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3사 수목드라마, 내용·구도에서 가수 캐스팅까지 못난 닮은 꼴

[배국남의 방송가] 짜증나는 수·목 드라마 "TV를 끄마"
방송3사 수목드라마, 내용·구도에서 가수 캐스팅까지 못난 닮은 꼴

이윤 추구만을 겨냥하는 대중문화의 획일성과 동질화를 질타한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아도르노의 지적이 여전히 유효함을 새삼 절감한다. 그리고 한 단어의 발음 문제를 장시간 논쟁하며 연기훈련을 했다는 중견 연기자 이순재씨가 떠오른다.

수ㆍ목요일 안방극장의 풍경을 보고 난 뒤의 연상되는 인물이다. 오죽했으면 KBS, MBC, SBS 등 방송 3사가 전혀 다른 연출가와 작가, 그리고 출연진을 내세워 드라마를 내보내고 있지만 그것을 본 시청자의 적지 않는 사람들이 3개의 수목 미니시리즈가 제목만 다를 뿐 한 개의 드라마라는 비아냥거림을 퍼붓고 있을까.


- 창의성 결여·연기력 부재 등 총체적 부실

SBS '형수님은 열 아홉'

7월 28일 첫 방송된 SBS 수목 미니시리즈 ‘형수님은 열 아홉’을 보면서 새로운 드라마에 대한 기대보다 다른 수목드라마의 아류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느낌밖에 받지 못한다. 작가의 창의성 결여와 연출자의 안이한 작품 연출, 출연진의 연기력 부재가 총체적으로 어우러져 낳은 결과는 비슷한 캐릭터와 내용 전개, 그리고 과장 연기와 국어책 읽는 듯한 대사 전달의 횡행 등으로 대변되는 3개 수목드라마가 마치 한 드라마 같다는 비판이다.

세 드라마는 한결같이 작품 주제 전달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중심 캐릭터 남녀 각각 두 명, 네 명으로 같은 문양을 띠고 있다. 남자 주연 캐릭터는 부잣집 출신의 싹수머리 없는 왕자들이고 여자 주연들은 한결같이 별 볼일 없는 학벌과 가정의 여성들이지만 어려움에서도 울지 않고 명랑 쾌활한 캔디들이다. 또한 이들이 벌이는 사랑은 네 사람이 얽혀 전개되는 겹삼각 구도를 바탕에 깔고 전개된다.

먼저 새로 시작된 SBS ‘형수님은 열 아홉’ 을 보면 남자 주인공은 가출을 밥먹듯 하고 어머니를 아줌마로 서슴없이 내뱉는 문제아 고교생 승재(윤계상)와 외유내강형의 착한 레지던트 민재(김재원)이다. 그리고 재벌 아들인 아버지의 사고와 어머니의 갑작스런 죽음, 어머니 재산을 노린 종업원들의 유기로 인해 고아 아닌 고아가 된 또순이 유민(정다빈)을 두 형제가 사랑을 하게 되고 이 사이에 허영심과 비틀린 자존심으로 뭉친 수지(김민희)는 승재를 사랑한다.

언뜻 MBC ‘황태자의 첫사랑’의 출생의 비밀로 덧씌워진 싹수머리 없는 재벌 2세로 이복 동생 건희(차태현)와 차분하면서도 냉정한 형 승현(김남진), 두 사람의 사랑의 대상이 구김살 없이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며 밝고 쾌활한 유빈(성유리) 그리고 차태현의 사랑을 차지하기 위해 악행도 서슴지 않는 혜미(진재영) 네 사람이 겹삼각 관계를 구축하며 드라마를 견인하는 것과 비슷하다.

MBC '황태자의 첫사랑'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한 KBS ‘풀하우스’ 역시 이 캐릭터의 성격과 구도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이 드라마는 영화 스타이지만 성격적으로 못된, 그렇지만 또 내면적으로 외롭고 사랑을 그리는 영재(비)와 실력, 외모, 성격까지 완벽한 젊은 사업가 민혁(김성수)과 두 사람의 사랑을 받는 여성으로 천방지축 작가 지망생 지은(송혜교)이 등장한다. 그리고 영재의 사랑을 뿌리치다 지은을 사랑하는 영재를 보면서 다시 마음을 바꿔 연적이 되는 혜원(한은정)이 겹삼각 관계를 형성하며 내용이 전개된다.


