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여성의 변천과 페미니즘에 대해

[Books] 여성의 근대, 근대의 여성
신여성의 변천과 페미니즘에 대해

김경일 지음 푸른역사 발행ㆍ1만6,500원

“카페! 카페는 술과 계집 그리고 엽기가 잠재하여 있는 곳이다. 붉은 등불, 파란 등불 밝지 못한 샨데리아 아래에 발자취 소리와 옷자락이 부벼지는 소리, 담배 연기, 술의 냄새, 요란하게 흐르는 재즈에 맞추어 춤추는 젊은 남자와 여자 파득파득 떠는 웃음소리와 흥분된 얼굴!” 어느 시절 어느 곳의 이야기인가?

잡지 ‘삼천리’ 1932년 8월호에 실린 서울의 한 카페의 모습이다. 그 시절 서울에 폭 넓은 넥타이를 매고 머리에는 맥고 모자를 비스듬하게 쓴 모던 보이가 있었다면, 실크 스타킹으로 다리를 감싸고 핸드백을 가슴에 안고 도시적 향락과 퇴폐의 이미지를 풍겼던 소비 공간인 카페로 모여드는 모던 걸, 신여성도 있었다.

‘20세기 전반기 신여성과 근대성’이라는 부제를 단 김경일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교수의 ‘여성의 근대, 근대의 여성’은 그 시절 식민지 조선 사회에 나타난 신여성의 모습, 그를 둘러 싼 사회 현상과 그에 대한 갖가지 담론을 분석한 책이다. 신여성에 대한 개념 정의와 변천, 민족주의와 페미니즘을 둘러싼 신여성의 자기 정체성, 성과 사랑, 신체와 단발, 스포츠, 소비와 유행, 지식과 교육, 일과 직업 등 다양한 영역에 걸쳐 근대성이라는 잣대로 신여성의 모습을 들여다 보고 있다.

왜 지금 신여성인가. “20세기 전반기에 출현한 신여성들이 제기한 다양한 쟁점들은 식민지 사회에서 당혹감과 놀라움, 조롱과 멸시, 분노를 야기하였다. 신여성들의 본래 의도와는 달리 한 성의 다른 성에 대한 차별과 배제, 억압과 좌절, 그리고 상호 불신이라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지금 당면한 현실은 거의 1세기 전의 역사를 반영하고 있는 듯하다. 억압이나 배제와 같은 폭력의 방식들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게 되었다고는 하지만, 양성 간의 반대와 부정, 적대 혹은 무관심 등의 현상이 여전하기 때문이다”라고 저자는 말한다. 신여성을 기억하는 작업이 21세기 전반기의 페미니즘을 창조할 수 있는 비전과 용기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1910~1945년의 ‘조선총독부통계연보’ 등에 실린 여성 교육 기관 통계 등 수치, ‘신여성’ ‘여성’ ‘별건곤’ 등 당시 신여성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담고 있는 서적에서 발췌한 130여 컷의 사진, 삽화 등 객관적이고 생생한 자료를 사용해 신여성의 면모를 재구성했다.

“오직 꿈 속에서 왔다 갔다 하다가 새벽잠이 깨어 과거를 회억하기에 날 새우는 줄 모를 뿐이다. 아아, 자유, 평등, 박애의 세상, 파리가 그리워.” 나혜석의 말에서 신여성의 서구에 대한 동경이 그대로 읽힌다. 김일엽은 “사랑을 떠나서는 정조가 있을 수 없으며, 정신적으로 정(情)적 청산이 되어 새 사랑을 상대자에게 온전히 바칠 수만 있다면 언제든지 처녀로 자처할 수 있다”는 성 담론을 폈다. 나혜석은 여성의 정조 관념을 비판하면서 남자 공창의 필요성을 제기하기도 했다. “지금은 댄스를 극장에서만 하지 않고 가두에서도 한다. 엄청나게도 짧은 치마에 온몸을 화장 이상의 화장을 하고 겅중겅중 으쓱으쓱 하며 걸어가는 것은 꼭 댄스식 걸음걸이다. 만일 유성기나 라디오에서 곡조만 나온다면 당장 춤을 출 기세이다”라는 방춘해의 말에서는 당시 신여성의 모습이 눈앞에 보이는 듯하다.

1924년 요한은 ‘신여성’지에 발표한 신여자송(新女子頌)은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 ‘오, 태양이 낳은 딸들!/ 깨어진 문명의 오직 하나인 메시아!/ 만인의 한갓 희망이/ 애타는 희망이/ 오직 네 신선한 호흡에 있다/ 높이 쳐든 얼굴에/ 자신 있는 걸음걸이에’

/하종오기자


입력시간 : 2004-08-11 15:49


/하종오기자 joha@hk.co.k