에서 남동쪽으로 4km 떨어진 몽탄면 사창리엔 우주와 항공기의 역사에 대해 살펴볼 수 있는 항공우주과학전시관 등이 있어 무안 연꽃을 보러 오가는 길에 함께 둘러보면 좋다.

* 숙식 : 백련지 주변에 김금순민박(061-281-9466), 서순임민박(061-281-2667) 등 숙박할 곳이 몇 집 있다. 2인1실 기준 20,000~25,000원. 읍내에도 모텔 같은 숙박시설이 여럿 있다. 축제기간엔 행사장에서 연을 재료로 한 ‘테마음식관’도 운영한다.
* 교통 : 서해안고속도로 일로IC(우회전)→815번 지방도→1.5km→일로읍→3km→회산 백련지. 호남고속도로 광산IC→13번 국도→나주→23번 국도→49번 지방도→회산 백련지.

민병준 여행작가


입력시간 : 2004-08-04 15:27


민병준 여행작가 sanmin@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