- 획일적인 연기스타일과 캐릭터

남녀 주인공 캐릭터와 남녀 주인공의 사랑에 끼여들거나 방해하는 남자와 여자의 성격이나 모양새도 한결같다. 싸가지와 성격적 결함을 드러내는 남자 聆寬坪?연적으로 떠오르는 남자들은 실력과 냉철함 그리고 외모까지 완벽한 기획실장(황태자의 첫사랑), 사업가(풀하우스), 의사(형수님은 열 아홉)이다. 반면 캔디 스타일의 여주인공의 연적들은 진재영, 한은정, 김민희 등 사악하거나 비열하면서 섹시한 모습이다.

캐릭터가 비슷하다 보니 연기 스타일 또한 매우 유사하다. 특히 여자 주인공들은 캔디형 성격에다 코믹함을 강조하기 위해 과장 연기가 주류를 이룬다. ‘햇빛 쏟아지다’에서 또순이역을 맡아 기존의 청순한 이미지를 벗어나려 했지만 실패한 송혜교는 이번 ‘풀하우스’에서 코믹스러움을 드러내기 위해 매우 과장적인 연기로 일관하고, 정다빈은 ‘옥탑방 고양이’의 성격이 유민역에 그대로 드러나 있다. 성유리 역시 이들보다는 덜 코믹적이지만 덜렁되거나 명랑한 성격을 나타내기 위해 극의 흐름에 상관없이 대사 톤을 올리거나 상황과 부합되지 않는 표정 연기를 하고 있다.

KBS '풀하우스'

또한 한결같이 남자 주연이나 여자 주연에 가수 출신의 연기자를 전진배치 했는데 이들은 연기에 적지 않은 문제를 드러내 극의 전반적인 흐름을 끊거나 캐릭터를 잘 소화하지 못하고 있다. ‘풀하우스’의 비, ‘황태자의 첫사랑’ 의 성유리, ‘형수님은 열 아홉’의 윤계상 등이 모두 가수 출신 연기자다. 하지만 인기 가수가 단순히 출연한다고 해서 드라마가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비는 연기자로 데뷔했던 ‘상두야 학교 가자’에서 연기자들을 능가하는 자연스런 연기를 선보여 더욱 이번 ‘풀하우스’에서 기대를 모았던 가수 겸 연기자다. 하지만 아시아의 최고의 영화배우로 상처주지 않고 상처받지 않으려는 영재역은 비에게는 역부족이었다. 내면과 외형을 오가야 하는 영재역에서 비는 표정과 대사가 엇박자로 나가는 등 허점을 드러냈다.

신데렐라 드라마인 ‘황태자의 첫사랑’에서 유빈역을 맡은 성유리는 이미 그 연기력의 한계를 1회분부터 드러내 드라마가 지속되는 동안 이런 문제점이 개선되지 않고 있다. 이 드라마는 제목에서 암시하듯 성유리의 드라마였다. 하지만 아무리 전형화된 신데렐라 드라마여도 주연의 색깔이 드러나야 하고 연기가 자연스러워야 한다. 하지만 연기의 기본을 갖추지 못한 성유리는 성유리표 신데렐라의 연출에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전형화된 역할마저 제대로 소화하지 못해 연기력 부재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god의 멤버로 ‘형수님은 열 아홉’에서 연기자로 첫발을 디딘 윤계상은 카메라의 동선을 따라가지 못하는 데다 표정과 대사가 따로 놀고, 대사의 전달에서도 결함을 드러났다. 문제아 역을 소화하려다 보니 이전의 문제아들의 흉내내기에 급급한 모습이 역력하다.


- 방송사의 제작관행 바뀌어야

이같은 현상은 시청률만 잡으면 그만 이라는 드라마를 장사로만 보는 제작진의 의식에서 비롯됐다. 작가는 치열한 고민대신 인기 있는 드라마의 캐릭터와 구도의 모양만 바꿔 그대로 사용하는 안하무인식 극본을 쓰고, 연출자는 인기 있는 젊은 가수나 스타만을 기용해 화려하고 코믹스런 상황만 연출해 눈길을 끌려고 한다. 한국 드라마의 장이 열린 지 올해로 43년째, 그 역사에 걸맞게 한국 드라마도 질적 향상을 해야한다. 그것은 상당 부분 제작진의 몫이다.

배국남 대중문화평론가


입력시간 : 2004-08-04 16:02


배국남 대중문화평론가 knbae24@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